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도서관을 점령한 도떼기 상인들

자유로웠던, 그러나 반찬이 남아나질 않았던

by 마늘파 Mar 24. 2025

 서울 종로에서 살 때 D도서관을 자주 이용했다. 주변에 마사회 장외발매소도 있고 노숙자도 많은 편이라 좋은 환경의 도서관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곳에서 원고지와 씨름하며 참 많은 시간을 보냈다. 등단 한번 해보겠다고, 장편 한번 써보겠다고 쏟았던 그 많은 땀과 눈물.... (맞아요. 생색내는 겁니다). 어쨌든 그때는 정말 열정이 있었다.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그래도.... 그리고 그 시간에 대해 후회는 없다.   


  

 글을 쓰다 출출해지면 지하 구내식당에서 밥을 사 먹었다. 도서관 식당은 어느 곳이든 그럭저럭 이용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공공기관 내 시설이라 저렴한 편이고 위생도 믿을만해서다. 그 당시 D도서관 구내식당이 특히 좋았던 건 점심시간의 자율배식 때문이었다. 백반 식권을 끊고 배식대로 가면 원하는 만큼 밥과 반찬을 퍼먹을 수 있었다. 


 여러모로 마음에 들었던 자율배식이지만 단점도 있었다. 제육볶음, 닭튀김 등 좋은 반찬이 나올 땐 급식이 빨리 끝난다는 점이었다. 특히 주말이 심했다. 도서관 주변에서 도떼기시장이 열렸는데 중고물품을 팔던 상인들이 떼로 몰려와 식사를 하곤 했다. 상인들이 좋은 반찬을 다 집어가 버리니 정작 도서관에서 책 읽던 사람들은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겼다. 짜증도 났지만 걱정이 더 앞섰다. 이러다가 자율배식제를 없애는 건 아닐까 하는.

      

 그래도 자율배식은 한동안 더 이어졌다. 물론 도서관 측도 자율에 맡기면 좋은 반찬이 빨리 동난다는 걸 알고 있었을 거다. 그럼에도 이용객의 자유로운 식사를 방해하지 않았다. 나는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주말에 도서관을 이용할 경우 백반부터 사 먹곤 했다. 자율배식으로 배를 풍족히 채우면 저녁 늦게까지 글을 쓰거나 책을 읽어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D도서관도 배식제로 전환을 했다. 완전 배식제는 아니고 부분 배식제였다. 사람들이 왕창 집어가는 좋은 반찬은 배식 아주머니가 양을 조절해 가며 나눠주었다. 어쩔 수 없는 조치를 취한 것이기에 받아들여야 했다. 그래도 실망스러웠다.      



 많은 추억이 있는 D도서관이지만, 서울 생활을 정리한 후엔 가보지 못했다. 요즘은 어떤 식으로 구내식당을 운영할까, 반찬은 더 좋아졌을까, 주말엔 여전히 상인이 많을까, 장서실은 더 넓어졌을까.... 가끔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다 얼마 전 추억의 D도서관에 다녀왔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멀리서 보이는 도서관 외관 ― 크게 변한 건 없었다. 


 ‘다행이다’ 생각하며 5층 장서실로 올라갔다. 고맙게 내 책도 2권이 진열돼 있었다. 냉정히 보면 읽거나 빌려간 사람이 없어 자리에 꽂혀 있는 것이기에 고맙거나 기쁠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 도서관에서 흘렸던 땀과 눈물이 씨앗이 되었고, 그 결과물이 바로 그 장소에 꽂힌 것이기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잡지 코너로 이동해 시사지 신동아를 읽었다. 혼란한 정치·경제를 훑다 보니 머리가 복잡하다. 고개를 들고 눈을 비비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잡지를 접고 지하 1층으로 향했다. 식당이 있던 곳이다.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식당이 가까워질수록 괜스레 마음이 떨려온다.

      

 ‘드디어....’     


 기대감을 갖고 문을 열었다.     


 식당은 사라졌다. 

작가의 이전글 KTX광명역에서 즐긴 그리운 핫도그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