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드 Jan 12. 2019

기다림과 인내의 시간

흔들리며 균형 찾기



 세상에 쉬운 병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턱관절 질환은 참으로 어려운 병이다. 증상의 측면에서도 그렇고 치료의 측면에서도 그렇다.


 턱관절은 위턱과 아래턱을 연결시키는 손가락 마디만  작은 관절이다.  자그마한 턱관절에 이상이 생기면 자신이 묵묵히 하던 일들에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고등학교  넘어져서 턱을 다치고 얼마 후부터, 이따금씩 입을 벌리거나 음식을 씹을 , 턱관절에서 ‘하는 소리가 나며 걸리곤 했다. 이건 많은 사람이 겪을  있는 초기의 일시적인 증상이다. 처음에는 당황했지여러  반복되자, 입이 벌어지지 않는 턱을 적절한 강도로 치면 제자리로 돌려보낼  있게 되었다. 나는 전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심지어 조금 재미있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 마른오징어를 먹다가 오른쪽 턱에 시큰하고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얼마 동안 턱이 얼얼하고 측면의 머리까지 아팠고, 이후로 좋아하던 마른오징어는 먹을  없는 음식이 되었다. 껌이나 캐러멜처럼 끈쩍끈적한 것도 기피 목록에 추가되었다.


 턱관절이 마모되거나 제자리를 벗어나면서부터는 아예 입이 잘 벌어지지 않았다. 무심코 하품을 하다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이를 닦으려는 데 칫솔이 들어가지 않거나, 밥숟가락을 넣는 것이 힘들어졌다. 진짜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턱관절이 귀와 귀 뒤로 지나가는 신경을 누르게 되면서 이명과 두통은 괴로운 친구가 되었다. 심한 날은 수시로 구토 증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구토를 하려고 무심코 입을 크게 벌리다가는 ‘악’ 하는 소리를 내면서 턱을 부여잡게 되니 조심해야만 한다.


  상황에서  악화되어서 턱관절에 구멍이 뚫리고 염증이 심해지면서, 일상생활이 힘들어졌다. 음식을 씹는  괴로운 일이 되고, 이명과 두통의 콜라보가 펼쳐지며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졌다. 그러다가 턱관절의 퇴행성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단단한 턱뼈의 돌기가 약해지면서 마모되거나 흡수되었다. 관절염에 걸린 할머니의 손가락 뼈가 변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 턱뼈에 일어나면, 거울 속의  모습이 낯설어졌다. 흡수된 턱뼈가 힘을 잃고 아래턱이 뒤로 밀리면, 턱관절이 입을 벌리고 밥을 먹는 때뿐 아니라   때도 쓰이는 관절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관절의 미세한 움직임이 동반되고 통증이 찾아오고 숨소리는 거칠어졌다. 통증 때문에  숨도 편히 잠들지 못하는 날이 반복되는 밤에는, 혀의 미세한 움직임에도 날카로운 통증이 더해졌다. 잠들지 못하는 , 괴로웠던   안에 혀가 있다는  너무나 불편하다는 사실이었다. 혀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서 답답하고 난감했다.


 치료의 측면에서 턱관절은 기다림의 질환이다. 턱관절은 병원에서 검사를 하고 병이 진단되었을 때, ‘급합니다. 바로 수술해야 합니다.’ 하고 말하는 병들과는 다르다. 턱관절뿐 아니라 턱뼈에까지 이상이 생기면  턱뼈와 연결된 치아의 교합까지 변형된다. 그러면 이제 인내와 기다림은 일상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된다. 수술 한 번으로 턱뼈와 치아의 교합을 한꺼번에 맞출 수 없다. 그래서 턱을 수술하기 전후 약 2년 정도 치아교정을 해야 한다. 문제는 치아교정 과정이다. 관절에 문제가 없는 사람들도 쉽지 않은데, 턱관절 환자에게는 교정의 모든 과정이 약한 관절에 더욱 부담이 되는 일이다. 입을 오래 벌려야 하고, 고리를 걸어 치아를 움직이는 과정 모두 관절에 스트레스를 준다. 그 과정 중에 턱이 더 아파지면 진통제와 소염제, 신경안정제로 버티는 수밖에 없다. 턱의 변형은 치아를 변형시키고, 치아의 치료는 다시 턱관절을 악화시킨다. 이 악순환의 고리 속에 갇히면, 출구 없는 어두운 미로를 헤매는 사람처럼 아득한 두려움이 덮친다.


 나는 턱뼈의 흡수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오진으로 무리하게  교정을  시작한 탓에, 교정을 시작하고 몇 달 만에 턱뼈의 손상이 급격히 가속화되었다. 아래턱뼈는 뒤로 밀리고  위턱뼈는 위로 들려 버렸다. 아래 턱뼈는 왼쪽으로, 위 턱뼈는 오른쪽으로 돌아가서 상하 좌우의 교합이 하나도 맞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이제 교정만으로 치아를 맞출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턱뼈 수술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그냥 교정과 수술을 위한 교정은 치아를 움직이는 방향이 다르다. 이전의 교정으로 악화만 된 채, 다시 교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병원을 옮겨 수술을 위해 진료를 받고 다시 교정을 해야 했다. 기다림의 시간이 더 늘어났고 턱의 상태는 점점 나빠졌다. 기다림의 과정이 길어진다는 것은 마음도 그만큼 지쳐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심장이 타들어가는 통증을 느끼는 날이 잦아졌다. 내 얼굴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수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할 만큼 지쳐가고 있었다.    


 몸과 마음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불안정한 턱관절만큼 마음도 불안해졌고, 귀에서 수시로 울리는 이명처럼 마음에도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도망갈  있다면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데, 피할  있는 일이라면 외면이라도   텐데. 누가 일초라도 대신 살아줄  없는 잔인한  몫의 아픔이었다. 잠도 못 자고 밥도  먹는 초췌한 모습으로 겪어야  앞날도 시커먼 안개 속이었다. 몸이 병들어가는 만큼 마음도 병들어가고 있었다. 마음의 뼈대를 찍을  있는 엑스레이가 있다면,  당시  마음은 타고 남은 재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골다공증 상태였을 것이다.     


  마음에서도 몸처럼 싸움이 일어나고 있었다. 될 대로 되라며 바닥으로 치닫는 마음과, 몸은 병들어도 마음은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힘을 겨루고 있었다. 변칙적인 두 리듬 위에서 오래도록 흔들리면서 알 수 있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다른 삶에 알맞은 새로운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을.


 낯설고 혹독한  한가운데서 마음의 균형감각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현실에서 샘솟는 슬픔과 분노와 억울한 감정 모두 오롯이 혼자 겪어내야 한다. 하지만 부정적인 마음에만 계속 머무르는 것은 자신을 파괴시킨다. 한편 온전히 슬퍼하지도 애도하지도 못한  스스로에게 강요된 긍정적인 마음과 태도도 최선은 아니다. 어설픈 긍정은 진정한 회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기도 하니까. 얼마만큼의 눈물과 얼마만큼의 다짐이 적절히 섞여야 무너지지 않고  길을 걸어갈  있는지 아득했다.       


  마음이 싸우고 있었다. 지구 위에서 유일한 아픔을 겪어내며 부서지는 마음이 왼쪽에서 나를 당긴다. 삼일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고, 누구의 목소리도 귀에 담아낼 만큼의 에너지도 없이   고갈의 시간을 보낸다. 발을 잘못 디뎌서 악어처럼 입을 벌린 크레바스에 아득히 추락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러다가 오른쪽에서 다른 마음이 이따금씩 나를 잡아당기며 흔든다. 세상에 억울하고 막막한 수많은 사연   그저 특별한 하나의 아픔을 앓고 있을 뿐이라고,  고통을 일반화한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감당하기 위해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험한 대지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가의 마음으로 용기 내어 전진해보자고 위로하면서.  


 이 두 가지 극단적인 마음이 줄다리기하듯 양 쪽 끝에서 서로 잡아당긴다. 두 마음 사이를 힘겹게 오가면서 엉성한 마음이 조금씩 팽팽해졌다. 낯선 계절에 필요한 힘의 균형을 휘청거리며 찾아가고 있었다.

이전 02화 진단이 잘못되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