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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드 Jan 13. 2019

다른 길을 찾다

불안이 모험을 이끌다

 대학병원의 구강외과 진료실은 커다란 방이 두 개였다. 두 방 에는 각각 3개의 치과용 진료의자가 놓여있었다. 3개의 의자 사이에는 따로 칸막이가 없어서 방 안에 있는 다른 환자들의 얘기가 자연스레 다 들렸다. 사생활 보호가 전혀 되지 않는 공간이었다. 의사는 거의 서서 이야기를 했다. 질문에 짧게 답하고 다음 환자에게 갈 준비를 하는 것처럼 몸은 반쯤 비틀어져 있었다. 종종 질문이 남아있는데 옆의 환자에게 그냥 가버리기도 했다. 그러면 의사가 두 방을 돌아 다시 나에게 올 때 까지 기다리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느린 컨베이어 벨트에 위에 의사가 돌아가고 있고, 환자는 의사가 자기 자리를 지나는 짧은 순간에만 의사를 볼 수 있는 이상한 시스템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와 제대로 된 소통을 기대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날도 마찬가지였다. 수술을 열흘 앞둔 수술  마지막 진료 , 기대와 불안을 안고 진료실에 들어갔다. 구강외과 수술 환자는 대부분 선천적으로 턱과 치아의 교합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나는 턱관절 때문에 후천적으로 턱뼈와 치아가 변형된 케이스라서 다른 궁금증들이 많았다. 그러나 의사는  궁금증엔 관심이 없었다. 수술을 해야만 하는 상태인  분명하다, 하지만  같은 경우 수술을 해도 이미 손상된 관절은 고칠  없다, 그러니 언제든 재발해도 어쩔  없다,  무심하게 말했다. 이런 병이 예민한 사람에게 많으니 성격을 고치라는 말도 덧붙였다.  얼굴이 이전처럼 얼마만큼 회복될  있냐는 말에는 한심하고 귀찮다는 듯이 대답을 회피하고 다음 환자에게 가버렸다. 기대에 찬물이 끼얹어졌고, 불안은 증폭되었다.  사람의 일생이 걸린  사건을 하찮게 대하는 태도에 신뢰가 가지 않았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우는 것은 이제 습관이 되었다. 이렇게  수는 없는데 다르게   있는 방법도 없는  같았다. 내가 의사에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뭔가 위축된 기분이 들었다. 무책임한 말들이 가시가 되어 마음을 찌르지만 대놓고 반박하지 못했다. 아니   없었다. 어차피 치료 받고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는 약자가 된다. 그러면  시스템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무너져가는 내 몸과 몸과 마음을 감당하는 것도 어려운데, 다른 싸움까지 더할 기운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런 시간을 계속 겪어내다 보면,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눈물을 꾹꾹 억누를 뿐이었다.     


 한참을 울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미 우리나라 네 개의 치과병원을 전전한 이후였다. 다른 곳을 다시 간다고 해도 이보다  나을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턱관절 분야에서 유명하다는 의사를 검색해서 미국으로 이메일을 보냈다. 놀랍게도  시간 지나지 않아서 답장이 왔다. 나같이 턱관절에 염증이 진행 중인 환자는 수술 전에 관절이 안정될  까지 약을 먹으며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재발을   있다고. 그는 다음  수술은 취소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과 함께, 마침 다음 달에 한국에 강의를 하러  일이 있으니   만날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메일을 받고 다음 주에 예정되었던 수술을 취소했다. 하마터면 수술을 하고 바로 재발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다. 한 달 후, 미국 의사가 한국에 와서 만날 수 있었던 건 놀라운 타이밍이었다. 갈색 눈을 가진 중년의 미국인 의사는 내 엑스레이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수술이며, 턱관절을 안정시키고 재발을 막기 위해 수술 전 후 2년 정도 약을 먹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의사의 자신감 있는 말투와 눈빛은 위안이 되었다. 기다림의 시간이 연장되었다는 아쉬움은 수술을 할 수 있다는 반가운 소식에 희석되었다.   

  

  불안한 마음에 보낸 이메일이 새로운 계획의 시작이 되었다. 어쩌면 불안만큼 사람을 과감하게 하는  없는  같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멀리 있는 미국으로 수술을 받으러 간다고 생각하니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수술비와 체류비를 감당하는 문제부터, 비자 발급과 의사소통 과정까지 어느 하나 만만한 일이 없었다.  수술은 수술하는 외과 의사와 교정과 의사의 협업이 중요한 수술이기 때문에 수술  교정을 어떻게 진행  것인지도 결정해야 했다. 나의 노력  아니라 가족들의 도움과 희생이 많이 요구되는 일이었다. 미국행을 실제로 결정짓기 까지는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그때까지 인생에서 가장  결정이었다. 대학입시나 진로의 결정은 실패하면 다른 대안이 있거나 다시 도전할  있지만  선택은 ‘다시 없었다, 아픈 몸으로 복잡한 과정과 절차들을 밟아나가야 했다.  의지만으로 모든 것이 가능한 상황이 아니었다. 두통을 이겨내며 수술 관련 논문을 찾아서 읽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수술 방법과 미국의사의 수술 방법에 차이가 있었다. 미국 의사는 재발률을 줄이기 위해 위턱뼈를 다른 절개방법으로 수술했다. 재발률이 높은  경우에는 미국 의사의 수술방법이  적합했다. 그제야 미국에 가겠다고 정말로 결정할  있었다.     


 선택은 곧 모험이었다. 나를 오래도록 괴롭히는 이 병은 나에게 내가 가진 것보다 많은 에너지를 요구했다. 지쳐서 쓰러져 있으면, 아직 힘이 남아있다고 몰아붙였다. 피하고 싶은 일들을 계속 겪어야 하는 것이 성가시고 두려웠다. 하지만 새로운 길이 생겼다.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우선 새로운 길이 열렸다는 것 자체만으로 감사하자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내일 일은 내일이 걱정하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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