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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드 Jan 13. 2019

고통 밖에서 울다

고통 안의 나를 위한 눈물

 잠들지 못하는 밤은 예사였다. 창밖이 어두워지면 온 몸의 통증은 환하게 불을 밝힌다. 침대에서 한참을 뒤척이다 오랜만에 TV를 켰다. 감정 없는 로봇처럼 채널을 돌리다가 네모난 화면 한 구석의 글자를 보고 손가락을 멈췄다. ‘얼굴뼈가 녹는 여자’ -렛미인-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지원을 하면 매주 한명씩 채택해서 수술을 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얼굴뼈가 녹는 여자라니. 안타까운 마음에 어떤 사연인가 궁금해 하면서 TV 앞으로 다가 앉았다.     


‘충격적인 사연으로 렛미인을 찾은 지원자’라는 자막이 떴다. 주인공의 얼굴이 보였다. 핼쑥한 비대칭 얼굴, 지친 기색이 역력한 표정, 생기를 잃은 눈동자. 퇴행성관절염으로 턱뼈가 녹아내리고 있단다. 오른 쪽 턱뼈가 녹아서 일그러진 좌우 비대칭의 얼굴. 아메바처럼 일그러진 오른쪽 턱관절이 엑스레이에 보였다. 손상된 턱관절 부위의 뼈가 녹아서 위턱과 아래턱의 돌기가 울퉁불퉁 마모되어 있다.     


 갑자기 명치 위쪽에 큰 돌로 내리치는듯한 묵직한 통증이 덮쳤다. 내가 울고 있었다. 아니 통곡하고 있었다. TV 속 나를 잡아 끈 불행한 사연이 내가 지나온 이야기라는 걸 머리가 알아차리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영혼과 몸이 분리된 사람처럼 잠시 어리둥절했다. 그 순간 영혼이 몸에서 스르륵 빠져나온 것 같았다. 놀란 영혼은 TV 앞에 주저앉아 가슴을 부여잡고 서럽게 우는 나를 우두커니 바라 볼 뿐이었다. 몸속의 작은 세포 하나하나가 지나간 고통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던 걸까. 몸이 마음보다 민첩하고 정직했다.     


 선천적인 안면 비대칭이 점점 심해지면서 턱관절에 문제가 생겼다는 TV 속 지원자는 수술을 위한 선(先)교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려워진 가정형편 때문에 수술하지 못한 채 오른쪽 턱의 퇴행성관절염은 계속 악화되었다. 수술을 받고 싶어서 TV에 사연을 신청했단다. 발병하기 전 그녀의 조금 비대칭 했던 얼굴과 턱뼈가 손상된 지금의 모습이 대비되어 화면을 채웠다. 고등학교 때 턱을 다치기 전까지 내 치아와 턱은 완전히 멀쩡했었다. 이후 구멍이 뚫린 채 제자리를 이탈한 턱관절에 수술을 받으며 턱과 교합이 조금씩 변했지만 내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재발하면서 양 쪽 턱에 모두 퇴행성관절염이 생기면서 턱뼈가 녹아내리는 것은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일이었다. 일상을 침범하는 통증이 이어졌고, 왼쪽과 오른쪽 뼈의 녹는 정도가 달라서 위턱은 오른쪽으로 아래턱은 왼쪽으로 돌아가서 치아까지 완전히 어긋났다. 손상된 아래턱뼈는 제자리를 벗어나 뒤로 들어가 버렸다. 사정없이 밀려들어간 아래턱뼈가 기도를 막아서 숨 쉬기도 힘들었다. TV속 진행자와 관객들이 놀라며 안타까워하는 주인공보다 내 사연이 조금도 가볍지 않았다. 아니 한 쪽이 아니라 양쪽이 다 아픈, 두 번이나 수술하고 재발했던 내 상태가 분명히 더 나빴다.      


 TV 속 지원자의 아픔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 되어 화면 속으로 이끌려 들어갔다. 안다는 것은 머리를 끄덕이는 공감이 아니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이해도 아니었다. 지나온 기억이 모든 세포에 새겨져 있는 묵직한 통증이었다. 진통제를 하루에 10병씩 먹어야 하는 그 통증을 나는 알고 있었다. 몸을 던지려고 여러 번 옥상에 올랐다는 그의 발걸음을 무게를 고스란히 느꼈다. 저 사람의 몸무게를 37kg까지 빠지게 한 앙상한 일상을 내 몸은 알고 있었다. 턱뼈가 닳아있는 익숙한 엑스레이가 네모난 화면에 클로즈업 되었다. 염증으로 마모된 턱뼈의 거칠어진 모서리가 보였다. 일상이 부서지는 날들을 감당하다 TV에 사연을 신청했을 그녀의 간절함의 무게가 마음을 짓눌렀다. 숨이 막혔다. 십년 전, 온 몸의 수분이 빠져나가도록 울던 내 모습이 어른어른 살아났다.      


 지나온 아픔이 전시되고 있었다. 그저 시청하려고 TV앞에 앉았는데 어느새 주인공이 되어 고통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수면제를 수십 알 털어 넣어 겨우 잠들던 내가, 다음날 깨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던 내가 저기 보였다. 시큰한 통증 때문에 울컥하면서 숟가락을 내려놓던 내가 밥상 앞에 앉아 있다. 수박까지도 블렌더로 곱게 갈아서야 먹을 수 있었던 여름이 보였다. 귀에서 사이렌 소리가 수시로 울리고, 머리가 깨질듯 한 통증 때문에 한 시간도 편히 잠들지 못하던 내가 침대에 누워있다. 진통·소염제 때문에 위가 약해져 턱을 부여잡고서 애써 먹은 것을 토해내는 모습도 보였다. 고통에 파묻혀서 그 시간을 지나왔기에 고통 밖에서 고통 안의 내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낯설었다. TV속 다른 사람의 사연을 통해 저릿하게 살아나는 내 모습이 마음을 날카롭게 긁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TV 앞에서 나는 한참을 잃어나지 못했다. 눈물과 콧물을 닦은 휴지가 바닥에 점점 쌓여갔다. 이후에도 한참을 잠들지 못했던 것은 단지 지나간 아픔 때문만은 아니었다. 결과가 좋으면 과정은 미화될 수 있다. 금메달을 딴 사람과 아깝게 메달을 놓친 사람이 기억하는 훈련의 고통이 다른 것처럼, 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편집되고 해석된다. 순간을 지나고 나면 지금까지의 모든 과거는 새로운 현재의 기준에 의해 재해석 된다. 그래서 고통 그 자체 뿐 아니라 해석된 고통을 함께 앓는다. 모험 같았던 수술을 받고 회복돼서 그리워하던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면, 고통 안에 있는 나를 보는 마음이 조금은 가벼웠을 것이다. 하지만 해피 앤딩으로 편집될 수 없는 현실이 과거의 기억을 더 아프게 해석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 날 이후로 지난 시간을 떠올릴 때 이따금씩 느껴졌던 가슴의 통증이 사라졌다. 2012년의 가을 밤, 하필 그 시간에 그 사람 이야기를, 내 이야기를 보게 된 것일까. 어쩌면 내게 위로가 필요해서가 아니었을까. 고통 안에서 우는 것은 비명이었다. 하지만 고통 밖에서 나를 위해 우는 것은 위로였다. 힘든 시간 한가운데에 있을 때는 줄곧 자신을 잃어버린다. 고통에서 탈출하고 싶은 간절함과 현실의 좌절이 뒤섞여 내내 비명을 지른다. 그래서 고통 밖에서 고통 안의 나를 바라보는 것은 가장 익숙하면서 가장 낯선 일이 된다. 아무에게도 이야기 못한 마음을, 표현할 수 없었던 슬픔을 마주하는 시간은 흘린 눈물의 양만큼 마음을 씻어 내렸다. 아픔에 묶인 나를 놓아주기 위해 그만큼의 눈물이 더 필요했던 것일까. 두툼한 고통의 갈피마다 숨어있던 그 시간의 나를 위해 온전히 울어줄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했었고, 그게 바로 나였는지도. 슬픔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라 슬퍼하는 나를 위해 울어주는 것. 그 눈물로 잊고 싶었던 나를 끌어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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