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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드 Jan 13. 2019

직업이 결핍되었다

고통의 무게와 결핍의 무게

 여행을 가려고 하는데 차를 잃어버렸다. 없어진 차를 찾느라 사방을 뛰어다니며 헤맸다. 한참 후 차를 겨우 찾았지만 이미 늦어버려서 여행을 가지 못한 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다음 장면에서 다시 내가 허둥대고 있다. 이번엔 비행기를 타려고 하는데 티켓이 없어졌다. 허둥지둥 거리며 티켓을 찾고 있다. 동행하던 친구들은 모두 비행기를 타는데 나만 타지 못하고 가방을 한참을 뒤적였다. 나를 태우지 못한 비행기가 떠나는 것을 허망하게 바라보다가 서글픈 마음으로 잠에서 깼다.      


 ‘직업이란 내게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골똘히 하면서 뒤척거리다가 설핏 잠이 들었나보다. 며칠 전 정기 진료 중 의사에게 갑작스레 받은 질문 때문이었나. 무엇을 하느냐는 단순한 물음이 마음에서 파문을 일으켰다. 진료실을 나와 집으로 오는 길이 유난히 추웠다. 두꺼운 외투를 입고 모자에 마스크 까지 썼는데도 마음 한 귀퉁이가 시려왔다. 이 꿈이 ‘직업이란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대한 내 마음 속 깊이 숨어있던 생각을 보여준 걸까. 잠에서 깬 뒤 한참동안 꿈속에 나타난 이미지 주변을 서성거렸다. 여행을 떠나는 그들 속에 합류하지 못한 서러운 내 모습이 현실처럼 살아나서 마음을 흔들었다.       


 스물여섯. 대학원을 휴학하기 전까지 그리던 삶은 지금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석사를 마치고 취직을 해서 돈을 모은 후 외국으로 유학을 가고 싶었다. 유학을 가지 않더라도 당연히 취직을 해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턱관절 질환이 재발해서 학기 중에 휴학계를 제출했을 때, 교학과 문을 닫고 나오면서 꾹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교정을 등지고 나오던 날에도 2년 안에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세 번째 수술을 받고서 허용된 휴학기간 동안 복학하지 못했다. 결국은 자퇴를 했다.      


 그 이후 ‘환자’로서 지독하게 특별한 생활이 십년 이상 계속되었다. 이미 손상된 관절 때문에 수술 후에도 턱이 불안정했다. 불편하긴 했지만 조심스럽게 회복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날 즈음 갑자기 머리와 턱의 근육에서 경련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경련은 점점 온몸으로 퍼졌고 마비증상이 나타났다. 경련을 일으킨 근육이 뼈에 유착되어 굳어버렸다. 온 몸의 근육이 긴 끈으로 연결된 하나의 근육처럼 움직였다. 다리만 움직여도 머리끝까지 아파서 내내 누워서 지내야 했다. 어느 날은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프고, 다음날은 턱을 움직이지 못했다. 갈비뼈와 목의 근막이 굳어서 숨쉬기도 힘들었다. 어떤 날은 배의 근육이 딱딱해지면서 하혈을 심하게 하기도 했다. 세 번째 수술을 했던 의사는 이전에 두 번 수술했을 때 절개했던 근육에서 문제가 생겨서 경련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재활을 담당하던 의사는 수술 전후 먹었던 독한 약들 때문에 전신 근육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사람이 다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가 겹쳐져서 불행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건지도 몰랐다.          


 몸이 굳어가는 아픔보다 계속되는 고통의 기억이 마음을 주저앉혔다. 오랜 시간 살아야겠다는 의욕도 없이 누워서 지냈다. 성가시게 자라나는 손톱이 살아있다고 일깨워 주는 암흑의 시간이었다. 이후 긴 재활의 시간을 겪으면서 몸도 마음도 조금씩 단단해졌다. 열심히 치료받고 운동하면 조금씩 나아졌다. 그러다가 지난 시간의 노력이 무색하게 건강이 다시 나빠지는 날을 통과해야할 때도 많았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이후 디시 또 수술을 피할 수 없었다. 몸은 연결되어 있어서 한 군데가 크게 고장 나면 다른 곳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면 어차피 나을 수 없는 몸인데, 불가능한 일을 목표로 무리하게 애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에 휩싸이곤 한다. 내년에는 다시 학교로 돌아갈 것이라는 다짐으로 그 해 힘든 치료를 견뎌냈다. 하지만 10년이 넘게 그 다짐을 반복하며 지쳐가고 있었다.          


 세 번째 수술을 받기 전까지는 쉴 새 없이 바쁘게 살았다. 대학교 입학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아르바이트로 고등학교 학생들 과외를 가르쳤다. IMF의 여파를 피해가지 못한 집안 상황 때문에, 두 번의 수술을 하고 얼굴에 붕대를 붙이고 다니면서도 한 주도 아르바이트를 쉬지 않았다. 그리고 대학원을 다니면서는 연구실에서 하던 외국 계 제약회사의 컨설팅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생활비를 벌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사회에 나가서 일을 해야 할 시기에 ‘백수’가 되었다. 통장의 잔고도 금세 바닥이 났다. 친구들은 직장에 취직하고 대리, 과장, 차장, 부장으로 명함이 바뀌었다. 같이 공부하던 동료들이 석·박사를 마치고 사회에서 자리를 잡아갔다. 나는 그 시간 동안 아프고, 아프고, 또 아팠다. 친구들이 사회생활의 경력을 쌓아가는 동안 나는 환자로서의 일상을 성실하게 살았다. 하지만 그렇게 나이를 먹으면서 그 시간만큼 사회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었다. 이력서에 쓸 단 한 줄의 경력도 될 수 없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을 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무엇을 잘하는 사람인지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그 사실이 자신감을 점점 갉아먹었다.     

   

 “젊은 사람이 안타깝네. 빨리 경제활동을 해야지” 가끔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내게 물으면 난 아파서 쉬고 있다고 대답한다. 그러면 번번이 돌아오는 대답이다. 그럴 때면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나태하고 의욕 없는 사람이 된 것만 같다. 노동을 하지 않는다면 내가 하는 많은 일들은 가치를 가지지 못하는 걸까. 내가 음식을 씹고 잠을 자고 밖에 외출할 수 있는 몸을 만들기 위해서 어떤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그들은 모른다. 치료를 받고, 해부학을 공부하고, 운동하는 시간들로 하루는 늘 꽉 채워진다. 치료를 받지 않는 날에는 하루에 6시간씩 혼자서 재활하고 운동한다. 몸이 더 나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이다. 내게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현재의 불안과 미래의 막막함이 밀려와 마음을 옥죌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멀쩡한 사람이 왜 일을 하지 않느냐는 사람들의 의아한 시선과 치료하기 어려운 환자라는 의사들의 난감한 표정 사이 어디쯤에서 헤매는 사람이 되곤 한다.           


 나는 오빠의 노동에 오랜 시간 기대고 있다. 엄마와 오빠와 나, 세 식구가 함께 살고 있다. 세 번째 수술을 위해 집에 있는 모든 돈과 집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아서 모든 돈을 탈탈 털어서 썼다. 하지만 수술 후 사회로 복귀하지 못했다. 그래서 30세부터 오빠는 가장이 되었다. 공부도 잘하고 좋은 대학을 나와서, 회계사로, 컨설턴트로 일하다가 지금은 대기업에서 일하는 오빠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다. 그래서 겉으로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간경화로 힘든 엄마와 아픈 나의 생활비와 치료비를 오롯이 혼자 감당하고 있다. 혼기가 훨씬 지났지만 가족을 돌보느라 자신의 가정을 꾸리지 못하는 오빠를 보면, 고마우면서도 늘 마음에 큰 빚을 진 기분이다. 오빠는 회사 일에 지쳐서 새벽에 집에 돌아오는 날이 잦다. 정작 자신의 건강을 돌 볼 여유가 없어서 고혈압 약을 먹는 오빠를 보면 내가 큰 짐을 보탠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밀려온다. 오빠의 부담을 하루라도 빨리 덜어주고 싶어서 더 열심히 치료받고 운동하지만 노력만큼 몸이 회복되지 않아서 마음이 급해지기도 한다.       

   

 친구들이 직장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을 들으며 자주 생각에 잠긴다. 그들에게 생계이고 생존이고, 성취이도, 고통이기도 한 직업이 내게는 ‘공백’이고 ‘결핍’이 되었다. 성취가 동반된 누군가의 고통의 무게를 부러워한 적이 있다. 생계를 위한 처절한 고통의 무게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누가 고통의 무게와 결핍의 무게를 함부로 저울질 할 수 있을까. 노동을 선택한 삶도, 노동을 해야만 하는 삶도, 노동을 하지 못하는 삶도 저마다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견디는 것이었다. 이제 나는 무얼 하느냐는 질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쉬고 있다는 대답 대신 어떤 대답을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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