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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드 Jan 12. 2019

진단이 잘못되었다

삶의 틈이 벌어졌다

 “이제 치아 교정을 해야 합니다”     

  의사는 엑스레이를 보며 앞니 부분을 가리켰다. 개교합(open bite)이 오래되어 앞니 뿌리가 짧아지고 있다며. 교합이 잘 맞지 않아서 턱관절에 통증이 심해지는 거라고 말했다. X선이 내 몸을 투과해서 찍힌, 살과 거죽을 벗겨낸 저 앙상한 사진 앞에서 모든 환자의 아픔은 일반화된다. 그 일반화된 아픔을 다루는 것은 의사에겐 단조로운 일상이지만 환자에게는 일생일대의 사건이 되기도 한다. 나는 교정만으로 나아질 것 같은 단순한 통증이 아닌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턱관절 통증이 이전보다 훨씬 날카롭고 턱뼈도 조금씩 변형되고 있다고. 두어 달 전에 찍은 졸업사진을 보며 한 친구가 조심스럽게 턱이 많이 아픈거냐며 걱정하는 눈빛으로 묻기도 했다. 얼굴 모양이 변하고 있다고. 하지만 의사는 손상이 심한 관절 때문에 아플 수는 있지만 턱뼈까지 변형되지는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2001년 가을, 두 번 수술했던 턱관절에 이상증세가 다시 나타났다. 음식을 씹을 때마다 시큰한 관절통이 계속되었고, 편두통이 심해서 버스를 타고 내리면 구토가 났다. 하지만 당시 대학교 마지막 학기였던 나는 병원에 갈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입학하자마자 휴학을 한 탓에 더 이상 졸업을 미룰 수가 없었고, 아르바이트도 그만둘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한 학기 동안 진통제와 근육이완제를 밥처럼 먹으면서 버텼다. 학기를 겨우 마치고 병원을 찾았다.      


 관절의 마모 때문에 윗니와 아랫니의 틈이 벌어지는 개교합(open bite)은 고등학교 때 턱을 다친 후로 조금씩 진행되고 있었다. 당장 교정할 정도는 아니라서 지켜보던 중이었다. 의사는 이제 치아 교정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진단에 대한 처방으로 치아교정이 결정되었고 교정과로 옮겨졌다. 턱을 다치면서 가지런했던 치아의 틈이 벌어졌고, 치아처럼 일상의 틈도 서서히 벌어지고 있었다. 교정해서 그 틈을 메우면 벌어진 일상의 틈도 금세 매워지리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몸의 세포를 통해 느껴지는 통증의 감각은 예사롭지 않았지만, 단호한 의사의 말처럼 조금 더 간단한 문제이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치아교정을 하려면 윗니와 아랫니에 기찻길 같은 두 줄의 브라켓을 부착한다. 메탈과 세라믹 두 종류가 있다. 2년 이상 치아에 붙이고 있어야 했기에 보기에 깔끔한 세라믹을 선택했다. 그러나 턱관절이 아파서 칫솔질 하려고 입을 벌리기도 힘든 상황에 브라켓을 부착하기 위해 한 시간 정도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은 고문과도 같았다. 중간에 너무 아프면 쉬기도 하면서 드디어 마지막 치아까지 기찻길이 놓였다. 다 끝났다는 말에 안도하며 지친 입을 다물고 일어서려는데 레지던트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세라믹으로 하기로 하셨죠?” 

“예. 왜요?”

“어떡하죠? 제가 실수로 메탈로 붙였어요. 죄송해요. 세라믹으로 다시 붙여 드릴께요.”    

 

 턱이 아파서 다시 입을 벌리기 힘들어 잠시 망설였지만, 앞으로 긴 시간동안 치아에 붙어서 한 몸처럼 다녀야 하는 교정 장치였기에 세라믹으로 다시 부착하려고 누웠다. 레지던트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역력해서 화를 낼 수도 없었다. ‘그래, 실수 할 수도 있지’ 생각하면서 애써 웃으며 마음을 다독였다. 하지만 마음만큼 내 턱은 괜찮지 않았다. 잘못 붙인 메탈 브라켓을 하나하나 떼어내는 시간과 다시 세라믹으로 붙이는 시간까지 한 시간 이상의 시간이 더 걸렸고, 두 시간 이상 무리하게 벌리고 있던 턱관절은 열이 나면서 바늘로 찌르는 듯 쑤시고 시큰거렸다. 머리가 띵해지고 구토가 나면서 속이 울렁거렸다. 턱이 얼얼해서 제대로 씹을 수도 먹을 수도 없었다.      


 치아교정을 시작하고 몇 달간 통증이 더 심해지고 턱을 움직이기 점점 어려워졌다. 교합이 안정되기는커녕 교합은 점점 벌어지고 증상은 계속 악화되었다. 하지만 담당 의사는 내 상태를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다른 대학병원의 구강외과를 찾아가서 다시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턱관절의 염증으로 턱뼈가 녹으면서 아래턱뼈가 제자리를 벗어나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그 정도가 심해서 교정만으로는 치아를 되돌릴 수 없다고 했다. 턱뼈를 절개하는, 수술비도 수 천 만원이 드는 큰 수술이 필요한 상태였다.      


 머리가 멍해졌다. 턱관절 염증 때문에 턱뼈가 변형되면서 개교합이 심해졌던 것인데, 교합 때문에 턱관절이 나빠진 것으로 잘못 진단한 탓이었다. 원인과 결과가 바뀌었다. 잘못된 진단으로 잘못된 처방이 내려졌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교정과 레지던트의 실수가 더해졌다. 그렇게 약해질 대로 약해진 턱관절에 무리하게 차아교정을 하면서 턱뼈의 변형이 가속화되었다. 위턱과 아래턱을 잇는 턱관절의 염증이 뼈를 흡수해서 위턱은 위로 들리고 아래턱은 뒤로 밀려들어가고 있었다.     


 이제 수술을 하기 위해 여러 병원의 구강외과를 전전해야 했다. 일반 교정과 수술을 위한 교정은 다르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치아교정은 불필요한 과정이 되었다. 교정을 했던 대학병원에서 교정비용 500만원 중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고 다른 대학병원으로 옮겼다. 억울한 사연이지만 명백한 의료사고의 영역에 속하지는 않는 케이스였다. 의료사고로 소송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해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장 먹고 잠자고 말하는 것도 힘든 상황에서 소송을 할 만한 비용과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았다. 의사와 의료시스템에 분노할 여력도 없었다. 우선 내 몸이 낫는 것이, 사는 것이 중요했다.     


 나를 수술하고 진단을 잘못했던 의사는 내가 병원을 옮긴 이후에도 턱관절 최고의 명의로 TV나 인터넷에 자주 등장했다. 다른 이들에게는 명의이지만 내게는 아니었다. 그 의사에게는 기억조차 못할지도 모르는 진단의 실수가 내 삶 전체를 흔들고 있었다. 잘못된 진단은 잘못된 처방으로 이어졌고, 나는 그 실수를 온 삶으로 감당해야 했다. 의사도 사람이기에 잘못 진단하고 실수할 수 있지만, 환자의 증상과 통증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은 내내 아쉬웠다. 진단이 틀렸을 경우 환자가 겪어야 할 고통의 몫이 고려되지 않는 것이 의료시스템의 현실적인 한계이기도 했다.     


 스물여섯이 시작되는 몇 달 사이, 내 질병과 의사의 판단 착오와 순간의 실수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나를 덮쳤다. 금세 메워질 거라 믿었던 일상의 틈은 깊은 빙하가 갈라져 생긴 크레바스처럼 아득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벌어진 틈만큼 삶에도 균열이 일어났다. 손가락 한마디보다 작은 관절 때문에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이제 사치스러운 일이 되었고, 그 무렵 다니던 대학원에 휴학계를 제출했다. 열매를 꿈꾸며 달려가던 시간이 갑자기 멈추었다. 잃어버린 얼굴과 건강을 되찾기 위해 낯선 일상을 메워하는 시간이 철벽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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