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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드 Jan 12. 2019

마지막 하굣길

익숙하던 것들이 낯설어지는 순간

 교학과 문을 닫고 돌아서는데 참고 있던 눈물이 쏟아졌다. 2002년 가을, 진단서를 첨부한 휴학계는 이제 접수되었다. 2년의 휴학기간 안에 돌아올 수 있을 테니 괜찮다고 마음을 다독여도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자꾸만 새어나왔다. 다시 돌아오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걸 몸이 먼저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교문으로 나오며 올려다 본 가을 하늘은 유난히 푸르렀고, 교정을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경쾌했다. 화사한 배경에서 나만 다른 세상으로 선명하게 분리되고 있었다. 외톨이가 된 것 같았다. 매일 오가던 길이 낯설었고, 벤치도, 나무도, 교문도 이전과 달라보였다.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길, 빠르게 지나가는 창밖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에 눈을 감았다. 그 날의 하굣길은 모든 것이 낯설었다.     


 몇 달 전, 대학원 공부를 시작하면서 기대에 차 있었다. 하고 싶은 공부만 할 수 있는 처음의 기회였다. 집안 형편 때문에 취직하는 것이 좋겠다는 엄마를 설득하면서 꼭 하고 싶었던 공부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전에 수술 받았던 턱관절 질환이 재발하면서 도저히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대학원을 한 한기 다니다 말고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컸던 기대만큼 아쉬움이 폭풍처럼 마음을 휩쓸었다.      


 집에 돌아오던 시간, 6년을 오가던 길 위에서 겪었던 수많은 순간들이 떠올랐다. 인생의 큰 사건은 과거의 기억을 재편한다. 기억은 수시로 변하는 거름망 같아서, 삶이 통째로 흔들리면 지나간 기억이 모두 새로운 체에 의해 다시 걸러진다.           


 힘들었던 시간은 가벼워졌다. 삼수를 실패해서 다시 재수 때 입학했던 학교로 복학했던 기억은 무난한 어려움으로 변했다. 복학을 하고서 마음을 붙이지 못해 방황을 했던 시간도 인생에서 겪어볼만한 아픔으로 여겨졌다. 이중전공을 하면서 열심히 학교를 다니겠다고 마음먹자마자, 턱관절 증상이 악화되어 수술을 받게 되었던 기억도 무채색은 아니었다. 이따금씩 혼자 눈물을 훔치던 교정 한 구석의 벤치도 조명을 받은 듯 환해졌다. 삶이 덜그럭거리긴 했지만 그래도 의지를 들여 무엇인가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힘들었던 시간들이 그만하면 견딜만한 어려움으로, 비교적 쉬운 어려움으로 바뀌었다.          


 평범했던 시간은 반짝거렸다. 우여곡절이 많은 시작이었지만, 대학교 생활은 즐거운 기억도 많았다. 단짝 친구와 깔깔거리며 오가던 돌다리 길. 친구들과 점심시간과 쉬는 시간마다 무엇을 먹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던 시간. 너무 많이 먹는다는 선배의 핀잔에 ‘나에게는 돌쇠의 피가 흐른다’며 더 많이 먹을 수 있다고 맞받아치던 일. 시험 전날 학교 도서관에서 밤 새워 공부한다는 호기로운 계획을 세우고, 두꺼운 책을 배게 삼아 잠만 자던 모습. 학교 앞 PC방에서 밤 새워 그룹 레포트를 쓰던 겨울 밤. 주중에는 학교와 아르바이트로, 주말에는 교회를 다니면서 ‘아프다’보다 ‘바쁘다’를 입에 달고 살던 시간들이었다. 사소해서 당연했던 일상들이 찬란해졌다.   

        

 견고했던 시간이 휘청거렸다. 이전에 턱관절 수술을 했을 때, 의사는 상태가 나빠서 60프로 밖에 수술을 못했다며 조심해야한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걱정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걱정한다고 좋아지는 것이 아니기에 마음을 편하게 가졌다. 잘 관리하면 최악의 상황은 오지 않을 꺼라는 나름의 믿음도 있었다. 턱이 자주 불편하긴 했지만 참을 수 있는 정도였기에 그냥 견디며 지냈다. 얼굴에 붕대를 붙이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턱관절이 신경을 눌러 버스에서 내려 구토를 하고, 통증 때문에 진통제로 버티는 날이 늘어났지만 불평하지 않고 그저 열심히 살았다. 힘들어도 덤덤하게 지내왔던 시간들을 생각하자 서러움이 밀려왔다. 아프지 않아서, 힘들지 않아서 불평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데 삶이 내 믿음을 배신하고 등 돌린 것 같았다.           


 견고했던 마음의 축이 무너지는 아픔. 삶이 휘청거리는 것은 이 지점이다. 오랜 노력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허무함이 가슴 한 켠에 상처를 낸다. 그러다 이 불행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자꾸만 거슬러 올라가 되짚어 보게 된다. 슬픔은 혼란스러움을 몰고 온다.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지점으로 자꾸 돌아가서 만약이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마지막 학기를 시작할 무렵부터 두 번 수술했던 턱관절에 다시 이상을 느꼈다. 하지만 재수도 했고 휴학도 해서 더 이상 졸업을 미룰 수 없었다. 진통제와 소염제를 밥처럼 먹으면서 간신히 버텼다. ‘그 때 휴학하고 일 년을 쉬었다면 좋았을까. 이전에 수술 했을 때 일주일이라도 더 쉬었어야 했나. 내가 조금 더 예민한 사람이어서 통증을 잘 관리했다면 이렇게 나빠지지는 않았을까.’          


 그러다가 8년 전 그 날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고등학교 2학년 2교시 쉬는 시간. 도시락을 먹다가 수업 종이 울려 급하게 도시락 정리해서 내 자리로 가려다가 책상에 다리가 걸려 넘어진 날. 앞 책상에 턱을 '쿵' 부딪히고 바닥으로 넘어지며 눈앞에 별이 번쩍이던 순간. 넘어지면서도 소중한 도시락을 보호하듯 껴안고서 턱을 다친 그 상황이 그 당시에는 시트콤 같았는데, 블랙코미디를 지나서 이제는 지루한 비극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 날 그 순간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렇게 슬픈 하굣길을 걷지 않아도 됐을 텐데. 좀 더 근사한 미래를 꿈꿀 수 있었을 텐데.      


 만약이라는 후회와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는 위안이 뒤얽혔다. 내일의 등굣길이 사라진 하굣길에서 하락하는 마음을 부둥켜안고 애써서 발을 디뎠다.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낯선 발걸음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건강 왕국과 질병 왕국의 두 시민권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수전 손택의 말에 의하면, 나는 질병 왕국으로 체포되어 가고 있었다. 건강 왕국과 질병 왕국의 이중 시민권자로 살다가 이제 건강 왕국의 시민권을 잠시 박탈당했다. 잠시, 반드시 잠시여야 한다고 되뇌며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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