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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드 Nov 17. 2019

상실의 쓸모

슬픔이 슬픔을 위로할꺼야

 수술 후 한 달여 만에 교회에 갔다. 예배가 끝날 무렵 엄마, 아빠들이 아기를 안고 긴 줄을 섰다. 가족이 차례로 단상에 올라가서 유아세례를 받는 모습이 대형 화면에 비쳤다.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는 아이들의 표정과 행동은 가지각색이다. 싱글거리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갑자기 목사님 손을 덥석 잡기도 하는 모습에 여기저기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에게는 이제 불가능한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순간 머리를 스쳤다. 한 달 전, 근종을 수술하면서 일부만 살린, 누더기처럼 기워진 내 자궁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생하게 그려졌다. 아이를 배 속에 품고, 심장 박동소리를 듣고, 산통을 겪으며 아이를 낳는 일이 내 인생에서 사라진 것이었다. 꼬물거리는 내 아이의 발가락을 만지고, ‘엄마’라고 부르는 목소리를 듣는 일도, 아이를 키우며 힘들다고 넋두리를 할 기회도 인생에서 삭제되었다. 결혼 계획이 있거나, 평소 아이를 꼭 낳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교회 다니면서 수십 번은 보았던 유아세례 장면이었는데, 그날은 내가 경험하지 못할 인생의 장면이 시연되는 것만 같았다. 안하는 것과 못하는 것의 차이가 이런 걸까. 이상하게 가슴 한 켠이 바늘로 쿡쿡 찔리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상실이 가진 것을 잃는다는 뜻만이 아니라는 건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상실은 당연히 그렸던 미래를 잃어버리는 것도 포함한다. 그렇게 슬픔이 확장된다. 턱관절이 마모되고 턱뼈가 닳는 아픔은 단지 현재의 고통만이 아니었다. 건강한 모습으로 당연히 누릴 것이라 믿어왔던 미래까지 송두리째 사라지는 것을 의미했다. 닳아버린 뼈가 뒤로 밀리면서 기도를 막아 숨쉬기조차 어려운 상황보다 스물여섯에 꿈꾸던 모든 것들을 재부팅 해야 하는 현실이 더 심장을 조여 왔다. 음식을 씹고 말할 때 느껴지는 통증과 함께 낯선 모습으로 견디어야 하는 미래의 무게가 뒤섞여 마음을 짓눌렀다. 슬픔은 ‘결코’(never)의 무게이며 슬퍼한다는 것은 저마다 ‘결코’를 말하는 과정이다. (<슬픔의 위안> p24) 내게 지난 15년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을 겪으며, 간절히 바라던 미래는 ‘결코’ 오지 않는다는 것을 함께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나는 홀로 외딴 섬에 갇혔었다. 스물여섯. 취직을 준비하고, 한창 멋을 부리고 예뻐지기 위해 시술과 수술을 고민하기도 하는 또래들과 다른 세상으로 옮겨졌다. 진로를 고민하고 몸무게를 걱정하고 피부를 고민하는 친구들과 나눌 이야기가 없었다. 당연히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때로 불만을 가지기도 하는 게 ‘얼굴’인줄 알았다. 하지만 태어난 얼굴 그대로 살아간다는 것조차 내겐 누릴 수 없는 사치가 되었다. 턱관절, 뼈에 이어 근육에 까지 문제가 생기면서 표정조차 마음대로 짓기 어려워지자 스스로를 외면했다. 강성은 시인의 말처럼 너무 명백해서 비현실같이 느껴지는 현실이었다. 누구에게 위로받을 수 있는 상실이 아니었다. 전화도 끊고 인터넷도 거의 하지 않으면서 동굴로 들어갔다.     


 ‘군대가 들어오면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생각이 쳐들어오면 도저히 저항할 길이 없다’(빅토르 위고)는 말처럼 상실감에 점령당했던 시간. 이십대 후반부터 삼심대 초반의 나는, 삶의 가장 빛나는 한 토막이 잘려나간 아픔을 오래도록 앓았다. 이력서를 쓰고 취직에 떨어지고 연애가 잘 되지 않아 고민하는 사람들조차 부러웠다. 실패의 기회조차 누릴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삶은 늘 헛헛했다. 내 인생의 시계는 스물여섯에서 멈춰버렸다. 다섯 살부터 고된 훈련을 하느라 정상적인 유년기를 보내지 못해 어린 시절에 집작하는 마이클 잭슨처럼, 나도 누리지 못한 스물여섯 즈음에 삶이 걸려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잘라진 시간에 마음이 묶여있었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던... 내 오래되고 좋은 데미안’ 우연히 보게 된 친구의 싸이월드 글에서 시선이 멈췄다. 친구가 한동안 만나지 못하는 나를 생각하며 적어놓은 글을 뒤늦게 보게 되었다. 내게 과분한 친구의 글을 통해 지난 시간을 떠올렸다. 물론 아프기 전에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이 좋은 상황은 아니었지만, 건강이란 게 그런 거였다. 많은 부족함을 보이지 않게 메울 수 있는 것. 일상을 일구어 나가고 미래를 꿈꾸며 활기차게 살 수 있는 일상의 힘은 다른 어려움을 작아보이게 만들 수 있었다. 그렇기에 건강을 잃는다는 건 더 많이 잃는 것이었다. 동굴에 스스로를 가둔 채 지내던 어느 날, 내 사연을 ‘잠시, 소설과 같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고 표현하는 친구의 마음을 읽으면서 오래 생각에 잠겼다.      


 무엇을 잃었다는 것은 무엇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기대가 무너졌다는 건 희망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워 할 시간이 있다는 것은 불행이 아니라 행복한 건지도 몰랐다. 그리워지는 모든 것들이 그 때는 공기처럼 당연하다고 느끼던 것들이었다. 버스타고 졸면서 학교를 오가고, 과제 때문에 바동거리고, 친구와 집근처 플라타너스가 늘어진 거리를 깔깔거리면서 함께 걷는 발걸음. 그 때는 그것이 그리워 질 줄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장면들이었다. 지금 당연히 누리고 있는 것들 중에서도 그런 순간이 많이 숨어있을 터였다. 사소한 일상의 갈피마다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지도 모른다.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사실은 찰나의 선물이었음을, 잃은 뒤에야 깨닫는 것이 인간의 필연적인 어리석음 인지도. 그 모든 것을 안다고 해도 상실을 겪는 모든 순간은 여전히 아플 수밖에 없지만.     


 50여명의 가족이 유아세례를 받으며 단상을 오르내리는 동안 지나간 15년의 시간을 곱씹었다. 평범하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던 많은 것이 부서졌다. 졸업도, 취직도, 결혼도, 출산도. 당연히 통과할 줄 알았던 인생의 사건들은 나를 빗겨갔다. 지금 느끼는 상실감은 간절했던 많은 것을 잃어버린 지난 시간 비하면 큰 상실도 아니었다. 무엇을 잃는 것이 모든 것을 잃는 것도 아니었다. 지나간 기억을 되새기며 유아세례 중에 눈물이 맺히려는 순간의 위기를 모면했다. 지나간 상실의 기억이 현재의 상실을 가볍게 했다. 쓸모없다고 생각한 시간들이 유용해지는 순간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엄마와 오빠와 함께 교회를 빠져나오며 생각했다. 지금 이 시간을 잘 기억해 놓아야겠다고. 오늘의 슬픔이 다음날의 슬픔을 위로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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