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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드 Jan 13. 2019

부지깽이 비망록

계속해서 돌을 굴려야하는 시지프스

“헤모글로빈 수치가 8이에요. 지금 바로 수혈 두 팩 받아야 합니다.” 


 수술 하루 전, 입원 후 바로 피검사를 했다. 결과가 좋지 않았다. 수혈 이야기를 듣자마자 온 몸의 힘이 탁 풀렸다. 금식 전 마지막 식사로 나온 미음을 목으로 넘기는 것도 귀찮아졌다. 전신마취로는 다섯 번째 수술, 부분마취까지 더하면 일곱 번째 수술이다. 이제 수술을 떠올리면 두려움이나 긴장감 보다는 귀찮음이나 성가심의 감정이 앞선다. 그런 내가 고작 수혈 때문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생각이 마음 속 방어벽을 무너뜨렸다.     


 3주 전, 수술 전 검사에서 헤모글로빈 수치가 8.3이었다. 정상은 12-16이고 최소 10이상 되어야 수술을 받을 수 있다. 수혈이 필요하다고 했다. 수술까지 많은 시간이 남지 않았고, 그 사이 생리를 하면 수치가 더 떨어질 수 있으니 수술 전에 1박2일 입원해서 수혈 세 팩을 받는 것이 좋겠다고. 하지만 수혈은 되도록 받고 싶지 않았다. 작년 가을 수술 중 출혈 과다로 수혈을 여러 팩 받았다. 원래 저혈압인데 혈압이 70-40 까지 떨어졌고 고열과 오한이 반복되었다. 면역력이 약한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의 피가 몸에 들어올 때 부작용이 심하기 마련이다. 최대한 수혈 받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해보자 마음먹었다. 7년 이상 괴롭혔던 약 15cm 자궁근종 때문에 부정출혈이 잦았기 때문에 8.3은 낯선 수치가 아니었다. 헤모글로빈 수치가 6에서 5까지 떨어진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래서 빈혈에 도움 되는 철분제와 철분주사의 다양한 종류를 오랜 시간에 걸쳐 섭렵했다. 가장 빠른 시간에 헤모글로빈 수치를 올릴 수 있는 최고함량의 철분주사를 알고 있었다. 페린젝트 500mg을 취급하는 병원이 분당에 없어서 고등학교 친구가 의사로 일하는 대림동까지 주사를 맞으러 다녔다. 한 번 맞고 일주일 후 8.3이었던 수치가 11로 올랐다. 11에서 두 번째 주사를 맞았다. 이후 생리 과다와 부정출혈 때문에 9.8로 떨어졌다. 9.8에서 세 번째 주사를 맞은 건 수술 3일 전이었다.      

 

 그런데 수술 전날 피검사 결과 헤모글로빈 수치가 고작 8이었다. 3일 전에 9.8에서 철분주사를 맞을 때 출혈은 거의 멈춘 상태였다. 그런데 수치가 오르기는커녕 더 떨어지다니. 주사 뿐 아니라 철분이 많다는 음식을 골라 먹었고, 아침·저녁으로 공복에 구토를 참아가면서 비릿한 철분제를 열심히 삼켰다. 하지만 3주전 8이란 숫자로 다시 미끄러져 있었다. 그 많은 철분은 다 어디로 간 것인가. 단지 철분만이 아니었다. 내 시간과 노력과 비용도 허무하게 사라졌다. 그것이 속상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삶. ‘형벌당해 끊임없이 돌을 굴리는 시지프스처럼 나도 오랜 시간 형벌을 받고 있는 것일까.’      


 지난 20여 년 동안 애써 굴린 돌은 계속 굴러 떨어졌다. 공부, 직장, 건강... 노력해도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했다. 켜켜이 누적된 서러움이 갑자기 밀려왔다. 오랜 재활 과정도 굴곡진 그래프였다. 재활을 시작할 무렵 자궁과 난소에 커다란 혹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 할 정도로 몸이 회복되지 않아서 자궁과 난소 수술을 미루고 우선 재활을 하기로 했다. 사람들도 만나지 않고 치료 이외의 목적으로는 외출도 거의 하지 않았다, 남아있는 에너지를 건강의 회복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몸이 조금 회복되다가 갑자기 보름이상 부정출혈이 심해지곤 했다. 하루에 43cm 오버나이트 생리대를 10개 이상 쓰는 날이 계속되면, 심장까지 이상이 생겼다. 병원에서 심장 쇼크가 올 수 있다며 절대 안정을 이야기 하면, 다시 몸도 마음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2년 전 겨울, 갑작스런 과다 출혈로 가쁜 숨을 쉬며 침대에 누워있었다. 부족한 피 때문에 평소보다 두 배는 빨라진 심장박동 소리가 귀를 울렸다. 살아있지만 너무 힙겹게 할아있다는 몸의 신호를 들으며 문득 내가 부지깽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쇠로 만들어진 부지깽이. 불에 의해 달궈지고, 뜨거움을 견디고, 모루 위에서 모진 매질을 겪어냈다. 그러나 잘 벼려진 칼도 검도 되지 못했다. 들판에서 일하는 낫도 되지 못했다. 고작 부지깽이가 되어 아궁이 옆에 놓여 다시 불로 뛰어들어야 하는 삶. 고통을 견디면 다른 고통이 계속 찾아와서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여운 삶.     


 작년 가을, 7년간 우여곡절을 겪으며 성실하게 재활을 해서 근육도 붙고 몸이 회복 많이 회복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난소의 혹이 파열되어 응급으로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두 달 만에 그동안 애써 만든 근육은 모두 허무하게 사라졌고, 몸은 급속도로 굳어갔다. 수술 후 자궁과 난소 혹의 재발을 막기 위해 호르몬 억제주사를 맞았다. 일시적으로 몸을 폐경 상태로 만드는 주사의 부작용을 고스란히 겪어냈지만, 수술 5개월 후 초음파 검사에 또 다시 난소에 7cm의 혹이 보인다고 했다. 수술 전처럼 출혈도 심해졌다. 그래서 다시 환자복을 입고 병실에 덩그러니 누워있었다. 이번이 마지막 수술이 되길 바라는 매번의 기대는 모래로 쌓은 성처럼 흔적도 없이 허물어졌다.     


 다시 수술 전날, 두꺼운 바늘이 양 팔에 꽂혔다. 오른 팔에는 수술용 수액이, 왼 팔에는 붉은 피가 연결되었다. 차갑게 보관된 다른 사람의 피가 내 몸에 들어오면서 구토와 오한 증세가 반복되었다. 수술에 필요한 관장을 한 탓에 화장실을 들락거릴 때마다 양 팔에 굵은 바늘이 혈관을 자극했다. 로봇처럼 팔이 부자연스러운 채 수혈 부작용 체크를 위해 소변 양까지 재는 데, 경사진 화장실에서 수액걸이가 미끄러져 진땀을 뺐다. 오한과 진땀을 반복하다 한 숨도 자지 못하고 수술 날 아침이 밝았다. 단 한 순간도 쉽게 넘어가지 않는 삶이 고단해서, 자꾸만 굴러 떨어지는 돌덩이가 야속해서 훌쩍거렸다.     


 여러 사람들이 말했다. 힘든 만큼 더 좋은 날이 올 거라고. 잘 될 거라고. 힘들었던 만큼 더 좋은 날이 올 거라고. 그들의 말이 진심이었다는 것도, 나를 위로하는 최선이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삶의 무게가 버거워 질 때 스스로에게 나도 그렇게 위로하기며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기대했던 ‘좋은 날’은 오지 않았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잘 되고 좋은 날이란 무엇일까.     


 TV나 영화에는 힘든 일이나 고난을 겪고 비로소 무엇을 이루고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넘쳐난다. 나는 무엇도 되지 못했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받아야 하는 수술이 과제처럼 남겨져 있을 뿐이었다. 최선을 다해도 돌은 다시 굴러 떨어졌다. 다섯 번째 수술을 받았지만 턱도, 관절도, 근육도, 자궁과 난소도 여전히 아프다. 다섯 번째 수술을 받고 높은 재발률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부작용을 감수하고 매일 호르몬제를 먹어야한다. 다시 돌을 굴려야 하지만, 애써 굴린 돌이 떨어지는 지난한 날들을 여전히 반복하고 있다. 그럼에도 돌을 굴릴 수 있는 미약하고도 거대한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무엇이 되기 위한 아픔이 아니었다. 무엇이 되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위한 고통이었다. 얻기 위함이 아닌 내려놓기 위한 연마의 길이었다. 무엇이 되기 위한 고통이었다면 벌써 그 돌의 무게에 짓눌려 완전히 무너졌을 것이다.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무엇을 이루지 못해도, ‘나’라는 존재 말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돌을 굴리던 시지프스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몇 번을 반복하다 그도 알았을 것이다. 애써 노력해도 다시 돌은 굴러 떨어질 것이라는 것을. 힘겹게 들어 올린 돌의 무게만큼 더 빠르게 돌은 내려갈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 과정 중에 그의 육체의 근육들은 단단해졌고, 마음의 근육도 단련되었다. 흐르는 땀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했을 것이다. 형벌같이 날마다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이 고행의 시간을 넘어 수행의 시간이기도 했을 테다. 힘껏 굴려 올리면 다시 떨어지는 돌을 받아내며 긴 시간 그의 마음은 변했을 것이다. 저 꼭대기에 돌을 멈추게 하는 목적을 잊고 돌을 굴릴 수 있는 찰나의 마음 자체를 즐겼을 지도. 고통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통과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수술 후 한 달이 지나고, 돌덩이처럼 굳어진 근육을 풀기위해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미약한 힘으로 또 돌을 굴리는 수밖에. 자신을 단련한 뜨거운 불길 속으로 다시 뛰어들어야 하는 연기 나는 막대기, 부지깽이의 달구어진 붉은 빛은 처량한 것일까. 찬란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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