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드 Nov 17. 2019

부작용 없는 진통제

운동이 습관이 되다

 ‘운동가지 말아야지.’ 오후 7시 무렵. 저녁을 먹고 침대에 누워서 중얼거린다. ‘아침에 플라잉요가도 다녀왔고, 오후엔 도수치료도 받았으니 저녁에는 쉬어야겠어.’ 하루 종일 바쁘다가 이제야 한 숨 돌리고 쉬는 중이다. 읽을 책도 침대 옆에 두 권 놓여있고, 쓰고 있는 글도 마무리하지 못했다.     


 저녁 8시. 턱과 등, 다리까지 굳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침대에서 몸을 꾸물꾸물 일으킨다. 이를 닦고 보온병에 물을 담는다. 검정색 민소매 티셔츠와 그레이 레깅스를 골라 입는다. 두툼한 후드 재킷을 걸치고, 가방에 휴대폰과 보온병을 넣는다. 엄마가 묻는다. “또 헬스장 가려고? 쉰다며?” “그래도 운동해야 덜 아프니까. 습관이 무서워”     


 운동이 습관이 된다는 건 밥을 먹는 것과 비슷해지는 일. 다이어트 결심을 하고 안 먹어야지 다짐하다가 밥시간이 되면 한 숟갈 뜨고 마는 사람처럼, 운동을 쉬어야지 다짐하다가도 어느새 일어나서 운동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식사 시간 때 울리는 배꼽시계처럼 내 몸 시계에는 운동시간이 각인되어 있다. 때로 운동을 쉬는 게 밥 한 끼 굶는 것보다 더 어렵다.     


  7년 전 처음 헬스장에 등록했을 때는 습관을 들이는 게 목표였다. 5년의 재활 후 몸이 많이 나아진 상태였지만 온몸의 근육은 질긴 고무줄처럼 여기저기 당기며 말썽이었다. 몸이 아프다는 것이 운동을 하는 이유이지만, 동시에 안할 핑계도 되기에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했다. ‘덜 아프기 때문에’ 라는 이유 하나를 붙잡고 날마다 헬스장으로 향했다. 6개월 동안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회 헬스장에 매일 출석했다. 일요일만 휴일. 오전에 병원을 가면 저녁에 운동을 했고, 혹시 오후에 일정이 있으면 아침에 헬스장에 갔다. 잠을 못자서 정신이 몽롱해도 운동은 거르지 않았다. 비가 오고 눈이 와도, 하혈이 심해서 30분 만에 집에 돌아오더라도 무조건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그렇게 하루라도 운동을 쉬면 몸에서 가시가 돋는 사람이 되었다.     


  운동복이 땀에 젖으며 벅찬 호흡을 내뱉을 때, 쿵쾅거리며 빨라지는 심장 박동이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병원에서, 내 방 침대에서, 병원을 오가던 버스 안에서 뛰던 심장박동과는 다른 것이었다. 오래 전 수업에 지각하지 않으려고 학교 앞을 뛰어갈 때, 밤새워 어설픈 독수리 타법으로 끙끙거리며 수십 장의 레포트를 쓸 때, 과외 아르바이트를 시간 맞춰 가려고 종종거리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할 때 들리던 아련한 기억 속의 소리였다. 까마득히 잊고 있던 향긋한 쿵쾅거림. 그 소리와 맛과 향기를 잊지 않으려고 날마다 몸을 일으켰다. 살아 있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니까 살아있는 것이었다. 그저 견디는 시간이 아니라 살아있는 시간이라고 내 몸을 통해 내 마음을 북돋았다.        


 4시 반에서 5시 사이에 이른 저녁을 먹는다. 식사 후 그날 운동 스케쥴에 맞춰서 굳어었는 근육을 푼다. 마사지 도구나 저주파 마사지 기계를 이용해서 딱딱해진 근육을 이완시킨다. 필요하면 찜질도 한다. 근육에 이상이 있는 내 몸은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 준비운동 2시간이 끝나면 7시 무렵. 운동 갈 준비를 하고 7시 반쯤 헬스장에 간다. 헬스장에서 자전거를 타고, 근력운동을 하고 마무리로 런닝머신에서 걸으면 10시 쯤 된다. 마무리 스트레칭을 하고 11시 헬스장이 문을 닫을 때 집으로 온다. 집에 와서 잠들기 전까지 다시 마사지도구를 이용해 지친 근육을 푼다. 이런 생활을 5년 정도 하면서 몸이 차츰 나아졌다. 별로 많지 않은 체력을 치료와 운동에만 다 쏟아 부었다. 이렇게 하면 책 한 줄 읽을 기운도 남아있지 않은 날이 많았지만, 뿌듯함으로 비어있는 에너지를 대신했다.     


 집중해서 근육을 반복해서 단련하다보면 단단하게 돌처럼 굳은 근육이 서서히 풀리고 온 몸을 감싸는 팽팽한 통증이 조금씩 느슨해졌다. 제대로 운동한 날은 통증 때문에 밤을 꼬박 세는 날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잠자다 아파서 깨는 횟수도 적어져서 아침을 맞는 기분도 한결 가벼워졌다. 무엇보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움직이다 보면, 지긋지긋한 통증에서 해방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싹텄다. 그 기대는 불편한 몸을 달리게 했고 무거운 덤벨과 바벨을 반복해서 들 수 있게 했다.      


 치료와 운동은 한 세트가 되었다. 치료를 받아 근육이 풀어져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치료효과가 지속되지 않는다. 남아있는 딱딱한 근육들이 치료 후 얼마 안지나 다시 당긴다. 음식을 씹고 찬바람만 맞아도 근육은 쉽게 굳기 시작한다. 그러면 몸 안에서는 풀리는 근육과 당기는 근육의 팽팽한 싸움이 일어난다. 이럴 때 근력운동을 하면 몸이 풀리는 근육의 손을 들어준다. 운동은 통증으로 잠식되어가던 몸에 조금씩 승리의 깃발을 꽂는 일이었다. 그 깃발이 내일 무너질 찌라도 오늘의 승리를 쌓는 순간의 짜릿함을 즐겼다.     


 이제 나는 통증이 밀려오고 마음이 불안해 질 때 마다 몸을 더 많이 움직인다. 오랜 시간 육체의 아픔이 계속되다 보면, 막연한 희망은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한다. 반드시 낫겠다는 결연한 의지보다 오늘 주어진 몸으로 최선을 다해 움직였다는 현실이 버팀목이 되었다. 운동은 내게 ‘이만큼 최선을 다했으면 충분하다'고 마음을 다독이는 치료제이자, 부작용 없는 진통제이므로. 아, 부작용이 하나 있긴 하다. ‘오늘은 피곤하니까 조금만 운동하고 와야지.’ 하고 집을 나서지만 늘 마감시간을 알리는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노래를 듣고서야 집에 오고야 마는, 달콤하고 질긴 부작용.

이전 13화 그럼에도 살아야 하는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