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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드 Nov 17. 2019

초과 회복

고통을 통과한 몸이 아름답다.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2018 머슬마니아 피트니스 대회에서 한국 여성이 피지크부분 3위에 입상했다.’ 뉴스를 읽으며 사진 속의 선명한 복근과 잘 발달된 광배근, 갈라진 다리근육을 보다가 그의 나이에서 시선을 멈췄다. 62세. 교통사고로 어깨 수술 후, 신경 마비로 팔을 절단해야하는 상태에서 운동을 시작했다는 이야기. 처음에 1kg의 덤벨의 겨우 들었다는 말에 잘 발달된 어깨의 삼각근이 숭고해 보이기까지 했다.  

   

 몸에 새겨진 근육은 고통의 산물이다. 단단한 몸은 통증 없이는 얻을 수 없다, 전에는 근육이 울퉁불퉁 도드라진 피트니스 선수들의 몸을 보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직접 운동을 해보면 1kg의 근육을 몸에 더하는 것이 지방 1kg더하는 것보다 백만 배 쯤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 사람의 몸을 보는 시각이 저절로 바뀐다. 몸의 외형보다 그 몸을 만들기까지 단련했을 땀과 절제의 시간이 먼저 보인다. 이전에는 날씬한 몸이 눈에 들어왔다면 이제는 고통을 통과한 몸이 멋져 보인다.      


 운동을 하면 근육의 하부 단위인 근원미세사가 작은 손상을 입는다. 이후 손상부위의 융합과 복구가 일어나는 과정에서 손상된 것보다 초과 회복이 된다. 이 과정에서 근육 내 모세혈관과 신경조직까지 촘촘해지며 근육이 기존보다 굵어진다. 운동은 내 몸의 근육에 애써 손상을 내는, 어쩌면 어리석고 무모한 과정을 즐기는 것이다. 그 과정이 의미 있는 것은 초과 회복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또한 잘 발달된 근육은 고통과 함께 영양과 휴식의 총체적인 결과물이기도 하다. 초과회복의 과정은 긴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다. 시작은 운동이지만 완성은 영양과 휴식이다. 한번 손상된 근육은 회복될 때가지 24시간에서 72시간 정도 걸린다. 복근이나 팔 처럼 작은 근육은 빨리 회복되고 하체나 등 같이 큰 근육은 좀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잘 상처 난 근육은 움직이지 않을 때도 이를 복구하기 위해 쉬지 않고 에너지를 쓰며 일하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조급한 마음이 누그러진다. 빨리 좋아지고 싶어서 무리하게 운동하려는 마음을 절제할 수 있다. 더 나은 몸을 만들기 위해서는 채찍 후에 충분한 당근이 필수이다.      


 내 몸은 평범한 초과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몸이다. 온몸 근육과 근막이 당겨서 종잇장처럼 얇아진 상태로 뼈에 붙어 있다. 열심히 운동해도 보통 사람들보다 근육이 느리게 생기고고, 운동을 조금 쉬면 빠르게 사라진다. 전진은 느리고 후퇴는 빠른 몸이다. 재작년에 수술을 받고 2개월 만에 재활과 운동으로 10년 동안 쌓아왔던 근육 6kg이 풍선에 바람 빠지듯 모두 사라졌다. 자궁과 난소 수술 후 처방된 호르몬 주사와 호르몬 약은 에스트로겐을 떨어뜨려 근육 생성을 더욱 방해한다. 몸의 변화보다 통증을 덜기위해 운동하기 때문에 외형의 변화에는 큰 욕심을 내지 않았다. 이따금씩 운동 전후의 변화를 사진 찍어서 온라인에 올리는 정상적인 근육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보면서 신기해하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꾸준히 운동하다보니 내 몸도 조금씩 변해갔다. 더딘 변화라도 변하고 있다는 사실은 운동에 재미를 더했다. 아파서 운동하지만 아프기 때문에 라는 이유만으로 오래 운동을 지속하기 어렵다. 이 때는 운동을 하는 재미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아침 공복에 거울에 비친 복근을 보며 (밥 먹으면 사라진다), 양 팔을 직각으로 벌리고 등의 광배근이 돋아나고 있나 확인하고, 허리와 힙이 경계가 선명해지는 것을 보며 뿌듯함을 느낀다. 한동안 운동을 쉬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근육이라고 해도 무엇인가 몸에 새겼다는 순간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지난 수술 후 앙상해진 몸으로 다시 덤벨과 바벨을 들으며 알았다. 오랫동안 쉰 비쩍 마른 몸은 고장 난 로보트처럼 삐걱거렸지만 근육의 회복속도는 기대보다 빨랐다. 한번 단련했던 근육들은 부피를 잃어도 기억은 남아있었다. 눈에 안보여도 내 근육 세포에는 움직였던 기억이 새겨져 있었다.     


 근력운동은 몸을 조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상처내고 회복하는 과정을 통해 몸을 조각할 수 있다. 그래서 아무 것도 뜻대로 안되고 몸이 물에 젖은 스펀지마냥 축 늘어지는 날엔 더 열심히 운동한다. 움직일 수 있는 작은 근육을 움직이다 보면 화석처럼 굳어버린 희망이 함께 꿈틀거린다. 딱딱하고 손상된 근육이지만 움직일 수 있다는 것, 그것을 통해 몸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위안을 준다. 마음이 뜻대로 안될 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남아있다는 사실이 힘이 된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나을 것 같지 않아 불안 한 마음도, 언제까지 이렇게 아파야하나 하는 막막한 마음도 조금씩 누그러진다. 꾸준히 운동하는 시간동안 몸과 함께 마음이 단단해졌다. 몸과 함께 마음도 조각되고 있었다.     


 그러다 보면 과학적으로 증명된 초과 회복을 넘어서는 기적을 기대하는 마음이 싹튼다. 여러 다발의 근육 안에 회복 가능한 부분과 불가능한 부분이 뒤섞여있는 내 근육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회복 가능한 부분을 통해 불가능한 부분을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한계를 넘는 고통을 견디며 몸을 단련시키는 것은 회복 가능한 부분을 펌프질 해 불가능의 영역을 움직이고 싶다는 간절함이기도 하다.     


 뉴스를 보다가 다시 시선을 멈췄다. 얼마 전 열린 WBC 피트니스 오픈 월드 챔피언십에서 피규어 38세 이상부에서 2위한 입상자. 이번엔 나이가 75세였다. 62세도 눈이 휘둥그레졌는데 75세라니. 75세의 나이에 비키니를 입고 무대에서 근육이 돋보이는 여러 포즈를 취하는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여성 호르몬이 끊기고 20년 이상이 지나면 근육은 흐물거리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 엄마보다 많은 70대 중반의 나이에 저런 탄탄한 근육을 가질 수 있다니. 초과 회복은 단지 근육 부피의 성장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초과 회복되는 과정 중에 건강과 자신감 그리고 가능성도 초과 회복되는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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