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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드 Jan 12. 2019

아픈 몸과 언어의 숨바꼭질

무엇인가 끄적이는 이유

     

‘외딴 방’이 사라졌다. ‘외딴 방’은 신경숙의 책 제목에서 따온 내 프리첼 커뮤니티 이름이다. 처음엔 대학교 때 레포트를 온라인에 저장하기 위해 만들었다. USB가 없던 때라 레포트를 저장한 플로피디스크가 깨지는 난감한 일을 몇 번 겪은 후, 온라인에 레포트를 백업해 놓을 곳이 필요했었다. 그러다가 그 공간에 일상을 끄적이기도 하고, 때로 마음 속 이야기를 열어 보이는 글을 쓰기도 했다. 아무도 못 보게 비밀일기도 숨겨놓았다. 정신없이 바빴던 시절 이었기에, 그 방은 마음처럼 자주 만나지 못하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으로 확장되어 갔다. 때로 친구들이 익명으로 자기의 고민을 털어놓고 가면 나는 누구인지 단 번에 알아내고 살가운 위로를 전하기도 했다. 어떤 날은 그리운 친구가 내 커뮤니티가 있다는 애길 듣고 불쑥 찾아와 반가운 소식을 남기는 일도 있었다. ‘외딴 방’은 우리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그 후, 나는 건강이 악화되어 힘겨운 시간을 겪으면서 외딴 방에서 멀어졌다. 사람들이 북적이던 방이 이름처럼 인적이 끊긴 ‘외딴 방’이 되었다. 8년 전 어느 날 이었다. 문득 그 시절의 기억이 그리워 프리첼에 접속했지만 내 방 대문에 걸려있던 고흐의 그림 대신 커뮤니티가 폐쇄되었다는 안내문이 나를 맞이했다. 4년여 간 차곡차곡 쌓아둔 삶의 흔적이 송두리째 사라졌다는 것을 실감하자 눈물이 왈칵 났다. 이미 프리첼에서 싸이월드로, 네이버 블로그로 유행이 넘어간 지 오래였다. 프리첼 커뮤니티가 언젠가 없어질 지도 모르니 백업을 해야겠다는 하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그런데도 몸이 아파서 귀찮고 힘들다는 이유로 그 곳을 무심하게 방치했던 내 자신의 나태함을 원망하는 수밖에 없었다. 오래 간직했던 일기장이 뜻밖의 화재로 잿더미로 변한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어떤 것을 잃고 나서야 그 의미를 곱씹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잃기 전에는 사소한 것이었는데 잃고 나면 중요한 것이 된다. 통증 때문에 잠들지 못하는 오랜 밤을 보내고 나서야 잠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처럼, 외딴방에서 숨 쉬고 있던 청춘의 기억들이 허공으로 증발해 버리고 나서야 그 글들의 소중함이 절실하게 다가왔다. 일상의 웃음과 눈물이 있었고, 친구들과의 유쾌한 재잘거림이 있었고, 아픈 시간을 통과하는 애잔한 몸부림이 있었다. 그 시절의 글쓰기는 나 자신과의 소통이자,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었다. 하지만 많은 것을 걸었던 세 번째 수술 이후에 마음의 문은 꽉 닫혀버렸다. 예상치 못했던 부작용이 나타났다. 근육이 경련을 일으켜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고통스런 시간이 계속되자 나 자신과도 세상의 누구와도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커다란 아픔에 가로막혀 이야기 하는 방법을 잊어 버렸고, 글을 쓴다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수백 개의 글을 잃어버리자 다시 무엇인가를 쓰고 싶어졌다. 잃어버린 건 그저 글일 뿐 내가 아니니까 괜찮다고, 그리 대단한 글도 아니었으니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뜻밖의 상실감은 숨어있던 존재의 욕구를 자극했다. 내 기억의 일부가 허무하게 사라져 버리자, 현재의 시간을 거쳐 가는 내 모습을 돌아보게 했다. 휴대폰도 끊고, 친구도 만나지 않고 TV도 영화도 보지 않고 내 방 안에서만 갇혀있던 날들이었다. 텅 빈 다이어리를 바라보며, 무엇인가를 쓰지 않으면 정말 이 시간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사라져 버릴 것 같다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 두려움이 마음을 꿈틀거리게 했다. 이 시간을 통과하는 사람만 빚어낼 수 있는 언어가 있지 않을까. 그 언어들로 낯선 풍요로움을 맛보고 싶어졌다. 깊은 상실을 통해 진정한 풍요를 길어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를테니까.          


 그러나 오랫동안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SNS에 일상의 글이 넘쳐나는 세상이 될수록 일상을 잃어버린 나는 점점 글과 멀어졌다. 학교대신 병원을 오가며, 출근대신 치료를 위해 기상하고 취업과 결혼대신 수술과 재활을 고민하는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없었다. 말로 할 수 없는 마음을 언어를 빌려 표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가난한 언어의 바구니를 아무리 되작거려도 내가 표현하고 싶은 상실감과 눈물에 다가갈 수 없었다. 용기 내어 컴퓨터 앞에 앉아도 자판으로 쓰는 글의 숫자보다 떨어지는 눈물방울 수가 더 많아서 몸이 먼저 지쳐버리기 일쑤였다. 얼마만큼 솔직하게 내 감정을 드러내야 하는지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내 삶의 가장 큰 자산이자 한계가 되어버린 커다란 고통을 끌어안고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꼼짝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긴 슬픔은 때로 감정을 무디어지게 만든다. 어쩌면 살아남기 위해 애써 무디어 지려고 노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어느 날, 피하고 싶었던 수술을 받아들여야 할 만큼 심한 하혈이 계속되었다. 건강을 위해 노력했던 수많은 시간들이 다시 허물어지고 있었다. 그러자 외면했던 현실의 무게가 한꺼번에 몰려와 더 크게 나를 짓눌렀다. 어디에라도 소리치고 싶어서 오랜만에 컴퓨터 앞에 앉았다. 나를 배신한 삶의 잔인함에 대들 듯이 전투적인 자세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답답한 마음에 마구 글을 써내려가다 구정물 같은 눈물을 한바탕 쏟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결코 좋은 글은 되지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조금 더 깨끗해지는 마음을 맛보았다. 위대한 작가가 될 것도 아니고 출판할 것도 아니니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쓴다는 것은 마음의 저 밑바닥까지 파헤치고 나서 좀 더 성숙한 내가 되는 길이었다. 그렇게 진짜 ‘나’를 만나는 일이다. 일상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던 내게 남들과 조금 다른 일상이 주어졌을 뿐이라고 다독거리는 일이었고, 청춘을 잃은 상실감에 울먹이는 내게 무엇이 진짜 삶을 푸르게 하는지 되묻는 일이기도 했다. 긴 어둠속에 숨어있던 반짝이는 의미들을 발견하는 숨바꼭질이었다.     


 술래가 되어 사방을 살핀다. 아픔의 풍경 속에 숨어있는 이전과 다른 삶의 의미를 찾아낸다. 그러면 애써 찾은 그 의미들이 다시 술래가 되어 숨어있는 나를 끄집어낸다. 그리고 고통 앞에 나를 다시 세운다. 많은 것을 잃었지만 모든 것을 잃지는 않았다고 일깨워준다. 그렇게 내 마음을 단단히 묶고 있던 편견들을 하나씩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밤새 쓴 편지가 다음날 아침이면 부끄러워지듯이, 오늘 애써 쓴 글이 이내 부끄러움이 될지도 모른다. 나의 가난한 언어 때문에 표현하고 싶은 본질에 도달하지 못해 좌절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삶 보다 글이 더 치열하지 않아도 된다고, 삶의 깊이보다 글의 깊이를 더 많이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신발 끈을 조인다. 용감한 술래가 되기 위해. 꼭꼭 숨어있는 머리카락 같은 희망에 다가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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