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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tOh Nov 14. 2016

조직에 유연성을 가져다 준다는 것

생각할 수록 골치만 아픈 연말이다.

대부분 많은 기업과 조직들은 이제 슬슬 조직개편과 인사이동을 설계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 많은 기업들이 애자일, 권한이양, 오픈이노베이션, 디자인씽킹, 홀라크라시, 사일로, 그리고 "팀 오브 팀스"과 같은 트렌디한 개념을 지향해 가고 있다. 국내의 경우, 2009년 아이폰의 출시로부터 초래된 외래 역량의 유입과 국내 시장을 바꿔버린 큰 변혁, 모바일로부터 파생된, 커다란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손으로 해를 가린다고 새벽을 가리지는 못하는 법.


유통업이든 제조업이든, 모바일과 개인화, 네트워크에 의한 집단 지성의 개념적 변화와, 빅데이터와 딥러닝의 지식체계 개혁은 지금까지의 수직적이던 조직체계에서 가져갈 수 없는 네트워크형 조직 역량을 강조하면서, 어찌되었는 "이제는 변해야 한다"라는 인식만큼은 확실히 심어준 것 같다. 그런데, 저기 위에 저 말들 다 옳은데,


다 해야 하나?


1. Chicken Run.

글쎄, 조직 얘기를 하기 앞서, 먼저 기업인들이라면 연말에 한 번쯤은 보고 지나갈 트렌드키워드를 간단히살펴보자.

내년 트렌드는 욜로, B+프리미엄, 선택을 받아야만 하는 고난(픽미세대), Calm tech과 같은 말들이다. 사실 내년의 트렌드라기 보다는 올해의 사회적 현상을 종합 정리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 이게 일반적인 기업에 얼마나 통용되고 임팩트가 있는 말일까?


예를 들어보자. 선택을 받아야만 하는 고난의 뒤에는 명성과 규모가 약해 우수 인재를 얻지 못하는 중소기업이나, 블루오션, 또는 레드오션의 어딘가의 올바른 니치, 그런 기회, 그런 작은 시작을 잘 바라보려 하지 않는다. 난 예전에 신입사원에 대한 조언을 간단히 글로 정리한 적이 있다. 나름의 안티가 있어 팔로업에 힘이 좀 들어갔지만...

잡설보다 중요한 내용은, 실직과 구인의 Gap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며, 아직도 우리나라의 많은 잠재적 직장인들은 기다리면 더 나은 기회가 있다는 이유로, 리스크를 안고 빠져들려는 과감함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진정성, 뛰어들겠다는 열정. 페이따위를 말하는게 아니다. 정당한 댓가는 당연히 받아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댓가와 안정성을 따지느라 과감함은 잊어버린 것 아닌가 싶다는 거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미시시피 출신의 한 인물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남부 출신 답게 뭔가 순수해보임에도 나름 엄청난 인재였다. 컴퓨터 공학 전공에 프론트 코딩에 전문성을 가진 프리랜서(라고 쓰고 백수라고 읽는다. 본인이 시인하더라.)였는데, 높은 물가와 구직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실리콘밸리를 첫 커리어로 목표하느라 아무 것도 못하고 있더라. 계속 커리어를 높이기 위해 수시로 알바를 하면서 스스로 추가적인 학습을 겸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공계라면 당연히 실리콘밸리를 생각하겠지. 그런데 조금 주변을 돌아보면, 그 사이에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을 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어딘가에 잘 취업하여 전문성을 더 쌓고 있길 바라지만, 그 당시 내가 느꼈던 것은 그의 머릿 속에는 리스크를 배제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모두가 아닐 수는 있다. 하지만, 부모님의 투자, 나의 자존감, 보이지 않는 사회적 계층 차별, 명함주의, 남들보다 손해보고 싶지 않은 경쟁과 보수주의. 거기에 나는 어디 존재하는가? 있긴 할까?

즉, 중요한 것은,


픽미세대는 현상일 뿐, 그게 트렌드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고민을 해결해줘야 할 제도적 대안이 필요한 것이지, 그게 소비트렌드가 되어 그에 맞는 시장을 형성한다? 깊은 고민을 가진 그들에게 형성해줘야 할 시장은, 소비시장이 아니라 취업시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가지만을 예로 들었지만, 어쨌든 난 그래서 트렌드라고 씌여진 수많은 아티클보다 중요한 것은,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철학과 통찰력, 그리고 깊은 고민에서 우러나온 사상이라고 아직도 바보같이 믿고 있다. 청년장사꾼이 트렌드를 깊이 읽었다고 성공한걸까.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봐야 할 것만 같은 모든 단어들이, 다 꼭 봐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2. Silo


이제 조직 얘기를 조금 해보자.

사실 내가 많이 고민이라서 꺼내고 있는 주제이긴 하지만, 경영진의 고민은 예를 들면 이런거다.

사람들이 서로 많은 의견을 나누어 새로운 생각을 개진하고, 그것이 회사에 플러스가 되는 임팩트를 가져오길 바란다는 점. 그래서 좀 더 유연한 조직 구조를 가져가길 기대한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가장 먼저 가져가야 할 것은 구조라기 보다는 자율적으로 움직이고 생각할 수 있는 조직원이 있냐는 것이다. 난 예전에 여기에 대해서도 간단히 생각을 정리한 적은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조직원 입장인 나도 그렇지만, "회사가 그런 구조를 만들어주질 않는데 어쩌란 말이냐"라는 반응이 가장 클 것이다. 회사는, 경영진은, 조직은 변화가 없으면서 자꾸 나보고 변하란 말인가.


조직이 변했다는 말을 한다면, 가장 좋은 사례는 역시 자포스의 홀라크라시이다. 목적에 따라, 개발이 필요한 사업이 필요로하는 구조에 따라, 누군가 참여하고 누군가는 빠진다. 그걸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다. 심지어 잘만 하면, 내 커리어를 넓히면서 네트워킹도 더 원활하게 할 수 있다. 사일로(SILO)를 깰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물론 경영진의 결심에 모든게 달려있지만.


그런데 사일로를 깬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사일로는 정말로 깨야만 하는 것일까.

답은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사일로이펙트라는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사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는, 단편적인 조직체계와 집단적 사고방식으로는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일로는 필요하다. 프로젝트나, 상품 개발 등 단기적인 task가 부여되었다면 그곳은 불필요한 공유와 네트워크보다 빠른 의사결정에 의한 강한 추진력이 중요하다. 문제는 사일로 상위에 너무 많은 의사결정 라인이 있어서는 안되다는 것. 즉, 사일로 자체가 의사결정의 주체가 된다면 무엇보다 강력해진다는 것이다.


사일로를 적절히 이용한 사례는 우리 주면의 그 많은 TFT에서 볼 수 있다. 책에서야 플레이스테이션팀을 아주 잠시 언급했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실패한 TFT는, 프로젝트에 문제가 있었다기보다는 주도권을 경영진에 넘겨두고 단기 성과로 첼린지하면서 결정은 잘 해주지 않는데서부터 발생하는 것이다.


즉, 전략적 임무를 반드시 줘야 하는 사정이라면, 사업부의 밑이 아니라 옆에 두고, 리더가 전폭적인 지지와 리소스를 보장해줄 수 있어야, 그래서 빨리 실행단계로 끌어올리고 그 다음 스텝에서 그에 맞는 조직을 만들어주는 민첩한 의사결정이 있어야만 한다.


3. 통합적 관점 :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하거나, 보는 사람을 둬야 한다.


흔히 전문성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전문성이 더 중요하다. 자신의 전문성에서 바라본 문제 해결의 방식이 더 새롭고, 회사에 부가가치를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은 맞다고 믿는다.


그런데, 전문가를 여럿 모아놓으면, 각자 자신의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각기 다른 전제조건으로 상황을 해석하기 마련이다. 산으로 갈 수가 있다. 회사와 직원. 경영진과 실무. 사업부와 사업부. 현업과 스탭. 그들 사이에 관점과 이해는 늘 다르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거나, 가장 경영진에 가까운 사람이 결론을 낸다. 그런데 대부분은 전체적인 문제적 상황으로부터 몇가지 전제사항을 포기하고 결론을 내버리던가(불명확하니까), 더 벙벙한 방안을 내놓게 되어있다.


그래서 우리에겐 항상 코디네이터가 필요하다.

"야, 어차피 A랑 B는 안되니까 K로 가자"라고 하는데, 사실 어려움을 뚫고라도 B로 가는게 정답이라면, B로 가는데 보이는 배리어에 집중해야지, K로 방향을 전환하면 안되는 것이다. 그것을 붙잡아줄 시각이 모두에게 있거나, 아니라면 그 역할을 할 기능 혹은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래야 네트워킹이 가능하고, 홀라크라시가 가능하다. 홀라크라시라는 제도에 가려져 있지만, 여기에는 Lead Link라는 핵심적인 기능이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통합적 관점은, 각 기능들을 잘 융합해주는 가장 핵심적인 기능이다. 이게 있어야만, 사일로를 깨고 모두가 네트워킹을 하며 원활한 비즈니스를 가져갈 수 있다. 천재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회사의 비즈니스 전반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부당하다고 생각하는건 물어보고 개선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4. 꼭 유연한 조직구조가 핵심인 것은 아니다.


조직구조를 유연하게 한다는 것을 모듈화나 홀라크라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유연성은 경영진의 의지에 달려있다.


마치 공을 경영진에게 던지는 것 같지만, 유연한 구조는 밑에서부터 형성되는게 아니라, 그게 되도록 위에서부터 마음을 열고, 직원들을 인정해주고, 작은 일에도 함께 기뻐해줄 줄 알고, 제대로 스킨십(주말 산행, 술자리 같은게 아닌, 정말 제대로 직원을 이해하고 감싸주는 행위들. 으쌰으쌰는 각자 집에서 하면 된다.)해줘야 한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다. 너희들은 회사의 밑이 아니야.


너희가 그냥 회사인거야.


그런 말.

그런 제도. 인사에서 일상업무까지.

그런 회의.

그런 경영계획.

그런 투자.

그런 믿음.


이것만 해결하는데에도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상처입은 직원이 많은 회사일 수록, 겉만 멋지고 사실 속은 와해되어있는 조직이라면, 멋진 제도보다 근본적인 부분부터 해결해줘야 할 것이다. 의외로 사소한 일이 나쁜 상황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 내 의지와 상관 없는 갑작스런 인사발령, 예상치 못한 존경하는 분의 퇴사, 그간의 사정과 상관 없는 매몰찬 평가,...


5. Team of Teams

공유와 전체 그림.


사일로이펙트와 팀오브팀스는 다른 얘기 같지만, 같은 상황을 두고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소조직 단위의 네트웍을 통한 민첩성과 통찰력을 한 번에 가져가는 구조.

하나가 사라져도 누군가 그 자리를 자연스럽게 메울 수 있는 조직구조. 사람들은 이것을 조직구조로 얘기하고 있지만, 조직구조보다 더 소프트한 얘기이고, 제도보다는 역량에 가까운 얘기이다.

빨리 모였다가 흩어지고, 또 목적을 스스로 인식하고 참여할 수 있는 문화.


팀오브팀스에서는 창발성을 예로 들고 있다. 똑똑한 여왕개미가 집을 짓고 모두가 할 일을 정해준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유대감과 조직력을 통하여 각자 본능적으로 실행하는 일들이 어우러져 커다란 사회를 형성하는 것이라는 이론이다.


팀의 경쟁력은 "한결같은 단위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능력, 즉 공동 인식이다."라고 한다. 통합적 사고방식이다. 공동 인식이 주장하는 바는, 통합적인 사고가 개별적인 전문가들의 집합보다 훨씬 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체 그림을 머릿 속에 떠올리는 순간, 두려움은 있겠지만 적어도 내주장만 하며 충돌할 가능성은 줄어들게 되어있다.


문제는, 이런 방식을 주창하게 되면 리더십에 대한 회의론이 일게 되어있다는 점이다.

공유와 통합적인 사고방식이 중요시 될 수록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없게 되기 때문이다. 기성 세대로 가득한 조직에서 이런 방식으로 인해 더이상 리더십이 필요 없어진다면, 가장 먼저 두려워 할 이들은 바로 경영진, 혹은 고위 관리자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근본적인 변혁을 일으키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자칫 잘못 시작하면, 오히려 직원들에게서 마치 빵 한 조각을 주고 세상을 다 주는 것처럼 말하는 계모와도 같은 느낌을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 따라서 직원들에게 제도에 대한 설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일을 통해서 직원들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지원받고 보장받게 되는지를 확실하게 설명해야만, 그런 제도를 먼저 마련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많은 기업이 해커톤을 하지만 실패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런 제도적 장치와 프로세스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다시 도돌이표를 찍자면,


조직의 유연성의 시작은 단편적인 조직개편과 제도의 기획이 아니라, 경영진의 의지, 직원들이 거부감을 갖지 않을 정도에서 거리감을 좁히기 위한 노력, 코디네이터 역할의 명확한 정의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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