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생존기초_A부터 Z까지 다 겪어야만 얻을 수 있는 배움을 놓치지 말기
코로나 직전, 사업의 규모가 커지던 당시 벅차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었다. 하지만 그것에 집중할 계기는 특별히 생기지 않았다. 돈이 벌리고, 대표들 급여가 오르고,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졌다. 정신없이 바빴지만 나름 재미가 있었다.
코로나 이후에도 크게 사업이 위축되지 않았다. 여전히 바빴다. 그런데 이전과 달랐던 것은 벅차다는 생각이 자주 들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유는 알고 있었다. 내가 직접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중고등학교로 출강할 메인 프로그램은 네 가지로 늘었다. 각 가짓수마다 매년 프로그램 개선작업을 했다. 그리고 강사들에게 이를 교육시킬 교안을 영상과 문서로 만들었다. 교안은 프로그램의 질을 높게 가져가겠다는 내 다짐으로 인해 매우 빡빡하고 치밀하게 짜졌다. 그 교안을 이해하고 소화해 수업을 진행할 강사를 뽑고 가르쳐야 했다. 강사들의 선발과 교육의 난이도도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학교 현장에 적응할 수 있게 돕고, 실제 현장에서 정해진 내용과 자신의 이야기를 잘 섞어 전달하고 있는지를 자주 체크해야 했다. 그리고 돈을 아끼고자 나 스스로도 강의를 뛰었다. 우리 회사의 강의는 6교시를 한 강사가 쭉 진행하는 것이 기본이었고, 필요에 따라 교시 수를 5교시 이하로 조정해 진행했다. 출강 가용범위는 대전을 중심으로 1시간 반 이내 거리. 서천, 진안, 천안, 옥천 등이 경계처럼 여겨졌다. 시외 출강 하루를 다녀오면 하루가 다 지나갔다. 그리고 내일 수업을 또 준비해야 했다. 그렇게 '월화수목금'을 전국 각지의 학교로 다녀와야 했다. 그렇게 다닌 학교의 수가 2022년까지 185개, 직접 뛴 강의 횟수는 505회에 1,702교시, 직접 강의를 통해 만난 학생만 1300여 명이 됐다. 회사 차원에서 만난 학생들 수는 3만여 명이 넘었을 거다. 이 모든 과정을 직원들과 분담하는 구조로 만들지 못했다. 늘어난 일은 대체로 나와 공동대표들이 떠안았다.
주말에도 사업을 했다. 한 해 4~7개 지방자치단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정책제안대회와 아동청소년참여위원회 프로그램을 '토일토일토일토일' 운영했다. 프로그램 기획과 준비, 스탭 모집 및 교육/관리, 멀게는 대전에서 영주까지 매 월 이동, 보고 및 정산 과정을 했다. 그렇게 2022년까지 정책제안대회는 23회 열었고 200여 팀을 멘토링/심사했다. 아동청소년사회참여프로그램은 8개 시군구 27개 기수, 500여 명을 대상으로 216번의 출강을 직접 운영했다.
버거웠다. 매일 일했고, 휴가는 있으나마나, 허리가 약해 연초에 늘 병원을 들락날락하며 1년 내내 교정을 받으러 다녔다. 돈은 나를 갈아 넣은 만큼 벌렸다. 그런데 갈아 넣었으면 다시 갈아 넣을 몸과 마음을 만들기 위해 회복했어야 했는데 그게 안 됐다. 왜 그런지에 대한 이유는 알겠는데, 몸과 마음이 지치고 내적 성장을 돌볼 시간이 없어 돈이 벌리는 것 이상의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다. 결국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나를 갈아 넣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드는 상황에 까지 갔으나 어떻게 이 상황을 타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까지는 짚지 못했다.
불만이 많아졌다. 그런데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미래를 고민하지 못하니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었다. 알면서도 갈등이 싫어 에둘러 불만을 표현하고 참기만 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결국 이별의 순간을 피할 수 없었다.
회사를 그만 둘 당시의 나는 내가 처한 상황과 감정을 위에 기술한 것 같이 표현하지 못했다. 내가 어떻게 했어야 어려웠던 상황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갈 수 있었을지도 생각하지 못했다. 교육회사 대표로 실격이었다. 사업가로도 실패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씩 당시 상황을 복기하고 사유하며 당시의 내 상황과 감정을 표현할 문장들을 손에 움켜쥐게 되면서야 그때의 상황을 제대로 바라보고 표현할 수 있게 됐다.
당시 전국적으로 영향력을 넓혀가던 한 교육회사의 A대표님이 부대표 역할을 맡아줄 사람을 찾는다며 만나자고 제안해 주셨었다.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따끈따끈한 첫 퇴사의 기억을 가지고 A대표님을 만나러 갔다.
창업은 비슷한 시기에 했었는데 내가 다녔던 회사는 4억 정도의 매출에서 머물렀고 A대표님의 회사는 20여 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전국적으로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었다. A대표님은 과거 창업시기부터 현재까지의 상황들을 이야기하며 내가 운영했던 회사는 어떤 게 한계였고, 본인은 그런 한계를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극복해 나가고 있으며 나아가 이러저러한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해 주셨다. 그런 과정에서 사업군을 안정적으로 맡아 키우고 운영해 줄 인력이 필요해서 제안을 하러 왔다고 했다.
일단 제안은 거절했다. 제안해 주신 급여도 당시 받는 금액의 두 배가 넘었지만 돈보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 방식으로 할 수 있는 게 더 중요했다. 그런데 충격은 다른 데에서 왔다.
A대표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처음 알게 된 정보가 있었다. 중고등학교 진로교육 시장의 1위 업체는 캠퍼스멘토였다. 직전 연도 매출이 52억(?) 정도라고 했다. 맙소사.. 1위 기업의 매출이 100억 도 아닌 그 절반정도라면 이 시장은 그다지 돈 버는 것으로 매력적이지 않은 시장이었다. 로컬 청소년 진로교육시장은 별의별 경쟁자들이 많은, 진입이 쉬운 시장이었다. 그리고 교통비 및 이동거리 문제로 서울 업체가 대전까지 내려와 강의하는 것이 힘들다 보니 손에 꼽는 메이저 전국구 업체를 제외하고는 대개 각 지역의 작은 파이를 쪼개어 갖는 수준의 사업을 하게 되었다. 연 매출 1억 언저리면 로컬에서 이름은 아는 정도, 4~5억이면 로컬에서 좀 치는 정도, 10억 이상이면 매우 활동을 열심히 하는 업체 정도가 되는 것 같았다.
A대표님은 지역을 벗어나 전국단위로 성장하기 위해 프로그램의 질을 높은 수준으로 올리는 대신 쉽게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교안들을 만들어 많은 학교를 뚫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프로그램의 질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으니 강사양성이 나름 용이했고, 이를 전국단위로 관리하기 위해 강사관리 어플을 만들어 운영했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아차 싶었다. 내가 힘이 부친다는 생각이 들었던 시기가 위 상황이 만들어질 때였다. 그때 나는 선택을 했어야 했다. 프로그램의 질을 높게 유지하는 대신에 적당한 사업 규모를 유지하고 프로그램의 값어치를 높여 수익을 적당히 높일지, 또는 프로그램의 질은 낮추며 강사 양성/관리를 효율적으로 해 전국 단위로 뻗어나가 박리다매식의 수익을 추구할지였다.
하지만 나는 프로그램의 질은 높게 유지하는데 수익은 기존과 같은 방식으로 높이려고 했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역할들을 다 나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내가 자초한 거였다.
수익을 계속 높여가려는 상황에서 내가 속한 시장에 대한 조사와 적절한 판단을 하지 못했고, 그에 따른 대안들을 적시에 체계적으로 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프로그램은 아티스트처럼 열과 성을 다해 나 스스로 만족할 만큼 만들어 운영하려고 했다. 결국 해결하지 못한 문제의 대가를 치르는 날은 피할 수 없었다.
이후 여러 생각에 잠기다 당시의 내 내면을 관찰하고 정의하고 싶은 마음에 사업 및 리더십과 관련된 다양한 영상들을 찾아보며 공부를 했었다. 그 과정에서 당시의 나를 표현할 문장들을 연달아 얻을 수 있었다.
당시 나는 갈등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면 빠르게 공론화하고 이를 해결해야 한다. 팀원 전체가 그걸 쉬쉬하며 참고 피하려고 한다면 리더 혼자서라도 그것을 테이블로 올려 피 터지게 다투더라고 해결하고 나아가야 했다. 같이 일했던 공동창업자가 그 과정에서 헤어지게 되더라도 말이다. 조직이 성장하며 그에 요구되는 역할과 능력도 변한다. 첫 시기에 유능했더라도 변화하는 시기에 맞춰 성장하지 못한다면 누구든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 과정을 나이스하게 해 낼 수 있으면 너무 좋겠지만 대체로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나는 어려워서 못했다기보다 그런 상황에 대해 무지하고 무능해서 노력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가장 쉬운 '참기'만 했었다. 사업이 커지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어떤 식으로 하고 싶은지에 대해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었고,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 부담스럽고 싫어 그냥 참고 상대방에 맞추어 일하려고 했다. 어떨 때는 이런 상황의 끝이 어디로 이어질지 상상이 되었지만 눈을 감고 회피했다. 회피하며 해결하지 못한 문제의 대가 또한 피할 수 없었다.
패기 넘치던 첫 시작부터 모든 것을 다 소진하고 도전을 그만두기까지 총 8년이 걸렸다. 만약 회사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별다른 실패를 겪지 않았던 상황에서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도전을 하러 갔더라면 위에 적었던 나 스스로의 한계에 대한 인식과 분석,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사업을 하며 리더로서 발휘해야 하는 리더십은 무엇인지,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무엇을 평상시에 잘해야 하는지, 인력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타 교육업의 1년 사이클을 고려했을 때 무엇을 챙기고 또 무엇을 버려가며 어떤 단계를 가지고 성장을 추구해 나가야 할지 등을 제대로 할 수 없었을 거라 생각된다. 성장은 문제와 한계를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극대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중간한 시기에 도전 하나를 그만두고 다른 도전을 하러 간다면, 포트폴리오 한 줄은 더할 수 있겠지만 직업인으로서 또는 한 개인으로서의 인격적/능력적 성장을 쌓기는 어려울 거라고 믿는다.
나는 결론적으로 실패했지만 내 모든 것을 다 걸고 발버둥 치다 끝을 보았기에 내 비전과 능력, 그것이 가진 장단점, 한계점과 개선점을 고난의 깊이만큼 파악할 수 있었고, 향후 곱씹는 과정을 통해 내 능력치를 더 끌어올릴 수 있었다.
직장인들에게 '퇴사를 하더라도 1년 이상은 채우고 그만두라'는 조언을 자주 듣곤 한다. 실제로 경험해 보니, 이 말에는 충분한 일리가 있다. 대부분의 사업은 기본적으로 1년 단위로 운영된다. 정부 예산도 1년 단위로 편성되고, 창업 지원 사업 역시 1년을 기준으로 계획이 세워진다. 사기업 역시 1년을 기준으로 세금 신고와 각종 업무를 처리하며, 법인도 1년 단위로 재무제표를 작성한다.
사람들의 삶 역시 1년 4계절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이에 따라 각 산업은 고유의 사이클을 만들어내고, 사업체들은 이 주기에 맞춰 크고 작은 사업을 준비하고, 성장시키고, 마무리한다.
따라서 한 사업군에서 1년을 온전히 경험해 본다는 것은, 그 사업군의 전체 흐름을 겪어봤다는 의미가 된다. 이는 곧 그 분야를 더 깊이 이해하고, 나아가 이를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쌓았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직장인이든 사업가든 빠르게 도전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1년을 버텨보는 것이 좋은 선택일지 신중하게 고민해 보길 권한다.
나 역시 창업에 도전하면서 1년이라는 기간을 넘어, 제 동기와 역량을 한계까지 몰아붙여 본 경험이 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 물론, 꼭 창업이 아니더라도 1년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겪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경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몸과 마음이 무너질 정도로 힘든 상황이 아니고, 시간의 여유가 어느 정도 있고, 더 이상 배울 것도 성장할 것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면, 그리고 회사가 부당하거나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지 않는 한, 어느 정도의 실패가 예상되어도 1년을 버텨보는 선택을 한 번쯤은 고려해보았으면 한다. 이 시간이 각자의 성장에 큰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성장은 자신의 성공보다 실패에서 더욱 극적으로 일어난다. 성공한 타인에게서도 그 성공을 만들기 전까지 마주했던 수많은 문제상황과 그 상황을 극복하게 해 준 크고 작은 도전의 명암에서 더 많이 배울 수 있다. 그러니 머물지 않고 성장하고자 한다면 실수와 실패를 너무 두려워 말고 빠르게 마주하고 해결하려는 노력, 그 안에서의 나를 관찰하고 정리하고 성장하려는 노력을 계속했으면 한다.
그런 열정적이면서도 일관된 노력과 그 과정에서의 실수 및 실패는 지역사회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 그중에서도 가치 있는 일을 하려 누군가를 돕기 위해 자신의 네트워크를 움직이고자 하는 사람에게 흠으로 보이기보다 응원하고 싶은 모습으로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