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기 위해 만족시켜야 했던 것은 나 아닌 타인이었다

로컬생존기초_직업인이 내 '고객' 만족을 위해 몸을 던져야 하는 이유

by 권성대

잘 만들어진 '제품'도 잘 팔리는 '상품'이 되기는 쉽지 않다


제품(Product)과 상품(Goods)은 의미가 비슷한 단어처럼 보이지만, 생각보다 많이 다른 뜻이다. 제품은 누군가에 의해 생산 또는 제조된 물품을 뜻한다. 상품은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있는 물품 또는 서비스, 거꾸로 말하면 소비자가 구매하고자 하는 물품 또는 서비스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비슷한 것 같지만 제품은 그냥 만들어진 물건 그 자체, 상품은 사고 팔릴 자격을 갖춘 제품/서비스로 서로 차이가 있다.


흔히들 좋은 제품은 자연스럽게 잘 팔릴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 유명한 나이키 조던 신발도 광고 없이 조던이 산책할 때만 신고 다녔다면 지금처럼 유명해지지 않았을 거다. 빌게이츠가 차고에서 만든 윈도우 프로그램도 빌게이츠 혼자 조용히 사용했다면 지금처럼 알려질 일은 없었을 거다.

만든 이의 입장에서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할 초기 제품이나 서비스도 그것을 가장 열광적으로 사용할 만한 고객군에 맞춰 수차례 수정-보완되어야 하고, 브랜딩, 마케팅, 광고&홍보 등을 통해 그 존재를 매력적으로 알려야지만 힘을 받아 팔려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상품이 지속가능하게 판매될 수 있게 하기 위해 생산과 유통, 판매과정에 드는 비용을 계산한 적절한 가격 책정과 생산량 조정도 필요하다.

이런 모든 노력이 나름의 결실을 봐야지만 제품은 상품이 되고, 지속가능하게 고객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



나는 '제품'을 만들던 사람이었다


창업했던 교육회사에서 나는 공동대표 3명 중 한 명으로, 진로 교육/학습 프로그램 기획자의 역할을 즐겨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상품' 생산자가 아닌 '제품' 생산자에 가까웠다. 판매할 목적으로 물건이나 서비스, 즉 상품을 만들어 고객에게 판매하고 이윤을 확보해 내일을 준비해야 하는 영리회사의 공동대표가 '상품'이 아닌 '제품'을 만들기에 집중하는 상황은 조그마한 회사에서 그리 작은 문제는 아니었다.


나는 동료 대표들에 비해 아티스트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뭔가 하나 만들어내야겠다고 결심이 서면 그것에 몰입해 끝을 봐야 했고 그 끝을 결정하는 것이 '데드라인'이 아니라면 내가 만들어 내는 무언가에 대한 나 의 '심미적 만족감'이 채워져야 했다.

창업 초창기에 중고등학교 및 공공기관에 판매할 프로그램들을 만들어야 했는데 기존 공교육이 가진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대안교육에 가까운 형태의 프로그램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를 만드는데 주력했다. 이때 프로그램이 잘 만들어졌다고 판단할 내 기준은 '내가 만든 프로그램의 짜임새가 전국의 선진 대안교육 프로그램과 비등할 수준이 되는지', '과정과 프로그램의 형태가 어땠든 내가 원하는 수준의 결과물이 나오게 할 수 있는지', '내가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디테일하게 다 들어가 있는지' 등이었다.

표현한 기준들을 들여다보면 온통 '나'가 중심에 있었다. 교육회사 창업의 목적은 '지역 청년/청소년의 지역자립을 돕겠다'는 문구였지만, 사업을 시작하고 보니 교육을 들을 청년/청소년에 대한 고민과 연구는 거의 없었고 내 지혜와 능력, 기획의 퀄리티를 잘 높이고 구현해 판매할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낼지에 집중되어 있었다.




나의 '제품'은 3년 간 잘 팔리지 않았다


내가 만들어낸 제품(프로그램)들은 당연히 잘 팔리지 않았다.

고객들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었다면 직접 만든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줄줄 할 수 있었겠지만 처음 보는 청년들에게 그런 시간을 쉽게 내줄리 없었고, 고객들에게 어필할 때 필요한 프로그램 소개서 하나 제대로 만들지 않았다. 사업 초기에 홈페이지도 따로 없었으니 이름을 알아도 부담스럽지 않게 우리를 알 수 있게 할 곳도 없었다.


우리의 고객은 크게 두 명이었다. 프로그램을 구매해 줄 구매자인 진로선생님이나 공공기관 및 마을교육공동체, 그리고 프로그램의 혜택을 누릴 수요자인 청소년/청년이었다. 수업을 들을 대상자들에 대한 연구는 따로 없었다. 그저 그때까지 만났던 몇 안 되는 청년/청소년들과의 교육데이터, 청소년이었고 청년인 나에 대한 분석과 회고, 책과 영상으로 배운 배경지식이 전부였다. 제품의 페르소나 중 하나가 나 스스로였기에 효과가 없지는 않았다. 몇 안 되는 프로그램 운영기회에서도 학생들의 반응은 괜찮았다.

다만 이 수업을 선택해 구매하고 아이들에게 줄 선생님 및 담당자에 대한 고민은 거의 없었다. 어떤 구조로 수업을 만들어야 더 많이 선택해 줄 여지가 생길지, 어떻게 사전 자료를 드려야 우리와의 협업을 편하게 검토를 시작하실 수 있을지, 계약은 어떤 식으로 하는 게 실무 입장에서 편한지 등 고려할 것들이 많았으나 나는 그런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렇게 3년 간 만들어낸 제품들은 하나의 좋은 사례, 포트폴리오는 되었지만 꾸준히 팔려나가지는 못했고 홍보/영업은 거의 각 공동대표들의 개인브랜딩에 힘입어 이루어졌었다.



어마어마했던 영업의 힘


그때 굉장한 힘을 발휘해 준 것이 영업 역할을 맡은 공동대표였다. 그 친구의 꿈은 '영업왕'이 되는 거였다. 잘 파는데 모든 아이디어 도출과 액션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프로그램에 담긴 의미나 기획자가 전달하려는 의도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간단한 기획안을 들고 나름대로 프로그램을 이해한 후 학교들 전화번호 리스트를 쫙 뽑는다. 그리고 무작정 전화를 한다. 찾아간다고 한다. 찾아가기 전에 간단한 소개자료를 메일로 먼저 보내고 가서 미팅을 한다.

미팅할 때 그 친구가 관심 가지고 이야기했던 포인트는 학교 선생님은 어떻게 이런 프로그램을 고르시는지, 프로그램을 검토하는데 필요한 것이나 어려운 것이 없으신지, 요즘 어떤 프로그램 요청을 많이 받는지, 학생 관리에는 어려움이 없는지, 교육청이나 학교에서 뭘 해주는 걸 좋아하는지, 현재 학생교육 및 관리 관련해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등이었다.

그리고는 내가 만든 프로그램을 내밀면서 선생님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 또는 판단한 포인트에 맞춰 프로그램 어필을 했다. 그 과정에서 프로그램의 원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취지로 설명이 되거나 내용이 꽤 변경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신기했던 건 어찌어찌 '팔렸다'였다.


기획의도와 달라진 프로그램 운영요청들이 들어올 때마다 교육 프로그램의 기획자로서 화가 났던 때도 많았다.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 나아가 당위적으로 이건 꼭 지켜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바뀌고 크고 작게 무너질 때가 잦았다. 그런데 당장 프로그램이 팔려나가고, 기회를 얻고, 어찌어찌 신뢰를 가져주는 선생님들이 내가 원했던 프로그램을 온전히 할 수 있는 기회도 종종 주기 시작하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올곧게 자신이 추구하는 '공익'과 '당위'를 외치며 인기를 얻어 후원을 받거나 공공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정치인이나 사회혁신가, 국가의 지원을 받아 순수한 아름다움을 지켜나가고 알리고 싶어 하는 순수예술가나 영리적으로 돈이 되지 않는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국책기관 연구자가 아니었다. 고객에게 인정받고 어떻게든 직원들의 급여를 주며, 내일의 성장을 준비하고 살아남아야 하는 영리 기업 비즈니스맨이었다. 그 사실을 망각해 멋진 '제품'을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었던 나를 '상품'을 고민하게 하고, 내 '제품'을 '상품'으로 바꿔 선택될 수 있게 하는데 우리 회사 '영업왕'의 힘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버텨오며 증명했던 시간의 힘도 분명 있었겠지만 3년 차 이후 매출 급급상승은 영업왕의 덕이었다.




로컬에는 '자기 자신'을 위해 하고 싶은 걸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주변을 돌아다보면 신생 팀/개인일수록 자기 자신을 위해 하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창업교육을 가도 예비창업자들이 아이템을 선정한 이유를 보면 '내가 이 분야를 좋아해서, 내가 이게 필요했어서, 내가 생각해 보니 이게 참 신기하고 멋져 보여서, 돈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아서' 등 지극히 개인적 동기, 자기 자신만이 공감하는 판단근거를 가지고 무언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 그것을 선택해서 활용해 자신의 문제나 욕구를 해결해야 하는 소비자/고객의 입장은 실종되어 있다. 때문에 창업교육에서도 고객중심 문제정의, 페르소나 연구와 정리, 인터뷰 및 설문, MVP 등을 골백번 강조한다.


사회 혁신 쪽으로 가면 더 그렇다. 내가 옳고 좋다고 생각하는 방향과 방식, 소수의 우리가 옳고 좋다고 생각하는 방향과 방식을 고수하며 오래 활동하다 보니 개인과 소수 그룹의 지혜와 경험은 고도화되지만, 그게 점점 일반 대중과는 괴리가 되어서 결국 서로가 더 달라져버려 편견이 쌓이고 나아가 서로를 이성적/비이성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표면적으로 보면 '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이는데 그 '우리'가 특정 문제를 겪는 '나 자신'의 상황을 중심으로 한 소극적 확장인 경우가 많아 이야기하는 스스로도 속아 넘어가기가 쉽다. 이런 문제들이 존재하고 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디자인싱킹 방법론, 리빙랩프로젝트 등의 필요성이 꾸준히 언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취미생활이 아닌 직업인 그 이상의 역할로, 필요한 타인에게 선택받아 그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싶고 이를 지금보다 좀 더 확장해 펼쳐보고 싶다면 과업 관련 사유와 표현의 주체를 내가 아닌 '고객' 또는 도와주고 싶은 '문제당사자'에 맞춰야 한다. 이보다도 더 파급력 있게 확장시키고 싶다면 내 관심사에 별생각 없는 중학생들도 이해할 만한 언어와 논리, 사례로 쉽게 학습하고 공유하고 경험할 수 있게 나의 솔루션과 그 필요를 어필해야 한다. 이는 나 아닌 타인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연구 없이는 매우 어려운 과정이 될 것이다.



직업인이 하는 일의 본질은 '타인의 문제나 욕구'를 대신 '해결'해주고 '대가'를 받는 일, 그런 관점에서 탐색해 볼 일거리는 널렸다


직업은 단순하게 만들어지고 작동한다. '타인'의 '문제나 욕구'를 '적절하게 해결'해주고 '대가'를 받는다. 때문에 우리가 집중할 수 있는 인간 삶의 문제나 욕구는 직업의 원천이 된다.

때문에 이미 세상에 명확히 알려져 있는 직업명에 집중해 일자리를 찾으려 한다면 그 한계도 분명하고, 또 해당 직업은 이미 많은 사람들과 꽤 수가 되는 고수들이 이미 진을 치고 있어 진입과 나름의 성공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사람들이 집에 모아놓는 우유박스를 대신 모아 현금성 포인트로 교환해 주고, 적절한 가격에 재생용지를 만드는 회사에 공급해 이윤을 안겨주며 환경보호에도 기여하는 사람의 직업명은 뭘까? 딱히 정의할 말을 찾기가 어렵지만 이런 사업을 하는 사람은 실제 있고, 일반 시민과 환경운동가 또는 단체, 공공기관 등 다양한 사람들의 문제와 욕구를 해소해 주며 실제 수익도 얻고 있다.

요즘 기술 발전으로 사람들이 직업이 어마무시하게 사라질 거라고 걱정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아무리 AI가 고도화되어 기존 인간들의 일자리를 대체해 직업을 잃게 만들더라도 사람들의 욕구와 문제 또한 그에 맞추어 진화하고 그에 대한 해결도 다양한 방식으로 원하게 된다. 새롭게 탐구하고 도전해 볼 일거리가 계속 생겨난다는 뜻이다.

*물론 새로운 일거리나 구직/활동방식에 적응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한 대안은 정책적으로 필요하다.


이러한 이유들로 직업명에 얽매이면 나에게 맞는 직업/직장 찾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반대로 사람들의 문제와 욕구에 집중해 일거리를 찾으며 정해진 직업명 선택지에서 자유로워지면 특정 로컬이든 전국이든 내가 당장 도전해 볼 수 있는 일을 찾기는 어렵지 않게 시작해 볼 수 있다. 그러니 스스로 직업인으로 자립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직업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다.




여러 말들을 했지만 다시 한번 요약해 적어본다.


로컬이든 어디에서든, 직업인으로 지속가능하게 생존하고 싶다면 탄탄한 자기 욕구 관찰의 기반 위에서 사유와 언어와 행동의 중심을 '나' 아닌 '고객'으로 바꿔야 한다.

제발..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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