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종원 Oct 04. 2024

인연(因緣): 주파수가 맞는 사람

하지만 어색했던 청첩장 모임


어색한 청첩장 모임


  날씨가 시원하다 못해 쌀쌀해진 것이 가을이 불쑥 등장했음을 알아차리게 만든다. 그리고 가을이 왔다는 건 ‘결실의 계절’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마음이 한마음이 되는 결혼식 또한 많을 것임을 예측케 한다. 나만의 일상일 수도 있겠지만, 이미 8월부터 가을 결혼식의 청첩장을 다수 받았고 9월 즈음부터는 주말마다 쉬지 않고 결혼식에 참석하고 있다.


  징검다리 연휴로 군인들과 직장인들의 기쁨을 불러일으킨 10월 1일에도 후배의 청첩장을 받기 위해 정갈한 한식집을 찾았다. 날씨가 좋을 수밖에 없을 것 같은 10월 12일에 결혼식을 올리는 이 후배와의 인연은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후배와 함께 입학사정관 전형(지금의 학생부 종합 전형)을 홍보하는 활동을 했었고, 대외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후배의 말에 그 당시에 내가 하고 있던 대외활동을 추천해서 함께하기도 했다.


  이렇게 보면 엄청나게 친한 사이처럼 보이지만, 애매하다. 전공도 달랐고, 나의 진로가 공공분야였던 반면에 그 후배는 일반 사기업의 취업을 준비했기에 마주하는 환경이 정반대였다. 더욱이 내가 늦게 군에 입대한 탓에 취업을 준비하던 후배와는 연락이 끊기다시피 했다. 제대를 하고 나서도 서로의 일에 바빠 SNS로 생존 여부만 확인하곤 했었는데 만나서 청첩장을 주고 싶다는 후배의 말에 제법 의외라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했다.



(어쩌다 청첩장 모임을 하게 된 것일 수 도 있지만)

그래도 고맙다.


  후배의 생각이 어찌 되었든 나의 입장에선 고마울 뿐이다. 적어도 후배의 입장에선 자신의 일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일(꼭, 그래야만 한다) 결혼식에 초대를 해줬다는 게 '청첩장을 주고 싶은 사람'이라는 글에서 밝혔던 것처럼 아직까지는 내가 좋은 사람인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기분은 좋았지만, 청첩장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고 나니 인간관계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청소년 시절 친구들, 대학교 동기 선후배, 군대 훈련소 동기 등등  당시의 순간을 살아갈 때에는 평생을 함께 할 것 같던 인연들이 서서히 연락이 뜸해지거나,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남이 되어버린다. 반면에 "저 사람을 다시 볼 일이 있을까?" 하는 사람이 평생의 동반자가 되기도 하고 장례식과 같이 힘든 순간에 '몰래 온 손님'처럼 뜻밖의 순간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이번에 청첩장을 준 후배처럼 끊기다시피 했던 인연도 과거의 좋은 기억들로 다시 시작되기도 한다.



결국엔 주파수가 맞아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랜 시간 함께할수록 좋은 인연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게 있다. 바로 주파수가 맞아야 한다. 요즘이야 스마트폰을 통해서 라디오를 듣는 사람이 많지만, 내가 정말 어렸을 적에는 카세트에서 다이얼을 돌려 주파수를 맞춰가며 라디오를 들었었다. 이때에 방송국에서 내보내는 주파수에 가까워질수록 잡음이 사라지고 깔끔한 소리가 나올 때의 쾌감이 있었는데 사람의 인간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운명처럼 한 번에 주파수가 맞아 다른 사람들과의 오랜 시간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애청자가 되는 경우도 있고, 지역이나 환경에 따라 주파수가 약하게 수신되어 관계가 희미해지는 경우가 있다. 반면에 좀처럼 다이얼을 돌려도 주파수가 맞지 않아 이내 청취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청취하고자 하는 라디오의 콘텐츠가 좋다면 나는 그 라디오를 매일매일이고 찾아들을 것이고 때로는 잊고 살다가도 다시금 라디오를 찾을 수 있다. 관계가 좋을 때는 '보이는 라디오'를 경험할 수도 있다. 이렇게만 봐서는 내가 타인의 주파수에 맞춰야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상대방에게는 나 또한 라디오를 진행하는 DJ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좋은 콘텐츠가 되어야 한다.


  라디오는 언제든지 다이얼을 돌려버려 다른 방송을 들을 수 있기에 청취자에게 선택권이 있다. 청취자 없는 라디오보다는 애청자와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라디오가 어떻든지 좋을 것이기에 나 스스로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냄으로써 청취자의 선택을 받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극적인 콘텐츠를 선보일 필요는 없다. 있는 그대로의 나의 콘텐츠가 남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면 결국에 서로의 주파수가 꼭 맞는 인연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애청자들이 늘었으면 좋겠다. 조금은 지지직거리는 방송이라도 전국 어디서나 나의 콘텐츠를 들어줄 애청자들.


 p.s.
  한창 라디오를 좋아했을 때에는 공부를 마친 야심한 시간에 카세트 안테나를 길게 세우고선 주파수를 맞추고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MBC 라디오 FM4U의 '푸른 밤, 그리고 성시경입니다.'를 청취하곤 했었는데, 바야흐로 성시경의 "잘 자요"를 찐으로 들었던 추억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격증'의 또 다른 이름 ‘노력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