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부터 할게요 10화
내가 생각했을 때 한국에서 결혼은 곧 '결혼식'을 올리는 거다. 혼인신고가 결혼이라는 건 옛말이다. 요즘 내 주변만 봐도 결혼하자마자 혼인신고를 올리는 커플은 셋 중 하나 정도 될까 말 까다. 혼인신고를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기준은 '집'이다. 혼인신고를 해서 신혼부부 신분으로 특공이나 대출 혜택을 누리고 싶으면 혼인신고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집을 사는 데 혹여나 불이익을 받을까 혼인신고를 꺼린다. 혼인신고 전에는 2명이 각각 한 번씩 청약 신청을 할 수 있지만, 혼인신고를 하면 부부가 한 세대라 주택 청약 기회가 한 번뿐이다.
각종 정책상품 대출을 받기도 더 까다로워진다. 예를 들어 '디딤돌 대출'을 받으려면 부부합산 연 소득기준 8500만원 이하를 충족해야 한다. 개인이면 연 소득 6000만원 이하도 가능하니 부부 2인과 비교했을 때 불과 2500만원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나마 부부합산 연 소득 8500만원도 이달 들어 정부가 소득기준을 높인 것이다. 혼인신고도 안 하는 판에 동거와 결혼을 나누는 건 '결혼식'밖에 남지 않은 듯하다.
나는 결혼식에 대한 로망이 없었다. 결혼에 대한 로망이 없었으니 결혼식에 대해 무관심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르겠다. 뭐든 따지기 좋아하는 내 눈에 결혼식은 여러모로 이상했다.
신부가 쓰는 면사포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한때 짧게나마 성당에 다닐 때도 왜 여자만 미사보를 써야 하는지가 의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유는 잘 모르지만 반항의 의미로(뭐에 대한 반항인지?) 미사 시간에도 미사보를 쓰지 않았다. 신부가 쓰는 면사포는 내가 미사 때 쓰던 미사보와 맥락을 같이 한다. 면사포의 유래에 대해선 말이 나뉘지만 어느 썰이든 그다지 유쾌하진 않다. 가장 유력한 건 북유럽 게르만족이 과거 신부를 약탈할 때 뒤집어 씌우던 어망에서 유래됐다는 썰이다. 처음 보는 남성한테 뺏긴 '처녀성'의 상징이란 의미다. 혹은 지금도 이슬람 여성들이 얼굴을 가리듯이 신부가 면사포로 얼굴을 가리는 게 순결의 상징이라는 해석도 있다.
신랑은 결혼식 때 당당히 혼자 행진을 하는데, 왜 신부는 아버지 손을 살포시 잡고 아버지와 같이 행진해야 할까. 이것도 나의 궁금증 중 하나였다. 나는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기분이 묘했다. 감동적이고 뭉클한 장면인 동시에 그 안에 숨어있는 뜻을 알 것 같아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아버지 손을 잡은 신부의 행진은 우리 사회의 가부장제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낳고 애지중지 키운 아버지의 '소유물'인 딸을 다른 성인 남성에게 내어주는 행위. 아버지의 보호를 받던 딸은 이제 남편의 소유물이 된다.
결혼식 자체도 내겐 부담이었다. 결혼식은 친척과 친구, 회사사람 등 내가 아는 사람을 한데 모아두고 사랑을 맹세하며 결혼을 알리는 일이다. '공포(公布)'는 내게 공포(恐怖)였다.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행위는 그 자체로 힘을 갖는다. 부부 둘뿐만 아니라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약속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결혼식이라는 의례가 갖는 무게를 견디기가 어려웠고, 그 힘이 무서웠다. 쉽게 말하면 결혼식을 올리면 상대방이 싫어져도 다시 좋아질 거라고 믿고 참고 견뎌야 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혹시라도 결혼을 하게 된다면, 조용하고 소박한 결혼식을 하고 싶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면 '스몰웨딩'인데 그게 아주 귀찮고 오히려 돈이 많이 들어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안 건 나중에 일이다. 내가 일반적인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면 둘 중 하나일 테다. 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람들이 가하는 여론, 소위 '정상적인 길'을 걷는 것에 대한 압박. 또는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챙겨야 하는 스몰웨딩이 귀찮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