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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별 Oct 22. 2023

"애는?" 끝나지 않는 굴레

동거부터 할게요 9화 



"빨리 결혼을 해야 애를 낳지." 


또 시작이다. 사람들은 정말 남한테 진심으로 관심이 많다. 혼자 산다고 할 땐 '결혼 언제 하냐'라고 묻더니, 남자친구랑 같이 산다고 하니 '언제 결혼해서 애를 낳을 거냐'라고 묻는다. 


나는 요즘 결혼한 사람들한테도 혹여라도 자식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진 않는다. 어느덧 30대에 들어서다 보니 주변 언니오빠들은 물론, 친구들까지 임신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여럿이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또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꺼낸 아이 이야기가 그들에겐 상처로 다가올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이제 40대 중반인 친한 언니만 해도 벌써 몇 년째 임신을 시도했지만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한 번은 언니가 말했다. 도시가스 점검하는 분이 집에 왔는데, 4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부부를 보고 아무 생각 없이 애 이야기를 꺼낸 거다. "결혼한 지 꽤 된 거 같은데, 왜 애 안 가져요? 애 있으면 얼마나 예쁜데!" 


순진한 것도 죄다. 그냥 지나가는 소리로, 친하지 않은 사람과 어색함을 깨기 위해서든 단순 수다이든 그렇게 꺼낸 말이 언니 마음속에 또 다른 상처로 남았다. 임신 때문에 우울증까지 걸렸던 언니는 다른 사람들의 악의의 없는 말에 종종 상처를 받는다고 말했다. 


나한테 저런 질문은 상처까진 아니고, 그저 귀찮을 뿐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보는 질문에 항상 같은 대답을 하기도 곤혹스럽다. 그리고 친한 친구도 아니고, 한 두 번 본 사람이나 회사 사람들한테 아이에 대한 고민이나 생각을 공유하기도 쉽지 않고, 공감받을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속으로 '제발 그만 좀 물어봐라'라고 기도나 할 뿐. 




남자친구와 나는 현재 기준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세상에 100%는 없다는 주의라서 '100%'는 아니지만 적어도 98% 이상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우리는 애를 갖지 않기로 했다. 


남자친구는 '애를 안 갖냐'는 질문을 들으면 "딩크예요"라고 답을 한다고 한다. 나는 그런 남자친구한테 뭣하러 귀찮게 그런 이야길 하냐고 한다. 딩크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왜냐고 묻고, 또 내가 대답하면 그 대답이 뭐든 애 낳아야 할 이유를 설득하고자 든다. 아주 번거로운 일이다. 그냥 "지금은 생각 없다" 정도로 퉁치면 될 일이다. 


애를 낳지 않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없다. 세상에 태어난 나는 어찌어찌 살아나가고 있다. 큰 병 없이 지금까지 건강하고 서울대는 아니지만 나름 남들이 쳐주는 명문대를 나와 남들이 나름 듣고 신박해하는 직업을 업으로 삼고 살고 있다. 이 직업은 중학교 3년과 고등학교 3년을 더해 자그마치 6년 동안 '장래희망' 칸을 차지했던 직업이니, 나름 꿈을 이뤘다고 할 수 있겠다. 남들은 나를 항상 긍정적이거나 낙천적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나는 항상 삶을 살아내는 게 버거웠다. 태어난 김에 살아간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가끔 엄마가 농담처럼 "그동안 해준 게 얼마나 많은데 효도 좀 해라"라고 말하면, 나는 "나는 그냥 태어나서 사는 건데"라고 아주 불효자 같은 말을 해 버렸다. 근데 정말 나는 태어나고 싶은 적이 없었고, 엄마 아빠가 나를 강제로 태어나게 한 거 아닌가. 그래서 삶을 살아내고 있는 나는, 혼자서 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것조차 벅차게 느껴진다. 그런데 애라니...!


두 번째 이유도 자신이 없다는 거다. 우리 집은 아빠가 돈을 벌고 엄마는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는 90년대에 한국사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집이었다. 대기업을 다녔던 아빠는 모두가 힘들었던 IMF 때 실직했으나 계속 회사를 다니거나 사업을 했다. 아빠가 벌어오는 돈만으로 4인 가족이 생활을 해야 했으니 풍족하진 않았던 것 같다. 가끔 가족여행을 다니기도 했으나 학창 시절 내내 해외로 가족여행을 가본 적은 없었고, 옷 같은 것도 마음대로 사본 기억이 거의 없다. 돈 때문인진 모르겠으나 휴대폰도 수능 마치고 생겼다.(당시 반에서 휴대폰이 없는 건 40명 중 나 혼자였다.) 한국 가족 지출의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주택 원리금(할머니가 아빠 결혼할 때 집을 한 채 사주셨다)이 없었으니 그나마 생활이 유지됐던 것 같다. 고3 때도 기껏해야 학원 1~2개 다녔고, 과외선생님이던 큰 아빠한테 공짜 과외를 받았다. 


그리고 아빠 사업이 본격적으로 망하고 아빠가 큰 병을 앓으면서 진정한 의미의 어려움이 시작됐다. 살던 집은 경매로 날아가고 땡전 한 푼 없이 엄마 아빠 동생은 할머니 댁으로 거처를 옮겼다. 내가 서울로 대학을 간 지 몇 개월이 채 안되던 날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대학을 졸업해 취업하던 해까지 단 한 번도 아르바이트를 쉬어본 적이 없다. 학자금은 대출을 받았고 생활비와 월세 등은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충당했다. 


대학생이면 이미 성인이고 미국 같은 외국에선 19살만 되면 다들 독립한다고 한다. 하지만 여긴 한국이었다. 주변 친구들이 엄마 아빠한테 등록금은 물론 용돈을 받으며 룰루랄라 대학생활을 즐길 때 난 항상 아르바이트 중이었다. 1~2학년 땐 월화수목금토 호프집에서 일했고, 이러다간 학점이 거덜날까 싶어서 3학년때부터 졸업할 때까진 마트나 화장품 가게 등에서 금토일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런 경험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큰 자산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내가 부모가 된다면 자식한테 모든 걸 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싶다. 없어서 못 해주는 것과 있는데 안 해주는 건 하늘과 땅 차이다. 경제적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상황에서 독립심을 키워주겠다며 '가난을 경험'하는 것과 진짜 가난 속에 사는 건 다르다. 이건 나보다 더 어렵게 살아온 남자친구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세 번째 이유도 자신이 없다는 거다. 나는 아이를 온전한 '인간'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지 않다.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아이가 원하는 대로 삶을 살아나가게 옆에서 응원하고 지지만 해줄 수 있을까. 수도 없이 경쟁하는 한국 사회에서 아이가 이른바 '정상성'의 삶에서 벗어나게 돼도 나는 그걸 충분히 응원해 줄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나도 남들처럼 어려서부터 영어를 시키고, 200만 원 들여 영어유치원을 보내고, 또 돈을 들여 사립초를 보내고, 국제중을 보내고, 어떻게든 끊임없이 사교육을 시켜 소위 'SKY'에 보내고 싶어 하지 않을까. 아이가 좋아하는 걸 하라고, 공부 같은 건 못 해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면 된다고 응원해 줄 수 있는 대인배의 마음이 내겐 아직 부족함을 느낀다. 


만약 내가 애를 낳지 않기로 한 결정을 번복하게 된다면, 둘 중 하나일 테다. 정말 모든 조건이 갖춰져 애를 낳을 자신이 생겼거나 또는 한국사회의 끊임없는 '정상성'의 압박에 굴복했거나 둘 중 하나다. 아마도 후자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그래도 현재로선 98% 애를 낳지 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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