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isie Nov 14. 2020

할머니의 시계는 거꾸로 흐른다

간병보다 더 힘든 건 따가운 시선이에요

치매 노인과 함께 살 때 가장 힘겨운 문제는 겪어보지 않으면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그런 크고 작은 사건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펼쳐진다는 것이다. 자신을 굶긴다며 창문 밖의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른다거나 한밤중에 화장실이 어딘지 모르겠다고 화를 내며 온 집안의 불을 켜고 돌아다닌다던가, 오줌 묻은 팬티와 바지를 꽁꽁 싸매 욕조 구석에 숨겨둔다던가, 당신 마음에 드는 옷이나 신발이 있으면 훔쳐 가서 아무도 못 찾을 곳에 숨겨두기도 한다.

밤에는 도대체 어떤 마력이 있는 것일까?? 놀랍게도 바깥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일 외에는 대부분 이런 일들이 깊은 밤 혹은 새벽에 이루어진다. 모두가 잠든 후에 펼쳐지는 할머니의 은밀한 사생활인 셈이다. 시간관념이 흐릿해져 낮과 밤을 구분하지 못할 때가 많은데도 밤늦게, 비 오는 날 유독 왕성한 활동을 하시는 건 여전히 미스터리다. 그러다 보니 그 순간, 그 자리에 계속 함께 있지 않은 사람은 할머니의 문제 행동을 잘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결국 가족 중에서도 온종일 붙어 있는 사람만, 미치기 딱 좋은 환경이 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하루 10시간 이상을 환자와 함께해야 하는 사람은 사회관계가 끊기거나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생전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변하는-위협적이거나 강박적이거나-상대를 보는 일은 생각보다 참으로 괴롭다. 상대가 치매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지만, 감정적으로는 오랫동안 내가 알고 있던 모습과 현재의 모습 사이의 간극이 도무지 메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병간호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된 일이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이 경제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간병인을 고용하거나 미리 간병인 보험을 준비하는 것이다. 단순히 그 책임을 짊어져야 할 사람의 인성이나 사랑의 깊이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치매 노인을 요양 시설에 맡기는 일조차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제법 많다. 아프면 병원에 입원해 전문적인 치료와 도움을 받는 것이 당연한데, 요양 시설에 입소하는 것을 고려장과 같은 불효로 매도하는 것은 정말 이해가 되질 않는다. 특히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간병 살인만 해도 그렇다. 단순히 인간성을 상실한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기 일쑤다. 그저 부양의 의무를 저버린, 책임감이 결여된 비정한 사람의 비극으로 단정 짓는다.

아직 우리 사회는 치매에 대해, 간병에 대해 너무나 무지하다. 치매와 간병이 사람을 얼마나 우울하고 피폐하며 고립되게 만드는지 모른다. 무언가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일수록 더 함부로 재단하고 쉬이 낙인을 찍는 법이다. 그저 이 문제 자체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폭넓게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여 우리는 좀 더 사회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치매는 어느 낯 모르는 이의 안타까운 사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가까운 시일 내에 마주할 미래이기도 하다. 아픈 사람도,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에게도 적절한 관심과 도움이 절실하다. 간병보다 더 힘든 것은 따가운 시선이다.

이전 05화 할머니의 시계는 거꾸로 흐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