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말린 빨래처럼
할머니가 온종일 꼬옥 닫은 채 생활하시는 방문을 열면, 으레 나는 냄새가 있다. 동생과 함께 방을 쓰고 계시는데도, 노인 냄새라고 하는 그것이 확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헉하고 숨을 참고 만다. 비릿하고 퀴퀴한 냄새는 아니지만, 어딘가 답답하고 묵직한 냄새다. 오히려 아주 오래된 서가에서 느껴지는 고서들의 내음에 가깝다. 그럼에도 헌책방에서와 달리 멈칫하고 마는 것은, 어쩐지 공기마저 그대로 늙어 고인 것 같은 착각 때문일 테다.
뭐랄까. 이상하다면 이상한 걸까. 정작 할머니의 가슴팍에 고개를 묻고 가득 숨을 들이쉬면, 그저 한 뼘 거리에서 맡았던 것과 다른 내음이 난다. 할머니의 체취가 느껴진다. 어릴 적부터 맡아왔던, 익히 알고 있는 그 그리운 내음. 할머니는 늘 곱게 머리를 빗고, 화장품을 바르고, 깨끗한 옷을 입으셨다. 그래서 향긋한 꽃내음이나 비누 향은 아니었지만, 어딘가 편안하게 해주는 일상의 향기가 났다. ‘그냥 오늘도 무탈하게 잘 굴러가고 있구나.’라는 안심이 들게
해주는 그런 향기 말이다.
나는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던 어느 여름날을 떠올린다. 생각해 보면 에어컨도 없던 시절이라 당신도 무척 더우셨을 텐데, 더우니 비키라며 얼굴을 붉히신 적이 없다. 되려 부채질을 해주시면서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셨다. 때로는 선풍기보다 할머니의 부채가 더 좋았다. 어쩐지 그 순간만큼은 내 주변의 공기가 아주 느리게 흘러가는 듯했다.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과 부채 소리는 학업으로 한껏 예민해진 내 마음을 제법 가라앉혀 주었다.
할머니는 항상 나는 아들이 아니니까 공부를 많이 해선 안 된다고 하셨다. 때로는 가난한 살림에 계집애가 공부를 하겠다며, 기어코 아빠를 힘들게 한다고 비난하셨다. 하지만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은 이거다.
“아이고.. 저게 아들로 태어났어야 하는데. 하필 지지배로 태어나서... 저렇게 공부를 하겠다고 기를 쓰노.”
그냥 나를 뿌리부터 부정하는 말로 들렸다. 여자로 태어난 것부터가 큰 잘못이고 오류인 것처럼.
그래서 언제부턴가 시험을 잘 봐야 한다는 압박감과 울렁증이 상당히 심각했다. 시험 전날에는 헛구역질을 심하게 하기도 하고, 좀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럴 때면 늘 할머니에게 달려갔다. 할머니의 손을 잡고 무릎을 베고 누워서는 기도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제발 실수하지 않고, 시험을 잘 보게 해달라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막연히 내 기도보다는 할머니의 기도를 잘 들어주실 거라고 믿었다.
할머니는 내가 시험을 보는 동안 기도를 해주셨다. 내 시험 전에 미리 깨끗하게 목욕을 하고, 절에 가실 때만 입는 블라우스로 갈아입으셨다. 그리고 나와 똑같이 시험을 보셨다. 두 시간, 세 시간을 꼬박 앉아 염주를 돌리면서. 어떤 날은 비 오듯 땀을 쏟았고, 어떤 날은 당신도 이유를 모른 채 하염없이 눈물을 쏟으셨다고 했다. 내가 직접 본 적은 없지만, 할머니는 정말 간절히 비셨던 것 같다. 그렇게 혼신을 다해 공들여 기도하는 할머니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할머니의 진심은 알면서도 삼키기 어렵다.
누구보다 단장하는 것을 좋아하시던 할머니는, 이제 씻는 것을 잊으시고, 더는 곱게 화장을 하지 않으신다. 낮과 밤, 여름과 겨울을 구분하지 못해서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겠다고 고집을 부리실 때도 많다. 아쉽게도 이제는 여름날 할머니가 부쳐주는 부채 바람은 맞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언제나 흔쾌히 무릎을 내어주신다는 것이다. 여전히 할머니의 품속에서는 햇볕에 잘 말린 빳빳한 빨래 같은 향기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