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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isie Nov 18. 2020

[영화] 50/50

차마 꺼내지 못한 마음

영화 자체는 유쾌하고 따뜻했다. 젊은 날의 조셉 고든 래빗은 암 환자임에도 연신 싱그럽고 사랑스러운 미소를 뿜어댔다. 수다스러운 세스 로건의 깨 발랄한 연기는 우울해질 수 있는 영화를 무겁지 않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난 나의 마음은 너무나 어지럽고 복잡하다. 지금은 영화를 보면서 떠오른 생각과 감정들을 들여다보고, 온전히 소화한 뒤 완결된 감상으로 내놓은 일이 너무 어려워 보인다.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근래에 영화를 보고 이렇게 마음이 복잡할 때가 있었나. (아, 미드 체르노빌을 보고 느꼈던 감정의 묵직함과 비슷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나조차도 이름을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삐쭉삐쭉 솟아올랐다가 이내 헝클어져 버렸다. 영화가 마냥 편하고 즐겁지만은 않은 것을 보면, 난 여전히 친구의 죽음과 관계된 일들에 대해 온전히 극복하지 못했나 보다. 나는 그때 친구의 곁에서 많은 사람의 민낯을 보았고, 끝내 변하고 말았던 사람들을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때로는 카일처럼 친구의 곁을 늘 지키지 못했다는 것에 자책하기도 하고, 좀 더 많은 것을 해주지 못했다는 것에 미안하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영화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카일의 입장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친구의 죽음을 직면해야 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그때, 무겁게 끄적여두었던 기록을 끌어다가.

[2016년 4월의 어느 날]
희멀겋게 끓인 쌀죽을 몇 숟갈 뜨고, 옷을 입고 거리를 나선다. 멍한 기분이 싫어 독하게 내린 커피 한 잔을 사 들고, 햇볕이 잘 드는 벤치에 앉아 바삐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카페의 테라스에서는 삼삼오오 모인 여자아이들이 한껏 앳되고 즐거움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노래를 부른다. 참았던 눈물이 왈칵. 간신히 억눌렀던 감정들이 울컥. 다가오는 달에는 너의 생일이 있다. 나도 저렇게 너에게 노래를 불러줄 수 있을까. 유독 일찍 준비했던 선물을 전할 수 있을까. 며칠째 눈을 뜨지 못하는 너를 바라보며.. 나는 한없이 두렵고, 슬프고, 억울하고, 죄스럽다. 이 무거운 마음은 어떤 말로도 가벼워지지 않는다. 차마 너의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꺼낼 수가 없다. 입 밖으로 내뱉고 나면, 내 말이 씨가 되어 버릴까 두렵다. 그리고 나 역시 끝내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너무나 격양된 상태로 써 내려간 글이기 때문에, 여느 사람들에게는 감정 과잉의 글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떠한 문장도 고치지 않았다. 날 것의 생각과 감정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카일이 차마 입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던 진짜 속마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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