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기에 온몸을 내맡기고 그렇게 계절은 세 번이 바뀌었다. 즐겁게 읽었고, 때때로 썼으며 두 번의 여행을 다녀왔다. 해가 바뀌면서 채식을 하기로 마음먹었고 드디어, 배우고 싶었던 수영을 시작했다.
대학 때부터 입버릇처럼 떠들고 다녔지만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수영. 다행스럽게도 집 근처에 위치해준 수영장 덕분에, 나와 함께 수영을 시작하고 싶다는 그 덕분에 이번이야말로 그 어렵다는 시작을, 했다.
나는 2016년의 봄, 흐르는 시간 안에서 배영 중이다.
물 위에 몸을 맡긴 채 표정 없는 얼굴로 하늘을, 아니 코팅된 수영장의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의식하지 않으려 하지만 이따금 목에 힘이 들어간다. 나아가기 위해 다리를 굴리지만 허벅지가 뻐근하다. 분명 얼굴은 물 위에 떠 있는데도 가쁜 숨은 가슴을 쉴 새 없이 오르내리게 한다.
아직 배영은 내게 자연스럽지 못하다.
어떻게든 앞으로는 나아가고 있다. 물을 차올리는 동안 주변의 사물이 스쳐 지남을 느낄 수 있으니까.
물은 나의 움직임을 모른척하지 않는다. 물 위의 누군가에게는 내 모습이 평온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속도를 내려하면 허벅지의 뻐근함이 속도를 늦추고, 시야가 갑갑해 물안경을 벗어 올리면 옆 레인에서 넘어온 가열한 접영의 물살이 물을 먹인다.
나는 그저 천장에 비친 내 모습이 보고 싶었다.
물 위에 곧게 뻗은 일자의 전신이 자연스럽게 물 위를 헤쳐나가고 있는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중인지 확인이 하고 싶었을 뿐인데. 어쩐지 배영은 자유형만큼이나 숨이 차다.
물 위를 유유히 가르는 평영이 내게 훨씬 자연스럽다.
물과 내가 하나 되어 양옆에 붙들 무엇이 없어도 두렵지 않은. 숨이 막혀오면 두려움에 발버둥 치기보다 천천히 몸을 둥글려 물 위로 올라오면 되는 아주 자연스러운 몸의 동작.
나는 문득 평영 하듯 살고 싶어 졌다.
나의 평영 자세는 가끔씩 자연스러웠고, 때때로 불안정했다. 리드미컬한 동작에 사념이 끼어드는 순간 어김없이 균형은 흐트러졌고, 제자리에 떠 있는 몸은 더 이상 나아가질 못한 채 좌우로 흔들린다. 그럴 때면 들려오는 강사의 목소리.
‘손 한 번에 다리 한 번이에요, 손 먼저 그리고 다리.’
나는 한 번 씩 웃어 보이고 다시 물속으로 뛰어든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마음의 준비가 조금 더 필요한 자유형보다 평영을 대하는 나의 자신감은 5초쯤 앞서있다.
손을 앞으로 쭉 뻗은 채 물 위에 올라타 머릿속에 동작을 그린다. 손 한 번에 다리 한 번. 나는 태어나 처음 물속을 가르는 개구리처럼 서투르지만 자연스럽게 물속을 가른다. 순서를 더 이상 되뇌지 않아도 유유히 앞으로 나아가는, 레인의 중반을 막 넘어선 무렵, 비로소 물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냈음을 감지한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유영. 스르륵 미끄러져 나가며 되찾은 여유가 손끝과 살결에서 물결을 음미하게 한다.
평영 하듯 살아지고 싶다. 이 삶이 나이듯 내가 곧 이 삶인 듯. 가끔 숨이 막히면 물 위에 올라 숨을 가득 머금고, 인내가 필요한 순간엔 잠영하여 묵묵히 발길질을 하고, 한 번의 킥 후에 찾아오는 평온함을 즐기며.
이윽고 그렇게 내 삶 위에서 유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