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살에 코를 대고 한참을 킁킁거렸다. 비 냄새. 이 촉촉한 냄새. 이윽고 시작된 장맛비에선 짙고 농후한 젖은내가 났다. 아무리 맡아도 질리지 않는 물먹은 땅 냄새.
오늘이 며칠인가, 무슨 요일이었더라 하다가 심란해져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다시 냄새 맡기에 집중한다. 선명한 냄새가 콧속으로 밀려들어올수록 무질서한 기억이 눈앞에 펼쳐졌다 흩어진다. 아스라한 맛. 집중하면 도망가는 기억. 나는 기억을 머금고 있는 냄새를 좋아한다. 잠시 그렇게 냄새 맡기에 공들이는 시간.
이른 저녁에 내리는 장맛비는 달았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애매한 시간. 집안에 불을 밝히기 아까운 무렵, 오직 여름만이 내어준 시간. 딱 알맞은 빗줄기는 딱 알맞은 바람을 데려온다. 활짝 열어놓은 창문으로 밀려들어오는 쾌적함. 이럴 때면 나는 까무룩 단잠이 들곤 했다. 그 달콤함. 개운하게 한잠 자고 일어났는데도 여전히 밝은 창밖은 심심한 위로가 된다.
살갗에 살짝 소름이 올랐다 가라앉는 시원함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온도. 여름에 마시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는 이럴 때, 겨울보다 맛있다. 여름 별미. 장마.
목적 없는 울음을 터트리는 순간 느끼는 개운함 같은 것.
시큰한 콧부리를 누르며 토로하는 외로움 같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