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금야금, 아껴읽는 책의 묘미를 아시는지.
애정하는 작가의 신간이 기다림 끝에 집 앞으로 배달 됐다. 서점에서 직접 책을 사들고 나오는 설렘은 집에서 택배를 뜯는 설렘으로 바뀌었지만 결코 그 기쁨의 무게가 덜 하지 않다. 커터칼을 도르륵. 그러면 포장지 안으로 얼핏 보이는 네모납작한 것이 정갈한 빛을 띄며 얌전히 누워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신이 난다. 깨끗이 손을 씻고 첫장을 넘겨 여는말부터 꼼꼼히 읽어본다.
이 맛있는 걸 티비를 틀어두고 별 생각없이 먹어치우면 안된다. 값지고 양이 적은 오래간만의 별미를 음미하기위해 어수선한 주변을 정돈하고 집중할 준비를 한다.
생긴 모습을 찬찬히 한 번 훑어본 뒤에 곱게 두어 사진도 한 장 남겨본다.
책장을 넘기고 난 후부터는 글자를 입안에 굴려 삼키듯 차분하고 은근한 속도로 문장을 소화한다. 우걱우걱 삼켜 휘리릭 끝내버리지 않도록. 그렇게 야금야금 이 얇은 책을 아껴읽는다. 이미 넘긴 책장을 다시 넘겨 읽어보기도 하고. 좋은 문장을 다시 천천히 읽어보고.
한 번에 휘리릭 읽히는 글도 좋지만, 이렇게 자꾸만 책장을 더디 넘기게 붙드는 문장이 좋다. 글자를 더듬는 시선에 감탄이 짙도록, 그래서 자꾸만 같은 구간을 몇 번씩 읽게 하는. 그렇게 읽어도 끝내 마지막장은 쉽게 오고마는.
아껴읽어야 제맛인 문장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