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in 1992.9.1
19년을 함께 한 나의 반려견 제니를 떠나보낸 지 한 달이 지났다. 처음엔 제니가 떠났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퇴근 후 집에 오면 나도 모르게 제니가 늘 앉아 있던 소파 옆 공간으로 눈길이 갔다. 텅 빈 곳을 마주하고 나서야 제니의 부재를 실감하곤 했다. 한동안은 동네 공원에 산책하러 가지도 못했다. 주인과 나란히 걷는 강아지들을 보면 제니 생각에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났기 때문이다.
실은 이런 증상이 꽤 오래 갈 것으로 생각했다. 올해 겨울은 떠나간 제니 생각에 아파하며 보내겠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고작 한 달이 지났을 뿐인데 나는 퍽 괜찮아졌다. 친구들에게 제니 이야기를 웃으며 꺼낼 수 있고, 지나가는 강아지들을 애정을 담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19년간 제니 자리였던 소파 옆 공간에는 책 몇 권과 아직 뜯어보지 못한 택배 박스들이 어지러이 놓여 있다. 내 인생의 3분의 2를 함께한 가족에게 나는 너무 무정한 것 아닌가.
친구들은 내가 제니의 마지막 시간 동안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정말 제니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두 눈이 멀고 하반신이 마비된, 어느 한 곳도 성한 곳이 없는 열아홉 노견을 돌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침에는 물에 불려 부드러워진 사료를 한 알씩 입에 넣어주었고, 저녁엔 쌀밥을 쑤어 죽을 만들어 먹였다. 밥을 겨우 먹이고 나면 주사기에 약을 넣어 억지로라도 먹였다. 약이 너무 독해 제니는 늘 끈적한 가래침을 흘리고는 했는데, 나는 마른 수건이나 때론 맨손으로 제니의 침을 깨끗이 닦아 주었다. 떠나기 몇 주 전부터는 변을 보는 일에도 내 도움이 필요했고, 통증을 줄여주는 패치를 붙여줘도 새벽마다 아파하는 탓에 갓난아이를 돌보는 부모처럼 제니를 품에 안아 쓰다듬고, 울다 겨우 잠에 들곤 했다.
나를 알던 모든 이들이 내게 대단하다고 말할 만큼 신체적으로도, 심적으로도 고된 일이었다. “제니를 정말 사랑하는구나”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다. 제니를 너무 아끼고 사랑했다. 내 인생 첫 번째 반려견이자 아마도 마지막 반려견일 테고, 우리 가족에게 셀 수 없이 많은 기쁨을 준 소중한 존재이니 당연하다. 그러나 사실 나는 그 모든 일을 내가 ‘해야만 했기 때문’에 했다. 제니가 하늘로 떠나기 두 달 전, 부모님께서 사정상 잠시 미국으로 떠나게 되셨다. 내가 아니면 이 아이를 감당할 사람이 없게 된 것이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책임감’이라는 감정을 여실히 느꼈다. 사랑만 했다면 그 모든 과정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제니의 하나뿐인 보호자였고, 제니를 끝까지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쉽게 약해질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제니를 위한 모든 일을 그냥 해냈다. 매일 눈곱을 닦아주고 변을 보게 해주는, 예전의 나였다면 선뜻 나서기 힘들었을 일들도, 끝내 아파하던 제니를 하늘로 보내기로 한 어려운 결정을 내린 일 역시. 내가 남보다 강인해서가 아니라 해야만 했기 때문에 한 것이다. 나 역시 종종 어른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나라면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참고 견디지?’ 누군가를 살뜰히 돌보는 일을, 누군가를 떠나 보내는 일을, 팍팍한 인생을 견뎌내는 일을 말이다. 한때는 우리 세대의 평온함이 나를 나약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의심하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다른 생각이 든다. 내가 동경했던 그 시절 그 어른들도 강해서 그 모든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구나. 그들도 그저 묵묵히 자신이 해야만 했던 일들을 해낸 거였구나. 그 어쩔 수 없던 모든 상황이 그들을 강해 보이는 어른으로 만들었구나. 하고 말이다.
오늘 아침 나는 제니의 사망 신고를 끝으로 제니에 대한 내 모든 책임을 다했다. 너무 작아서 품에서 꺼내 놓기도 조심스러웠던 아기 강아지를 처음 만났던 그 순간부터, 함께 뛰어놀고 장난치던 수많은 추억 그리고 편안히 눈을 감던 마지막 모습까지, 제니와의 모든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기엔 내게 남은 날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살아가며 나는 얼마나 더 많은 일을 홀로 책임져야 할까. 또 얼마나 많은 사랑하는 이들을 가슴에 묻어야 할까. 서른 살의 겨울, 어른의 무게를 새삼스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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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의 무게, 어른의 무게]
written by SU YEON MIN
@mingssu_
민수연, born in 1992/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