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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잡은 한치로 아들의 생일 미역국을 끓이다.

글디오: <글로 보는 라디오> #4

by teaterrace




아이 생일 아침입니다. 오늘 아침은 제대로 된 밥을 먹어야 하기에 좀 서둘러 일어나야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네요. 어제 아침 8시부터 밤 12시까지 꼬박 16시간을 쉬지 않고 움직였더니 더 자고 싶어요. 알람 소리에 겨우 일어나 보니 올케가 미역을 담가놨네요. 미안한 마음에 서둘러 세수를 합니다.


쌀을 씻고 뜬 물을 받아둡니다. 미역국에 꼭 필요한 물이니 잘 챙겨둬야 해요. 밥을 안치는 동안 남편은 미역국을 준비합니다. 남편의 생일을 제외하고 미역국 담당은 늘 남편이에요. 가끔 과한 욕심을 부리다 실패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맛이 정말 좋습니다. 음식에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 것을 좋아해서 각종 미역국이 탄생해요. 오늘은 어제 예고한 대로 '한치 미역국'입니다. 어디에 찾아봐도 레시피가 없어요.

저는 맛살과 햄을 넣은 계란말이를 합니다. 제일 만만하지요. 아이들 반찬으로. 남편은 미역국을 불에 올리더니 이번에는 한치 통찜을 합니다. 어디선가 들었는데 한치는 겉만 슬쩍 물로 닦고 내장과 함께 쪄내도 괜찮다고 했어요. 싱싱한 녀석이라 내장도 함께 먹어도 된다고요. 기대를 해봅니다. 이번에는 호박전을 부칩니다. 야채를 싫어하는 아이인데 호박전은 다행히 잘 먹어요. 햄과 생선도 굽고요. 반찬이 얼추 완성되어 가니 상을 차려봅니다.



사진을 찍어 양가 어른들에게 전송을 하고 축하인사를 건넨 뒤 식사를 시작합니다.


한치 미역국 생각보다 국물 맛이 좋네요. 야들야들한 한치의 식감이 꽤 괜찮습니다. 이번엔 한치 통찜을 먹어봅니다. 알이 잔뜩 들어있고요, 먹물도 그대로 익었습니다. 고소한 맛이 일품이네요. 아이에게도 먹물 한치를 맛보입니다. 영구처럼 웃어보라고 시키니 저도 재밌는지 씩, 웃어 보입니다. 계란말이와 호박전, 햄 부침, 고등어구이는 모두 익히 알던 맛이고요. 다만, 제주에서 다 같이 푸짐하게 먹은 첫 아침상이라 한 그릇 뚝딱 했어요. 모두 아들 덕분이지요. 아니 남편 덕도 있네요.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한치였으니까요. 어제 조금만 놀리길 참 잘한 것 같아요.


어제 늦게 오기도 했고, 아이 생일이기도 하고, 동생네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 없을 듯해서 남편이 연가를 냈어요. 고로, 오늘은 모든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날이에요. 어제 수영장을 갔기 때문에 오늘은 자연스럽게 바다로 가기로 합니다. 어제 그렇게 정해두었거든요. 출발 전에 근처에서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예약해둡니다. 저녁 파티에 쓰려고요.



김녕 프라이빗 해변으로 출발합니다. 관광객들은 해수욕장에서 놀지만, 우리는 우리만의 해변이 있거든요. 아는 사람들만 가는 곳이요. 아무도 없는 비치에 텐트를 치고 그늘막 아래 매트도 깔아 둡니다. 아이스박스와 아이들 모래놀이 장난감을 꺼내놓으니 모두 준비가 끝났습니다. 이제 물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지요.



물은 적당한 높이에 적당한 온도네요. 다행입니다. 거침없이 들어갑니다. 오늘은 구름이 많은 날씨라 가끔씩 해가 얼굴을 보일 때 예쁜 바다색을 보여줍니다. 스노클링도 하고 튜브도 타고. 천국에 가면 이런 기분일까요.


바다 수영은 몇 번 해본 아이라 숙모와 동생들에게 이것저것 알려주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수영을 잘하는 올케는 아이들을 데리고 물 위 기차놀이를 하네요. 바다수영이 처음인 꼬마 손님들도 이제 적응이 된 모양입니다. 출출해지면 챙겨 온 옥수수를 깨 먹으면 됩니다.


놀다 보니 카페인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남편에게 커피를 부탁합니다. 센스 있는 남편은 4인 4색의 커피를 사들고 옵니다. 커피를 들고 바다 배경으로 인생사진도 찍어봅니다.


아이들은 배도 고프지 않은지 물놀이에 여념이 없습니다. 이따금씩 옥수수를 먹으러 물 밖으로 나오는 것 말고는 물과 한 몸이 되어 노네요. 하지만, 이제 가야 할 시간이에요. 마침 배달 중국집도 오늘 쉬는 날이라니 더는 견딜 수가 없네요.




집으로 와서 간단히 소금물만 씻고 나가기로 하고 차에 오릅니다. 20분 정도면 도착하는데 아이들이 사정없이 졸고 있어요. 물놀이는 역시 대단하게 체력을 소모시키네요. 욕조에 물을 받고 물놀이에 썼던 모든 것들을 퐁당 빠뜨립니다. 특히 바닷물이라 얼른 씻어내지 않으면 옷감이 상하니까요.


대충 씻은 몸을 이끌고 근처 레스토랑으로 갑니다. 배가 고픈데 사람이 무지 많아 기다리기까지 해야 합니다. 생일인 아들에게 미안합니다. 생일날 굶으면 안 된다고 어른들이 그러셨는데. 한 끼를 건너뛰고 저녁까지 배고프게 하다니 부족한 부모이지요.

덕분에 맛있는 저녁을 먹었습니다. 들어오는 길에 케잌을 찾아왔습니다. 가랜드와 풍선을 달고 케잌에 불을 붙이니 제법 모양새가 납니다. 아이 입이 귀까지 벌어졌습니다.


이번 생일에는 아이가 꼭 원했던 파티의 모양이 있었어요. 작년까지만 해도 파티보다는 생일선물에 관심이 있던 아이인데, 사회생활을 하더니 보는 눈이 생겨났나 봅니다. 아무튼, 아이가 원하는 파티는 우선 깜짝 파티가 아닐 것, 그리고 세모 모양 가랜드가 있을 것. 이 두 가지였어요. 가랜드의 모양은 지킬 수 없었지만 아이가 그리는 파티의 모양이 대강 이런 것이겠구나 상상하며 꾸몄습니다. 간단하지만 효과는 엄청났죠. 게다가 동생들까지 축하해주니 얼마나 기쁠까요.



충분히 배가 부른 상태였지만, 아이스크림은 들어갈 공간이 있잖아요. 우리 모두는 또다시 열심히 먹었습니다.


"겸아, 아이스크림도 한 끼인 거야. 알겠지?"


제 마음 편하자고 아이에게 강요를 합니다.


"어? 근데 왜 선물이 한 개 밖에 없지. 이상하다?"


사실 생일 식사와 파티만 생각했지 선물은 준비하지 못했어요. 늘 아이와 붙어 있으니까요. 아이에게 귀엣말로 속삭입니다.


"겸아, 사실은 내일 겸이랑 함께 가서 선물을 고르려고 해. 겸이 마음에 들어야 하니까. 내일 마침 동생들도 다른 약속이 있어서 나가야 한다니까 그때 몰래 다녀오자. 어때?"


아이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기념촬영까지 마치니 드디어 생일이 끝납니다. 얼마나 오래 기다려 온 생일인데요. 날마다 얼마나 남았느냐고 물었으니 기다림이 보통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 간절함을 알기에 오늘이 더 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봅니다. 아니 아니, 농담이에요. 사실 오늘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더 길었다가는 이대로 쓰러질지도 몰라요.

"겸아, 오늘은 겸이가 태어난 것을 축하하는 날이기도 하지만, 엄마가 겸이 낳느라 힘든 날이기도 해."


남편이 저를 추켜세워줍니다. 생일은 늘 그랬습니다. 엄마가 고생한 날. 하지만, 아이를 낳고 보니 탄생 자체가 감사한 날이어서 생일자를 축하해주나 보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겸아, 엄마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엄마가 없으면 어떻게 영원히 살지? 혹시 나중에 엄마가 곁에 없더라도 하늘나라에서 지켜봐 줘요."


이 녀석은 나이도 어린데 왜 이렇게 현재를 만끽하지 못하고 걱정이 많은 걸까요. 그래 그래. 엄마가 영원토록 지켜볼 거야. 저 하늘의 별빛처럼.


아이를 낳은 날로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아이 생일에는 비가 옵니다. 레인메이커가 태어났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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