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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정도는 여유롭게 지내려다가

글디오: <글로 보는 라디오> #5

by teaterrace



안녕하세요. 오늘은 조금 여유롭게 하루를 보내보려고 해요. 이틀간 열심히 놀았으니 하루 정도는 어른들을 위해 휴식 같은 하루를 보내도 괜찮잖아요.


남편을 차로 데려다주고 오는 길입니다. 꽈배기 집이 있는데 혹시 문을 열었나 가보니 8시 오픈이라네요. 찹쌀로 만들어 꽤 쫀득한데 500원밖에 안 해요. 고로케랑 핫도그까지 곁들어 한 봉지 가득 채워옵니다. 집에 와보니 이미 아이들은 컵밥으로 식사를 마쳤어요. 참치마요인데 뭘 그렇게 맛있다고 난리들인지 애들 입맛은 역시 유치해요.


꽈배기 몇 점을 물고 나니 역시 아침에 단 것은 별로인가 봐요. 오히려 밥이 더 먹고 싶어 진달까요. 어른들도 컵밥을 데워봅니다. 그런데 별로 맛있지가 않아요. 실패입니다. 얼른 입을 헹궈야겠어요. 커피로요. 모두 챙겨서 커피숍으로 달려갑니다.



집 근처에 큰 커피숍이 있는데 듣기로는 제주에만 있는 프랜차이즈라고 해요. 그런데 커피 하나만 주문해도 디저트 하나가 무료로 달려와요. 디저트를 먹고 싶지 않으면 커피값을 할인해줘요. 그럼 보통은 디저트까지 먹게 되잖아요.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지요. 디저트도 쿠키 한 개 수준이 아니라, 베이글에 크림치즈, 대만식 샌드위치, 머핀 등 중에서 고르게 되어 있어요. 음료 2잔이면 케이크로 업그레이드가 가능한데 개인적으로는 1음료에 달려오는 디저트만으로도 만족이에요. 커피만 주문할 경우 트리플 세트도 가능하대요. 그럼 커피 한잔에 2천 원도 안되는데 미안할 지경이에요. 제주의 커피값이 비싼 편인건 아시죠? 치만 육지의 커피값에 비해서도 굉장히 저렴해요. 테이크아웃 전문점이 아닌데도요. 커피맛은 제 입에는 별로이지만, 아이스 아메는 마실만해요. 가성비는 정말 괜찮은 카페예요.


매장도 매우 넓어서 혼자서 스터디룸을 독차지하고 있는 경우도 자주 있어요. 처음에는 이상해 보였는데 이제는 익숙해요. 우리도 아이와 함께 있으니 룸으로 들어가서 마음껏 여유를 부려봅니다. 이 정도면 육지 저희 집 근처에도 생기면 좋겠어요. 아마 매일 갈 것 같아요.


아이가 그린 무지개 고래


이제 커피를 마셨을 뿐인데 여유를 부리다 보니 점심 때에요. 밥 먹을 시간이 된 거지요. 커피 마시고 밥을 먹다니 뭔가 순서가 뒤바뀐 것 같지만 그래도 배가 고프니까요. 올케가 고기국수를 원하기에 남편이 추천했던 가게로 가요.



대낮의 더위는 정말 대단하네요. 하루가 멀다 하고 폭염경보 메시지가 와요.


동생은 비빔국수, 올케는 고기국수, 저는 콩국수 이렇게 각기 다른 메뉴를 주문합니다. 오래지 않아 국수가 나왔고 올케는 시내 유명한 고기국수 집하고 맛이 같다고 감탄을 하며 먹네요. 다행이에요. 아이들도 열심히 먹는 것을 보니 동네 맛집이 맞는 것 같아요. 국수를 먹다가 우연히 창밖을 내다봅니다. 찻길에 운동화 한 짝이 덩그러니 놓여있네요.


무슨 영문일까 가만히 보고 있는데 남자아이 한 명이 다가오더니 운동화를 주워 뛰어가네요. 친구가 떨어뜨린 신발을 대신 주워주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순간 올케가 밖으로 뛰어나갑니다. 일이 심상치 않은 모양이에요. 덩달아 밖으로 뛰어나가 보니 글쎄, 한 여자아이가 찻길에 쓰러져 있었어요. 올케가 일으키려 하자 주변 사람들이 더 위험해질지 모르니 내려놓으라고 당부합니다. 교통사고를 당한 모양이에요.


주변에 아이의 것으로 보이는 가방이 있어요. 119에 연락을 했고, 경찰에게도 연락을 했으니 부모에게 연락을 해야 할 것 같아요. 가방을 뒤져보니 아이 이름이 나와있고, 아이가 다니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학원 이름도 보입니다. 핸드폰을 들어 검색을 하는데 두 손이 떨려서 잘 되지 않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바로 건너편 건물에 그 학원 이름이 보여요. 얼른 전화를 걸어 상황을 전하고 아이의 재원 여부를 확인한 후 부모에게 연락을 부탁했어요.


아이는 다행히 숨은 쉬고 있어요. 하지만, 충격 때문인지 더위 때문인지 할딱 거리며 겨우 숨을 넘기고 있습니다. 입술은 파래져 있고요, 귀 부근에서 피가 나고 있어요. 큰 외상이 눈에 띄지 않아 더욱 염려가 됩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들어, 물수건을 가져오라느니 우산을 받쳐주라느니 이런저런 챙김을 요구하기에 먹고 있던 식당에서 물건을 받아 가져다줍니다.


그 사이 구급차가 도착했어요. 아이를 실은 구급차는 한마음 병원으로 간대요. 아이 부모에게도 이를 알립니다. 얼마나 힘이 들까요. 아이와 부모 모두요.


구급차가 떠나자 경찰이 도착했어요. 아이를 치고 간 운전자는 꽤 나이가 들어 보이는 할아버지입니다. 사고지점으로부터 몇십 미터 떨어진 곳에서 잡히듯 차에서 내렸나 봐요. 목격자들은 건너편에서도 쿵, 소리가 났는데 몰랐다는 게 말이 되냐며 할아버지를 몰아붙이고, 할아버지는 몰랐다는 말을 반복하다가 횡단보도도 아닌데 애가 나타날 줄 어떻게 알았겠냐고 오히려 화를 내시네요. 신호가 걸리지 않았더라면, 한 청년이 할아버지를 잡으러 가지 않았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모르겠어요. 말씀도 제대로 못하고 더듬으시는 운전자라 정말 몰랐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긴 하는데, 과연 그렇다면 운전은 이제 그만 하셔야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아이가 별일 없이 깨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눈앞에서 차사고를 목도한 우리는 더 이상 식사를 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 놀랐고, 차에 받힌 아이를 눈앞에서 보고는 더는 넘어가질 않지요. 그대로 정리를 하고 나옵니다.


운전이 두려워집니다. 온몸이 사시나무 떨 듯 떨립니다. 어디를 갈까 막막합니다. 아무래도 키즈카페에서 아이들을 놀게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은 신이 났어요. 기껏 제주에 와서 키즈카페가 웬 말이냐,라고 했었지만 지금은 정신적 휴식이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아이들이 알아서 놀아줘야 합니다. 날씨가 더우니 실내여야 하고요. 시간이 지나니 진정이 되었지만, 하루 종일 아이의 표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네요.

부디 무사해야 합니다.



동생 가족은 제주의 지인과 저녁 약속이 있어 택시를 타고 나갔고요, 아이와 저는 남편을 데리러 갑니다. 남편과 함께 어제 약속한 아이 선물을 사러 가야지요. 키즈카페에서 한참을 놀았지만, 만족할 때까지 놀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아이에게 선물 사러 가야 한다고 속삭이니 두말 않고 따라 나왔답니다. 제 아빠를 만난 지 오래지 않아 아이는 잠이 들어버렸어요. 본래는 장난감 가게를 먼저 가야 하지만, 아이도 잠이 들었으니 서문시장을 우선 들르려고 해요.

남편이 동생네 가족도 온 겸, 드라이에이징 소고기를 주문했거든요. 그런데 양이 네 사람 분량은 되지 않아서 서문시장에서 소고기를 조금 더 사려고요. 꽤 맛있는 한우정육점을 알고 있거든요. 그날그날 괜찮은 부위의 투플러스 등급의 소고기를 원하는 가격에 맞춰서 주는 곳이에요. 거기에 흑돼지 오겹살까지 더해서 사면 제주의 모든 고기를 맛볼 수 있죠. 꼬마들과 드럼통 구이집에서 먹기는 쉽지 않을 테니까요. 제주에서는 돼지고기보다 소고기가 더 저렴한 것 같아요.

이제는 아이도 한 시간 정도 잤으니 깨워도 될 듯합니다. 장난감 가게 앞이니 잠투정 없이 깨어납니다. 자기가 언제 잤냐는 듯한 표정도 지어 보입니다. 아이는 이제 물 만난 물고기마냥 가게 안을 휘젓고 다닐 겁니다.


제 선물을 고르고 나더니 동생들 것도 사주고 싶다 하네요. 자기 돈이 아니라 그러는 걸 테지만 그래도 기특하지요. 양 손 가득 장난감을 들고 가게를 나옵니다.


배가 고파요. 얼른 집에 가서 몇 점 구워 먹어봐야겠어요.


새 장난감에 신이 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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