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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제주로 피서를 떠나시나요?

글디오: <글로 보는 라디오> #7

by teaterrace



안녕하세요. 비가 내리는 제주의 오후입니다.


외출 준비를 하고 나서려는데, 아들 녀석이 잠투정을 해대는 통에 잠시 안아주었더니 금세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이제 제법 어린이답다,라고 했는데 아직은 아기 같은 구석이 남아 있네요. 잠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컨디션이 안 좋아져서 사소한 일로도 짜증을 부리고 칭얼거립니다. 졸려서 그런 거라는 말을 듣는 것은 또 엄청 싫어해요. 아직은 엄마가 자기를 더 잘 아는데 말이죠. 아무튼 아이는 잠이 들었고, 아이가 잠이 들면 외출은 당연히 어려워지요. 대신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졌어요.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자유로움이요. 워킹맘들의 글쓰기 시간은 육퇴 후라고 하는데 저는 그 정도로 바지런한 사람이 되지 못해서 늘 우연히 주어지는 자유로움을 갈망하며 살고 있답니다.


중부지방에는 많은 비가 내리고 있다고 하는데, 제주는 잠시 소나기처럼 내리는 게 고작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제법 시원하게 퍼붓고 있네요. 엄마 아빠를 비 속에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아이가 졸려했나 보다고 위안을 해봅니다. 남편은 곁에서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을 읽다가 졸고 있고요, 아이는 도롱 도롱 소리를 내며 잠을 잡니다.



실은 요 며칠간 받은 스트레스를 바다 풍경을 더한 커피 한잔으로 위로받으려고 했어요. 동생네 가족이 와서 지낸 5일 동안, 북적거리며 재미있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손님이다 보니 좋은 것 먹여주고 좋은 것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꽤 신경을 쓰고 지낸 며칠입니다. 하지만, 내 뜻과는 달리 어린 조카들과 좁은 집에서 함께 지내는 일은 쉽지는 않았어요. 무엇보다 무더운 날씨에 바깥활동이 제약적이다 보니 괜찮을 곳을 찾는 일도 여간 고민스러운 것이 아니었고요. 거기에 울음 대장인 조카의 칭얼거림에 정신적인 피로감이 더해졌어요. 오늘 아침 공항에 바래다주고 죽은 듯이 2시간을 잤네요. 북적거림보다는 고요함에서 더 편안해지는 제 자신임을 다시 한번 깨달아요.


이번 방문은 올케를 위한 것이었어요. 심장수술 후 아픈 남편을 챙기고 두 아이까지 보살펴야 하는 올케의 노고를 위로해주려고요. 좋은 풍경 보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지내는 동안이라도 일상의 고단함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아이들이 있다 보니 아무래도 완벽한 휴식은 어렵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좋은 의도로 시작했지만, 좋은 결말이 나온 것인지는 장담하기가 어렵네요.



제주의 여름은 무덥습니다.


피서는 조금이나마 더위를 피해서 시원하게 지내고자 함인데요, 제주는 보통사람들의 피서에 적합한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에요. 설령 바람이 분다고 해도, 바닷바람이기 때문에 꽤 끈적거려요. 육지에서의 건조한 땡볕더위가 아니라 습기를 가득 머금은 무더위이고요. 육지의 더위가 계란후라이라면, 제주의 더위는 계란찜이죠. 굳이 이런 시즌에 제주를 찾아서, 듣기보다 제주가 별로라느니, 물가만 비씨고 볼 것도 없다느니 하는 분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바다수영. 이름만 듣기에는, 그리고 사진으로 보기에는 근사하죠. 물론 북적거리는 해운대 바다와 비교하면 한산하고 바다의 모습도 다양해요. 하지만, 바닷물이 닿은 몸은 태양에서 더욱 잘 그을리고 달아올라요. 이글거림이 피부에서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뿐만 아니라 수영 후 바닷물의 끈적거림도 정말 찝찝하죠. 런 사람들에게 제주에서의 피서는 정말 아닌 듯해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피서여행으로 제주를 선호합니다. 방학과 피서 시즌이 맞물려 항공권 가격이 훌쩍 뛰는 것이 이를 방증하죠. 물론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솟아나는 용천수 수영장도 있고, 간혹 숲 속의 계곡이 있기는 하지만, 현지인들이 아닌 이상 제주에서 꿈꾸는 피서 루트는 아닌 듯해요. 거기에 어린아이들까지 있다면, 용천수는 너무 차갑고 바닷물은 씻기기 번거롭고, 계곡은 바위가 많아 위험하고 쉽지 않지요.


산 ·바다 ·계곡의 휴양지나 보양지에서 피서 ·피한하는 것을 의미하는 '바캉스'를 떠올려도 역시 제주는 적합한 곳은 아닌 듯해요. 주의 겨울은 정말 흐리거든요. 1주일에 하루 이틀 볕이 들 정도로요. 그리고 바람의 고장인만큼 어마어마한 바람이 불어요. 기온이 영상이어도 바람이 불면 정말 추워요. 잠깐 사진만 찍을 요량으로 차에서 내리면 엄청난 세기의 바람에 몸이 밀려날 정도이고요, 모래까지 뺨을 후려치지요.


제주의 여름과 겨울이 아름다워 보일 때는 카페 안에서 일 거예요. 여름바다와 겨울바다 모두 너무 아름답거든요. 그곳에서 커피 한잔이면, 내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하죠. 하지만, 카페 밖 현실은 무더위와 칼바람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가 좋은 분들만이 제주를 제대로 만끽할 수 있으실 거예요. 여름은 원래 더운 건데,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마저 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생각할 수 있는 사람만이요. 상대의 단점을 인정하고 그 가운데에서 좋은 점을 찾는다면 그 사람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는 것처럼요. 상대에 대한 기대만 잔뜩 높은 채로 만났다가 단점만 찾고 실망을 하고 시간만 허비했다며 원망하는 것보다는 훨씬 만족스러울 거예요. 제주는 단 한 번도 사람들에게 헛된 기대를 갖게 하지 않았어요. 그 기대는 사람들이 품고 온 것이지요.


동생네 가족뿐 아니라, 남편과 저의 지인들도 많은 기대를 안고 제주를 찾아요. 그것을 알기에 이들을 만족시켜주고자 갖은 애를 쓰지만, 결국 만족도를 결정하는 것은 방문하는 이들의 마음가짐이라는 것을 경험 속에서 깨달아요.


저에게는 제주가 삶의 터전이 아니라, 방학 때 방문하는 남편의 동네여서 좋은 면이 부각되어 느껴지도 모르겠어요. 남편을 출근시키고 돌아오는 아침의 바다마저도 정말 근사하거든요. 박물관과 실내 관광지의 쾌적함 뿐 아니라 제주 숲길의 젖은 숨결, 끈적이는 바닷바람에도 여전히 제주를 사랑하실 분들이 저희를 만나러 오면 좋겠습니다.



제주는 여전히 무더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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