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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아, 이제 그만 돌아가 주라.

글디오: <글로 보는 라디오> #6

by teaterrace



안녕하세요. 남편을 출근시키고 오는 길. 아침인데도 무덥네요. 오늘은 손님들과 함께하는 마지막 날이에요. 하루를 길게 쓰려면 출발 시간을 단축해야죠. 베이커리 카페에서 빵과 음료로 식사를 대신하면 어떨까 해요. 동생과 올케도 대찬성. 근처에 뷰가 좋은 카페로 가기로 해요.


그 멋진 뷰를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 이상하리만큼 넓고 훌륭한 부지에 카페가 있어요. 늘 사람들로 북적거리지만 그만한 뷰가 보장되는 그런 곳이에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6500원인데 아마 풍경 값이 절반은 되는 듯해요. 입장을 하면 여기가 카페인지 시장인지 분간이 안 가요. 한쪽에 베이커리가 놓여있고 트레이에 골라 계산하며 음료를 주문해요. 음료값이 워낙 비싸서 제과류는 평범하게 느껴질 정도예요. 빵 4개에 음료 3잔을 주문했더니 4만 원에 육박하더군요. 그럼 좀 어때요. 근사한 경치와 맛난 음식이 눈앞에 있잖아요.


그런데 말이죠. 더워요. 좀 더운듯한 가게라도 머무르다 보면 적당한 기온으로 여겨지게 마련이라 기다렸는데, 그래도 더워요. 앞서 말했지만 동생네는 더위를 더 타는데 말이죠. 사람들도 북적하고 쾌적한 컨디션도 아니니 슬슬 짜증이 밀려오는 듯해요. 빵은 금세 사라져서 더 주문했는데 더우니까 달달함이 더 극에 달한 듯 느껴지고요. 이런! 카페에서 5만 원을 넘게 써도 만족스럽지 않다니요. 돈은 아깝고 기분도 별로고, 아침부터 뭐가 이런가요.



어디를 갈지를 상의하다 결국 이런 더운 날은 물놀이만 한 게 없다는 결론에 다다라요. 다시 집으로 가서 물놀이 복장으로 갈아입고 야외수영장으로 가기로 해요. 배가 덜 찬 건 컵밥으로 해결하고요. 지난번 경험을 교훈 삼아 이번에는 핫바에 아이들 음료, 커피까지 챙겨서 출발해요.

도착하니 이미 주차장이 꽉 차 있네요. 어린이집에서 단체로 왔나 봐요. 그 사이 초등학교 방학도 했고요. 그런데, 이런 횡재가! 단체손님들이 많아서 오늘은 무료래요. 아침에 돈 쓴 게 아깝더니 여기서 절약이 되네요. 역시 인생사는 새옹지마라니까요.


그때처럼 한산하진 않지만 워터슬라이드가 조금 더 업그레이드가 되어 기대가 돼요. 줄 서서 기다려야 하는 것도 있지만요. 하지만, 오늘도 장애인 단체의 예약으로 깊은 풀은 안된대요. 화, 목으로 장애인 단체가 온다네요. 제주는 특히 장애인들은 위한 배려가 돋보이는 동네예요. 이용에 제한은 생겼지만 오늘은 무료 입장이니 받아들이기로 해요.


워터슬라이드가 훌륭하니 다른 걸 안 해도 재미가 나네요. 처음엔 잘 미끄러지지도 않더니 요령이 생겼어요. 초반에 엉덩이를 탕탕 튀기며 내려가면 속도가 붙고 잘 내려가네요. 속도가 나니 조금 무섭긴 해도 떨어진 물속은 겨우 제 허벅지 높이인걸요. 우리 아이도 처음엔 제 무릎 위에서 탔지만 점점 홀로서기를 하네요. 아마 앞으로 더 이런 경험이 많아질 거예요. 엄마 없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늘어나는 경험이요. 기특하고 기다려지면서도 걱정되고 두렵기도 해요. 이것 참, 엄마란 존재는 왜 이렇게 이중적인 걸까요.



저쪽 바다에는 다이빙을 하는 제주 아이들이 한 무리 보여요. 나면서부터 물개처럼 수영을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어쩐지 저 아이들은 그랬을 것 같아요. 바다로 뛰어드는 모습에 주춤이란 기색은 없어요. 우리 아아도 이곳에서 키우면 저리 될까 잠시 상상해봅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 보여, 보기 좋거든요.



한참 놀더니 하나둘씩 물에서 빠져나오네요. 배가 고파진 거죠. 핫바와 초콜릿 우유를 먹더니 2라운드에 돌입해요. 아이들은 쉬지 않으면 절대 지치지 않는 듯해요. 결국 마감시간까지 노네요. 오늘 하루도 다 갔어요.



남편이 먼저 집에 도착해 있어요. 오늘 저녁엔 해수욕장에서 불꽃놀이를 하거든요. 작년에 본 바로는 꽤 볼만해서 올해도 기대를 가져봅니다. 그런데 시간이 많지 않아요. 정해진 시간은 없는데 개회인사를 하고 곧 시작하는 거라서요. 8시 20분에서 30분 사이가 될 것으로 예측을 하고 저녁 준비를 해요. 남편이 주문한 드라이에이징 소고기와 어제 서문시장에서 사 온 투 플러스 등급의 생고기를 구워요. 야채와 함께 구우니 꽤 맛있네요. 그럼요. 고기인걸요. 게다가 품질 좋은.


서둘러 먹는다고 했는데 벌써 8시가 넘었어요. 남편과 저는 구워 나르느라 제대로 자리도 못 잡고 먹었는데 말이죠. 아쉽지만 얼른 출발해야 할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집 안에서 폭죽 소리를 듣게 될지도 몰라요.


현관을 나섭니다. 그런데! 퍽~! 이건 혹시 폭죽 소리인가요? 큰일이에요. 이제 출발인데 어쩌죠. 힘을 내서 달려봅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차량이 점점 많아져요. 아무래도 정말 아까 그 소리가 폭죽 소리가 맞았나 봐요. 어쩌죠. 일주일 내내 기다렸는데. 아쉬운 마음을 접을 길이 없네요. 게다가 아이들마저 기대하게 했는데 말이죠.


아쉬워하는 아이들은 한숨소리를 들으니 면목이 없어요. 집에 있는 스파클링이라도 흔들게 해줘야 하려나 봐요. 남편과 동생은 집에 있고 올케와 함께 꼬마들을 데리고 마당으로 나가요. 대단한 소리는 안나도 불꽃이 꽤 화려하니 아이들 입이 함박만 해집니다. 다행이에요. 아이가 조심스레 잡고 원을 그려봅니다. 조카가 기다려요. 조카에게도 하나를 건네주고 나니 이번엔 저희 아이 것이 다 타서 꺼졌네요.


다시 하나에 불을 붙이려는데 갑작스레 벼락같은 울음이 터집니다. 올케가 서둘러 조카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갑니다. 그때까지도 무슨 영문인지 몰라 짐을 챙겨 저도 따라 들어가요. 집에 있던 남편과 동생도 영문도 모른 채 놀라 있네요. 아마 조카가 다 꺼진 스파클링의 달궈진 부분을 손으로 잡은 모양이에요.


우선 찬물에 헹궈냈는데도 울음을 그치질 않아요. 베이킹소다를 섞은 물에 손을 담그면 괜찮아진다고 해서 대야에 베이킹소다도 풀어요. 그럼에도 울고불고 난리예요. 점점 영혼이 안드로메다로 가는 기분이에요.


올케는 아무래도 화상연고를 발라야겠다고 근처 약국에 전화를 걸어요. 9시가 넘은 시간인데 제주는 그 시간에 주로 약국 문을 닫거든요.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10시까지 여는 약국이 있어 차로 갑니다. 붕대와 연고, 반창고 등을 사서 집에 도착했는데 조카는 아직도 악을 쓰고 울고 있어요. 1시간 넘게 우는 아이는 정말이지, 처음이에요.


둘째를 출산하느라 엄마 집에 큰 조카를 맡겼을 때 친정엄마가 혀를 내둘렀던 이유를 이제 알겠어요. 울음 끝이 짧고 잘 달래면 설득이 되는 우리 아이와는 차원이 다른 아이였던 거예요. 칭얼거림 정도가 아니라 악을 쓰고 우는데, 그 소리를 1시간 이상 들었더니 슬슬 짜증이 나려고 해요.


"계속 울면 몸이 더 더워져서 손이 더 아파. 그만 울자."


고모가 할 수 있는 정도는 이 정도이니까요. 저라면 그쯤 해서 아이에게 단호하게 그만 울기를 이야기했을 거예요. 평소에도 어느 정도 달래다가 소용이 없으면 그냥 내버려 두거든요. 스스로 진정하는 것도 알아야지요. 하지만 양육방식은 모두 다르니까요. 동생 부부는 한숨만 쉬며 아이를 달래네요. 정답은 모르겠지만 인내심이 대단해요.


옆집 할머니께도 미안해져요. 밤늦게 이렇게 큰소리로 1시간 넘게 우는 건 정말 민폐잖아요. 남편은 슬그머니 일어나 창문을 닫네요. 남편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해요. 평소 엄살이 심한 아이라 사소한 것에도 벼락같이 울어서 오늘 밤에도 자다가 울까 봐 걱정이에요. 남편에게도 눈치가 보이기 시작하고요.


아직 물집이 잡히지 않았고 어디가 데인 것인지 육안으로 확인이 안 되는 상태예요. 눈치 없이 우리 아이가 화상에 대한 상식을 또박또박 읊어요. 냉동실에서 얼음팩을 넣었다 뺐다 하며 동생에게 대줘도 그칠 기색이 없으니 안심시켜 주려던 모양이에요.


"1도 화상은 아직 물집이 없는 가벼운 상태의 화상이래요. 그러니까 J는 1도 화상 아닐까요?"


그러자 올케는 "겸아, J에게는 가볍지 않아"라고 응수를 하네요. 제 자식이 아픈데 '가벼운' 1도라고 하니 저라도 짜증이 났을 법해요. 그렇지만 앞서 아이가 걱정하며 했던 행동들이 있는데 저는 조금 서운하더라고요.


게다가 이제 그만 좀 울면 좋겠는데. 하루치의 스트레스가 지금 다 쌓이는 듯한 기분이에요. 인정머리가 없나요? 저는 듣기 싫은 소음에 인내심이 약한 가봐요.


이제 그만 가버리면 좋겠다.


처음에는 걱정이 되고 안쓰러웠지만 나중에는 이 생각만 가득합니다. 식구가 아닌 사람들과 오랜 시간을 보내는 일이 쉬은 것은 아닙니다만, 이 순간 드는 생각은 '애 봐준 공은 없다'는 어른들 말씀이 틀림이 없구나, 라는 생각이네요. 아이가 아프게 되니 그동안의 고마움이고 뭐고 다 짜증스럽게 반응하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둘째 꼬마가 칭얼거리는 것에도 그만하라는 식이니까요.


저도 점점 표정관리가 안요. 달랠 기운도 없고 그럴 기분도 아니에요. 둘째 꼬마라도 우선 씻겨야겠어요. 계속 지켜보다가는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아요.


슬슬 울음소리가 잦아드니 이제 연고를 바르고 드레싱을 해요. 그리고 안아주니 금세 잠이 듭니다. 1시간을 넘게 큰소리로 울었으니 지칠 만도 하지요. 어른이라도 그럴걸요. 미루어 추측컨데 아프기도 했지만 졸리기도 하고 물놀이에 지치기도 해서 그렇게 울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불꽃놀이가 악몽의 서막이었던 거 같아."

"고생했어. 나도 지친다. 이제 얼른 가면 좋겠다."


아이는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잤어요. 대단한 화상이라면 욱신거려서 자다가 깼을 법도 한데 말이죠. 이래서 고모는 어쩔 수 없나 봐요. 이런 전래동요도 있잖아요.


"고모네 집에 갔더니, 암탉 수탉 잡아서 기름에 둥둥 뜨는데 나 한 숟갈 안 주고 고모 혼자 먹더래. 우리 집에 와봐라. 암탉 수탉 안 주지!"


불꽃놀이만 제대로 봤더라면 아름다운 마무리가 되었을 테지만 어찌 인생이 뜻대로만 되나요.


아침에 카페에서 비싼 돈을 썼어도 만족스럽지 못하고 낮에 야외수영장에서는 뜻하지 않게 무료입장을 해서 좋았다가 맛있고 좋은 저녁을 했지만 마무리가 좋지 않으니 별로인 하루가 되어버리는 걸요.


힘들어요. 지쳐요. 이제 꼬마 손님들은 당분간 금지예요. 제주도 집에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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