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아침부터 이 시간까지 쉬지 않고 떠들어요. 하루 종일 아이와 붙어지내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와 매일 지낼 때는 당연한 일과였는데 복직을 하고 퇴근 후에만 가끔씩 아이와 만나니 하루 종일 아이와만 지내는 것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네요.
특히 우리 아이는 잠이 들 때까지 입을 쉬지 않아요. 그 말에 대답을 해주다 보면 저도 입을 쉬지 않지요. 입에서 정말이지 단내가 나요. 몸보다 뇌가 더 고단한 날들입니다.
"겸아, 엄마 음악 한 곡만 들으면 안 될까?"
"그래요!"
흔쾌히 대답해주지만 한 곡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말을 걸어옵니다.
"엄마, 나무늘보는 하루에 18시간을 잔대요..... 블라블라블라"
한 곡을 온전히 집중해서 듣기도 힘들다니 정말 육아 감옥이네요.
"겸아, 있잖아. 엄마 이 음악 한 곡 끝날 때까지만 말을 걸지 말아 줄래?"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별로 신뢰가 가지 않는 것은 왜일까요. 다시 음악에 집중을 해봅니다.
"엄마, 근데 이 노래는 얼마나 길어요?"
"한 3분?"
벌써 몇 초 까먹었습니다. 이거 무를 수도 없고 다시 음악에 귀를 기울여봅니다. 이번에는 꽤 오래 입을 다물고 있네요. 자기도 책을 보겠다고 곁에 누워서는 한참을 들여다봅니다. 아, 이 음악 다행히 꽤 기네요. 간주가 근사합니다.
한곡이 끝나고 다음 곡이 시작하는데 아이도 그새 자기 책에 집중을 했는지 별다른 반응이 없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잠시지만 정말 굉장한 휴식입니다.
두 남녀가 헤어졌네요. 내가 먼저 고한 이별이지만, 나도 이렇게 아픈데 너는 얼마나 아플까 라는 가사가 절절하네요.어떤 사연이 있기에 사랑하는데도 헤어졌을까요. 울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엄마, 똥똥!"
현실은 이리도 참혹합니다.
아이 변기를 챙겨주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우리 아이는 화장실에 머무는 것을 꽤 좋아하거든요.
"이제 똥꼬 닦아줄까?"
"아니요. 응까는 다 했는데 화장실에 조금 더 있고 싶어요. 화장실은 이 생각 저 생각할 수 있고, 편해요. 엄마도 그랬어요?"
늘 이래 왔거든요. 오늘도 화장실에 있는 동안은 잠시 자유일 겁니다.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데 아이가 저를 부릅니다. 오늘은 똥 타임도 너무 짧네요. 가혹한 하루입니다.
차라리 식사 준비를 하는 게 쉬울 것 같아요. '차라리'라고 말했지만, 사실 저는 밥 챙겨 먹이는 것도 저는 너무 어려워요. 신혼 때는 매일 다른 음식으로 남편 저녁을 챙겨주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입덧과 동시에 음식과는 영원히 이별을 고한 듯합니다. 아이와 둘이 있을 때 아침은 주로 스프나 누룽지 등으로 간단히 주는 게 고작입니다. 가끔씩 미안한 마음이 들어 한 가지 반찬을 할 때도 있어요. 오늘은 계란찜이에요.
계란을 풀고요, 마른 표고, 다시마, 그리고 빻은 마늘을 넣습니다. 물을 붓고, 소금 간을 하고요, 참기름을 듬뿍 부어주면 끝입니다. 랩을 덮어 전자렌지에 5분 돌려주면 정성 들인 계란찜보다 훨씬 맛있는 계란찜이 탄생합니다. 시어머니표 계란찜 비법이에요. 정말 정말 강추합니다.
제주 올 때 엄마가 챙겨주신 밑반찬도 꺼내놓습니다. 멸치볶음, 건새우볶음, 진미채무침. 싸주실 때는 비행기에서 냄새 풍기면 어떻게 하냐고 푸념해놓고 지금은 아주 귀한 집 반찬이라며 아껴먹고 있어요. 냉동실에 넣어둔 조미김도 꺼내어 잘라놓고요. 금세 눅눅해지는 걸 보니 역시 제주의 여름답네요. 배가 고픈지 아이도 뚝뚝 한 그릇 비워냅니다. 이렇게 또 한 끼를 해치웠어요.
이제는 뭘 하죠. 애니메이션 한 편을 고릅니다. 아이가 집중을 하기 시작해요. 저의 영혼은 저 멀리 아득해집니다.
"엄마! 방금 코 골았어요."
내가? 그럴 리가 없는데. 엄마는 우아한 여자란 말이야. 요새 종종 제 코 고는 소리 목격담을 듣게 됩니다. 소리에 예민한 사람이라 곁에서 조금이라도 코를 골면 잠들지 못하는데 제가 코를 골다니요. 나이가 들었나 봅니다. 서글퍼지지만 졸다가 깼기 때문에 다시 더 잠을 청해봅니다.
영화가 끝이 났어요. 아이도 잠이 들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빼꼼 들여다봤는데 틀렸네요. 아이는 또다시 이제 뭐하고 놀 거냐고 제게 물어옵니다. 낮잠을 자야죠. 어린이가 낮잠 안 자고 뭐하나요.
"엄마, '우리 겸이들'은 졸릴 때 자면 안 되고 짜증 날 때 자야 잠이 빨리 들어요."
괴변을 늘어놓는 것을 보니 자기 싫다는 엄포입니다. 엄마가 안아준다며 곁에 뉘이고는 손으로 눈을 살짝 덮어줍니다.
"엄마, 이러면 진짜 잠든단 말이에... 요."
그래, 진짜 잠들라고 그러는 거란다. 1분이 지났을까요. 아이의 움직임이 거의 없어집니다. 잠이 들었어요. 올레! 이제 저의 자유시간입니다. 그런데 덩달아 눈이 감깁니다. 어쩌지요. 하늘은 파랗고 나뭇가지 사이로 바람도 지나는데 이렇게 잠들 수는 없잖아요. 아, 이런. 이러면 안 되는데...
문 밖에 한 걸음도 하지 않은 하루가 이렇게 지나가고 있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1시간 반이 훌쩍 지나있네요. 현관문을 열어봅니다. 어라? 이게 뭘까요? 컵을 이용해서 우선 집으로 데려와봅니다.
"엄마, 이거 점박이 하늘소예요."
곤충에 관한 한 아이의 지식을 넘어설 수 없는 어미라 믿고 검색을 해봅니다. 아이의 말이 맞네요. 우선 장수하늘소는 아니니까 우리의 전리품(?)을 아빠에게 자랑을 하기 위해 그때까지만 임시보호를 하기로 했어요. 우선 간이로 집을 만들어 톱밥을 넣어주고, 아이가 아끼는 곰젤리와 거금 주고 사놓은 푸딩 젤리를 넣어줍니다. 하늘소는 놀랐는지 벽에 붙어만 있어요.
남편은 오늘 워크숍이라 늦게 옵니다. 오늘은 분리수거 쓰레기를 버리는 것도 저의 차지가 될 듯합니다. 심심한 하루였는데 하늘소 하나로 오늘의 이벤트가 생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