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이라는 말이 주는 기분이 있습니다. 미뤄두었던 일들을 다시 꺼내 할 수 있게도 하고, 망설이고 있던 것들을 실행에 옮기게도 하는 충분한 핑계가 되어주지요. 새롭게 시작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날입니다.
오늘 저는 드디어 제 인생에서 꽤 큰 결심을 했어요. 운동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거든요. 실은 제주에 오기 전에 필라테스를 시작했어요. 가끔씩 배우던 요가에서 소도구 필라테스를 해보기는 했지만, 기구를 이용한 필라테스는 처음이거든요. 금액도 만만찮았지만, 운동할 시간을 내는 일이 저에게는 더 어려웠어요. 또다시 친정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겨우 시작은 했는데 이게 만만치 않은 운동이더라고요.
운동을 할 때 힘든 것은 어떻게든 참을 수 있는데 운동을 마치고 와서 잠자리에 들 때면 이곳저곳 쑤시지 않은 곳이 없었어요. 수면자세를 고치고 자려다가 발바닥이 너무 쑤셔 잠에서 깨어나는 날들이 계속되었지요. 거기에 감기 몸살까지 겹치니 운동을 계속 하기가 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몸살을 핑계로 운동 스케줄을 취소하고 제주로 떠날 날만 손꼽아 기다렸답니다. 회피하고 싶었던 거예요.
제주에서 별다른 계획이 있었냐고요? 처음에는 기구 필라테스를 이어갈 생각이었지요. 하지만, 육지에서 몸살로 역풍을 맞고 나니 좀처럼 엄두가 나질 않더라고요. 무엇보다 오자마자 5일간의 손님치레로 계획이 엇갈리기도 했고요. 본래는 손님이 오더라도 저녁 운동은 꼭 가야지, 했는데 막상 오고 나니 아침 9시에 시작해서 밤 11시까지 한시도 쉬지 못했는데 해도 해도 일정이 끝나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차일피일 미뤄지다 보니 어느새 제주에 온 지 열흘이 훌쩍 흘러버렸네요.
개학을 하면 늘어진 몸매를 다잡고 야심 차게 등장하리라 다짐했었는데 아무것도 변한 게 없어요. 그래서 '1일'을 기회삼아 무언가 시작해보려고요. 소도구 필라테스나 요가를 할까 헬스를 해볼까 고민이었지만, 우선 내게 필요한 것은 '운동을 버텨낼 체력'이더라고요. 그래서 PT를 하기로 마음먹었답니다.
헬스의 헬은 지옥(hell)이라고 알고 있는 완전 초보가 시작부터 PT라니 말리고 싶은 분들이 많은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남편의 말로는 제대로 배우고 운동해야 혼자 운동에서도 잘 적응할 수 있다고 하니 그렇게 해보기로 한 거지요. 마침 PT이용권과 헬스 이용권을 저렴하게 양도받을 기회가 오기도 했고요. 일단 질러놓으면 어떻게든 수습은 될 테니까 돈이 아까워서라도 운동을 하겠지요. 그래서 지르러 외출을 했습니다.
다니려는 휘트니스센터는 건물의 7,8층에 있는데 우선 1층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한숨 돌려봅니다. 그래, 할 수 있어. 우선 시작만이라도 해보자. 다짐을 하고 엘리베이터를 탑니다. 얼마 전 상담을 받았던 것이 있어서 아주 간략하게 입회 신청이 되었어요. 이제 나는 운동을 해야 하는 몸이 된 거예요. 신기하게도 막상 신청을 하고 나니 제 자신이 너무 자랑스러웠어요.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 것인가 봐요.
내일부터 운동을 시작합니다. 기구를 사용하는 방법도 모르는데 트레이너 선생님이 잘 가르쳐 주시겠지요? 우선은 휴게공간에서 아이에게 폰을 쥐어주고 저는 운동을 하려고 해요. 플랜 B는 저녁시간에 남편에게 맡기는 거죠. 남편은 어느 쪽을 해도 자기는 상관없다며 이렇게 정말 시작할 줄 몰랐다며 저를 대견해합니다. 헬스는 남자보다 여자에게 꼭 필요한 운동이라고 늘 말해왔거든요.
내일 밤 또다시 몸살로 괴로워할지도 모르겠어요. 두렵기도 하고 기대도 되고 그래요.
실은 필라테스를 시작하려고 요가복을 얼마나 사들였는지 몰라요. 매트에 매트 타월, 그리고 토삭스까지 풀세트로 샀고요, 괜찮은 탑을 사고 나면 또 더 괜찮은 탑이 있어 색깔별로 샀어요. 그러고 딱 세 번 하고 제주 핑계로 날아왔지요. '운동은 템빨'이라며 자위하지만 그래도 민망하기는 해요. 그런데 말이죠. 남편 말이 PT를 받으려면 트레이닝용 운동화가 또 있어야 한다네요. 이렇게 아이템만 사고 운동은 지속도 못하는 미련퉁이가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태산이에요. 그래도 첫 PT인데 신발은 있어야지요.
저녁식사 후 칠성로에 갑니다. 운동화 하나 사는데 차로 20분을 나가야 해요. 이럴 땐 제주가 참 불편합니다. 백화점이 없다는 사실도 혹시 아세요? 저는 농담인 줄 알았는데, 제주에 와보니 백화점이라곤 인삼 백화점이 전부이더라고요. 운동화도 로켓 배송이면 다음날 아침 떡하니 가져다 놓는 지역에 살다가 제주에 있으려니 답답한 면이 있기는 해요. 원하는 날짜에 받으려면 미리미리 준비를 해야 하는데 계획적 삶이 그리 쉬운 게 아니잖아요? 거의 오늘처럼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살곤 해요.
칠성로는요, 제주에서 그나마 쇼핑을 할 수 있는 명동 같은 곳이에요. 참고로 명동의류도 있어요. 하하. 웃기죠? 그런데, 주차가 거의 불가능해요. 공영주차장도 꽉 차 있어요. 구 시가지라서 없을 건 없이 다 있지만 주차 때문에 자주 찾긴 힘들어요. 그래도 아쉬운 놈이 굽신거려야죠.
TV나 화보에서 모델들이 운동복을 입고 운동화를 신고 운동을 할 때 그렇게 멋져 보이잖아요. 저도 그걸 기대하고 매장에 들어섰는데, 트레이닝화는 왜 이렇게 투박한 건가요? 하늘하늘한 몸매의 여성이 신으면 운동화도 하늘하늘해 보이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꿈꾸던 운동화가 아니네요. 매장 직원이 어이가 없는 듯 웃음을 터뜨립니다. 운동할 땐 편한 것이 제일 중요하다면서요. 전문가의 말을 믿어보기로 합니다.
10% 할인인데 2족을 구매하면 20% 할인을 해준대요. 남편도 헬스장에 다니는데 인심 한 번 써볼까 해요. 남편은 물욕이 없는 편인데 신발 욕심은 많아서 사실 운동화가 많아요. 그래서 운동 시작 때도 들은 척 안 했는데 추가 할인도 되고 제 것만 사기 미안해서 2개 사기로 합니다.
"우와, 정말 가볍고 좋네!"
기분 좋은 남편의 외침을 들으니 괜스레 미안해지네요. 제가 운동을 위해 들인 돈이 이미 얼마인지. 문제는 아직 소진해야 할 세션이 너무 많이 남았다는 것이에요.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습니다. 내일 12시가 되면 내가 죽든 트레이너 선생님이 죽든 하나는 혀를 내두르겠지요. 사실 두렵기도 합니다.
그 와중에 기대되는 것이 있는데 센터 뷰에요. 글쎄 바다가 한눈에 다 보이는 거 있죠. 상상만 해도 근사하지 않나요? 러닝머신 앞으로 펼쳐진 바다 뷰라니. 럭셔리해진 것 같아요. 제 삶도요.
운동화를 사러 갈 때까지만 해도 깨어있던 아이가 깊이 잠이 들었네요. 이틀 동안 방콕만 하다가 바깥활동을 하니 좀 고된가 봐요. 오늘은 PT를 신청하고, 제주박물관에 갔거든요. 어린이 박물관을 들르고 본 전시관을 둘러봤는데 생각보다 지루해하지 않고 잘 따라왔어요.
이틀간 더위를 핑계로 집안에만 머물렀더니 삶이 우울하게 여겨졌는데 가까운 곳이라도 나오니 숨통이 트입니다. 그리고 막상 나와보면 그렇게 못 참을 정도의 더위는 아닌 거 같아요. 연일 폭염특보가 내려져도 그늘에는 살랑바람이 불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