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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전망의 러닝머신을 걸을 수 있다면[생애 첫 PT]

글디오: <글로 보는 라디오> #13

by teaterrace



여러분은 언제 가장 긴장이 되시나요?


시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칠 때? 면접장에서 내 번호가 가까워 올 때? 아니면 소개팅 상대 처음 만날 때? 의 프레젠테이션 순서가 돌아올 때?


생활 속에서 긴장을 느낄 일은 정말 많네요. 저도 오늘 거사를 앞두고 긴장하고 있어요. <글디오>를 계속 읽어주신 분들은 짐작을 하시겠지요?


맞아요. 오늘은 제가 생애 첫 PT를 받는 날이에요. 건강검진을 하면 다른 부분은 모두 정상인데 늘 운동부족이라는 진단을 받는 사람이에요, 제가. 그래서 제대로 운동 좀 해보고자 PT에 도전을 해요. 솔직히 살 좀 빠지면 좋겠다는 바람이 가장 크지만 1차 목표는 체력증진이에요.


12시가 되기 전부터 자꾸 시계만 봐요. 밥도 챙겨 먹고 빨래를 돌렸는데 아직도 시간이 남아요. 긴장이 되거든요.


참! 트레이너 선생님은 여성분이세요. 이왕이면 멋있는 남자 선생님이기를 살짝 바랬는데 아쉬워요. 남편은 다행이래요. 아무래도 여자가 여자 몸을 더 잘 아니까 너무 강하지 않게 해 줄 거 같아서라나요. 하지만 저의 미천한 경험으로 미루어 봤을 때 여자 강사님들이 더 타이트했어요. "옆구리 불태워야죠? 한 세트 더!" 이러면서요.



드디어 시간이 가까워왔어요. 근처에 주차를 하고 7층으로 향합니다. 안내데스크에서 라커를 배정받고 옷을 갈아입어요. 그리고 휴게룸에 아이를 앉히고 영화를 하나 틀어줘요. 헤드셋을 씌우고요. "급한 일 있으면 엄마한테로 와"라고 당부를 해요.


단발머리에 미소가 예쁜 선생님이네요. 다행에요. 주눅이 덜 들잖아요. 우선 인바디로 몸상태를 체크합니다. 알고 있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아요. 근육량은 늘려야 하고 체지방은 줄여야 하는 상태예요. 허리와 발목이 좋지 않음을 고지하고 어깨도 스트레칭하면 불편하다고 말씀드려요. 말하다 보니 성한 곳은 어디인가 스스로 생각하게 돼요.


여기저기 두리번거립니다. 여름이라 그런지 PT를 받는 사람이 의외로 많네요. 괜히 의식하게 되는군요. 힐끔힐끔 거리며 저도 운동을 시작합니다. 끄럽게도 제 몸이 후들후들 떨고 있네요. 유연성은 좋은 편이라 요가할 때는 칭찬을 받았는데 스타일 구겼어요. 뉴페이스가 등장했더니 그들도 힐끔거려요. 제 기분일지도 몰라요.


스쿼트부터 시작을 해요.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리래요. 제 어깨가 넓은 가봐요. 아무리 봐도 어깨너비로는 택도 없어요. 발끝은 약간 바깥을 향하게 놓고 엉덩이를 뒤로 빼며 앉으래요. 사타구니에 손가락이 쏙 감춰질 만큼 앉으면 완성. 트레이너 선생님은 칭찬을 참 잘해줘요.


이번엔 1kg 덤벨을 양손에 들고 만세를 하며 일어서는 스쿼트에요. 직은 할 만해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시작합니다. 이제는 공을 들고 내리꽂으며 다리를 드는 동작이에요. 배에 힘을 주고 하라는데 배에 신경을 쓰면 다리가 제멋대로 굴고 다리를 신경 쓰면 배에 긴장이 풀려요. 몸통에 다리가 제대로 붙어있나 몰라요. 완전히 힘이 풀려버렸거든요. 꽃게처럼 옆으로 걷기를 하려다 포기하고 짐볼 위에서 윗몸일으키기를 해요. 지탱하는 다리에 힘이 풀려 배보다 다리가 떨려요. 수치스럽네요.


어깨 체크를 하신 후 베드 위에 엎드리라 하시네요. 등을 풀어주신대요. 신음소리가 절로 나요. 아프기도 하면서 시원한 그 느낌 아시죠? 운동 안 해도 마사지만으로 본전 건진 기분이에요.


잘 견딘 자신이 뿌듯합니다. 플랜 B로 준비했던 것을 트레이너 선생님은 모두 쓰라고 하시네요. 7시까지는 바다가 보인다면서요. 낮엔 PT, 저녁엔 유산소 셀프 트레이닝. 저는 태릉인이 아닌걸요 선생님. 하루 지나고 제 몸이 성하면 다시 생각해볼게요.


바다 전망에 운동할 맛 난다!는 커녕 죽을 뻔 했다.



잘 기다린 아이가 배가 고프대요. 저도요. 긴장이 돼서 제대로 식사를 못했거든요. 1층에 내려오니 또 롯데리아가 보여요. 오늘도 가자해요. 저는 뭐든 좋아요. 운동 안 하고 먹는 것보단 운동하고 먹으면 아무래도 제 몸에게 덜 미안하니까요.



남편에게 전화를 겁니다.


"나 살아 있어!"


전화 너머에 남편의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남편을 데리러 갈 시간이에요. 잠시 짬을 내어 바다를 봅니다. 아직은 해가 눈이 부셔요. 열기도 여전하고요.



저녁을 준비합니다. 가볍게 알록달록 채소로요. 운동을 했잖아요. 그런데 채소 사이사이 고기 같은 것이 보여요. 오겹살이네요. 의식의 흐름대로 오겹살을 입에 넣어요. 운동은 어김없이 식욕을 불러오네요. 저만 그런가요?



낮에 집에 오는 길에 매니큐어를 샀어요. 결혼 전에는 늘 손톱 발톱 정갈하게 다듬고 컬러링도 했는데 결혼하고 바로 임신을 하니 매니큐어는 꿈도 못 꿨지요. 멀어진 꿈은 어느새 남의 일이 되어버렸지요. 옷을 입고 화장을 하는 것마저 겨우 해내는 걸요.


제주에선 맨발로 다니는 일이 많아 맨발톱이 미워 보여서 오랜만에 매니큐어를 사보고 싶더라고요. 아이가 골랐지요. 습관적으로 손발톱을 물어뜯는 아이에게도 잠시 발라줄까 해요. 아이가 흥미를 보이네요. 그러더니 제 아빠에게 발라준대요. 자신은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다더니 어느새 아이에게 발톱을 내어줘요.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던가요. 똥꼬까지 러블리하다는 걸요.


부전자전 컬러링 발톱


금요일 저녁이에요.


우리 가족에게 가장 반가운. 여느 가정에도 그러할. 육지에서는 아빠 꼭 '오(5)밤'중에 와야 하냐고 조금 더 일찍 '일(1)밤'에 올 수는 없냐던 아이도 이런 사소한 일상의 저녁이 너무 행복한가 봐요.


아빠는 아들의 영원한 놀이터니까요.

모두 모두 사소한 금요일 밤 되세요.


아빠는 아들의 영원한 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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