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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요, 애월로.

글디오: <글로 보는 라디오> #15

by teaterrace



안녕하세요. 여기는 제주 애월입니다.


어제 말씀 드린대로 애월에 왔어요. 애월은 제주에 와보지 않으신 분들도 잘 아는 동네지요? 이효리 씨가 신혼집을 이곳 애월읍 소길리에 잡으면서 '소길댁'이라는 닉네임도 얻고 자연스레 애월까지 유명해졌지요. <효리네 민박> 이후로 다른 동네로 이사하셨다는데 효리 씨가 없어도 애월은 이미 많은 맛집과 카페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동네인 듯해요.


효리 씨와 무관하게 제가 이 동네에 애정을 갖는 이유는 따로 있어요. 바로 한달살기를 했던 곳이거든요. 그래서 애월에 올 때마다 남편에게 '고향에 온 것 같아'라고 말해요. 그만큼 익숙하고, 편안하고, 정이 많이 들었거든요. 기간으로 따지자면 지금 남편의 집이 있는 곳에서 훨씬 오래 살았지만 이곳 애월을 우리 동네보다 더 잘 아는 것 같아요. 매일 누비고 다닌 저의 '첫' 제주살이 터전이든요.


눈만 돌리면 엄마의 젖가슴 같은 부드러운 곡선의 오름이 곳곳에 있고요. 지금 방금 분출을 멈춘 듯 기엄하게 솟아오른 까만 바위 품은 푸른 바다가 있어요. 파노라마 같은 바다를 따라 길이 난 해안도로도 말해 뭐해요.


그뿐이게요? 바로 옆에 협재랑 한경이 있어서 비양도를 마주한 노을, 스노클링 성지 판포, 월령 선인장 군락지, 반딧불이 마을 청수리까지 기가 막혀요.


그런데요. 너무 변했어요. 줄줄이 음식점과 커피숍이 연달아 있어 그 집만의 유니크함이 사라졌어요. 스벅 DT만 해도 그래요.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바다가 숨이 막혔거든요? 지금은 바글바글한 인파로 숨이 막혀요. 오늘도 시그니처 음료라도 마실까 해서 잠깐 들어갔다가 혀를 내두르고 나왔어요. 이제는 다시 안 갈 거 같아요.



애월 해안가 카레집을 가요. 저희 부부는 선택 장애가 매우 심하거든요. 그래서 늘 아이한테 뭐가 먹고 싶은지 물어요. 아이는 고민 없이 말해줘서 다행이에요. 우리 둘 사이에 어쩜 이런 아이가 나올 수 있죠?


카레집은 2층에 있어요. 들어가 보니 내부가 매우 좁네요. 심지어 기다려야 한다는. 지금 배가 고픈데 다른 곳에 가자니 돌아가야 하고, 다른 메뉴를 먹자니 카레라고 정하고 나서는 카레만 떠올라요. 그냥 기다려보기로 해요.


창가석에 자리가 나서 셋이 나란히 앉아요. 전깃줄이 시야를 방해하지만 그것도 운치 있게 느껴져요. 바다와 어우러져 있으니까요.


참! 저는 애월 협재 쪽 바다를 좋아해요. 제주바다는 모두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지만 특히 애월 협재 바다의 웅장함이 좋아요. 쪽빛 물감을 타서 풀어놓은 수면에 새하얀 파도 거품이 매우 두껍게 올라가 있어요. 가까이 가면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내 다리를 쑥 잡아당길 것 같은 위엄이 넘치는 곳이 애월 협재 바다예요.



감상을 하는 사이, 카레가 나왔어요. 하나는 새우크림카레, 또 하나는 키마카레래요. 아이를 데리고 다니니 둘 중 하나는 맵지 않은 것을 먹어야 해요. 돈카츠도 토핑으로 올렸어요. 토핑이라 사소할 줄 알았는데 큼직한 데다 제대로 튀겨냈네요.



키마카레는 청양고추를 넣은 매운 카레라는데 얼큰하니 좋아요. 장난 삼아 아이에게 먹어보라 했더니 물을 들이키고 난리가 났어요. 크크크.


숙소 입실 가능 시간이 되었네요. 우선 짐을 옮겨 놓기로 해요. 육지 사람들은 제주도에 오면 바다가 보이는 숙소를 좋아하지만 제주 사람들은 한라산 중턱쯤에 있는 중산간을 선호해요. 제주의 습한 기후나 태풍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쾌적하고 안전한 곳이기 때문이래요. 오늘 숙소도 중산간에 있는데 이 무더위에도 밤에는 창문을 열어놓고 자면 시원하다네요. 한라산 영실이나 천백고지 같은 곳도 도민의 피서처라고 하더니 이 동네도 비슷한가 봐요.


숙소는 복층구조예요. 아이는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 바빠요. 위층은 다락방처럼 되어있어 빨간 머리 앤의 방처럼 하늘을 볼 수 있는 쪽창도 있어요. 정말 로맨틱하지 않나요?



남편이 잠든 사이 낼모레 오픈(?)한다는 절 구경을 해요. 말씀을 들어보니 건물을 올리려고 땅을 파다 보니 석불이 나왔대요. 석불이 나온 그 위치의 옥상에 석불을 모셔놓고 점안식을 하신다니 대단한 불심이죠? 절은 원래 옛날부터 있는 건 줄 알았는데 교회처럼 개척도 한다는 게 신기했어요.


이 위치에서 보면 석불의 옆모습이 보인다고. 어떠신가요?


이제 남편을 깨워 나가볼까 해요. 여행 왔으니 그래도 나가야죠. 1100고지는 설경으로 유명하지만 여름에도 시원하다기에 그곳으로 정했어요.


전망대에서 보이는 한라산의 구름이 근사해요. 바람이 상쾌하고도 시원한 걸요. 여름에 이렇게 서늘한 바람이 웬 말인가요.



이곳은 인가가 아니라 저녁 시간이 되면 인적이 뜸해져요. 서둘러 내려가야겠어요. 저녁을 먹으러 찾아간 집이 두 곳 모두 쉬네요. 이럴 땐 애월 살 때의 정보력을 발휘해야죠. 바로 고깃집이에요. 정육식당인데 육질 좋고 가격도 좋아요. 차림비도 5천 원에 된장찌개까지 줘요. 괜찮죠?


여기 갈빗살이 정말 맛있거든요. 육지에서는 갈빗살이라고 하면 소고기를 떠올리지만 기에는 돼지 갈빗살도 있어요. 구하기 어려우니 남편도 애월 쪽 오면 이 집을 언급하곤 해요. 아닌 게 아니라 육지 정육점에서 돼지 갈빗살을 달라고 하면 없다고 하거나 갈빗대에서 발라내 주더라고요.



참! 제주에 오셔서 돼지고기를 드시면 꼭 멜젓을 달라고 하세요. 불판에 함께 올려 끓인 멜젓에 찍어먹으면 고기 맛이 더 깊어지거든요. 양념갈비도 정말 맛나서 아이가 끊임없이 받아먹네요. 추에 파절임, 구운 마늘과 버섯, 그리고 쌈장까지 얹어 싸 먹으니 '흐음~' 소리가 절로 나요.



맥주까지 마셨으니 운전은 저의 몫이 되었어요. 이럴 때라도 대신해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제 운전은 제주에서 늘었어요. 한달살기하며 사방을 누비고 다니면서요. 그 전엔 동네 운전 정도 수준이었죠. 그렇지만, 제주의 밤 운전은 결코 쉽지 않아요. 가로등 없는 곳이라 덜덜 떨며 운전하는데, 지리에 익숙한 그곳 사람들은 쌩쌩 달리거든요.


드디어 숙소예요. 중산간은 정말 캄캄하네요. 이제 씻고 쉬어야겠어요.


잠깐! 그전에 여러분께 퀴즈 하나 낼게요. 이게 뭘까~요?



아까 고깃집에서 저희 아이가 정말 맛있게 먹었던 거예요. 저희 부부가 깜짝 놀랐죠. 제일 먼저 맞추신 분께 작은 제주 굿즈 하나 선물할게요. 호호.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저는 잠자리가 바뀌어 잘 잘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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