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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terrace Aug 24. 2019

떠날 때가 되어서야 깨닫는 것들.

글디오: <글로 보는 라디오> #24

 


잠을 잘못 잔 모양이에요. 어깨랑 등, 팔도 아파요. 나이가 든다는 건 잠의 질이 달라지는 것과 그로인해 자면서 아픈 곳이 생긴다는 것인 것 같아요. 이러면서 점점 엄마도 할머니도 이해를 하게 돼요. 그 변화에 귀 기울이지 못한 제가 한탄스럽고요. 잠이 잘 안와, 새벽에 일찍 눈이 떠져, 등이 아파, 란 말씀에 원래 나이 듦이란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제 자신이요. 아이가 아프다고 하면 그렇게 신경 쓰이고 걱정을 하면서요. 자식 키워놔야 소용없죠?


"잠을 잘못 잤나 봐. 등이 아파."


다행히 남편은 아프다는 말에 저보다 기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에요. 얼른 등을 주물러줍니다.


"아니 아니. 위로 위로. 응응 거기. 아아아. 아 션하다. 아픈데도 시원해."


아직 아이 키울 일이 구만리인데 이렇게 몸이 쑤시니 큰일이에요. 결혼을 늦게 하고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은 것이 이렇게 화살로 돌아올 줄이야. 괜한 신세한탄을 해봅니다. '결혼 전에는 체력만큼은 자신했는데 아이 낳고 나니 완전 수제비 반죽 같은 몸이 되었네. 살 때문이 아니라도 얼른 운동을 시작했어야 하는 건데. 어제 운동은 할 만했었지. 체력이 늘고 있나?' 의식의 흐름대로 가다 보니 오늘 아픈 곳이 마침 어제 운동을 했던 그 부위예요. 잠을 잘못 자서, 나이가 들어서 아프다고 생각했는데 운동 후 통증인가 봐요.


"아! 나 어제 여기 운동했어. 그래서 아픈가 봐."


엎드려 있다가 벌떡 일어나요. 괜찮은데요? 원효대사는 말씀하셨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 마음에서부터 비롯된다고. 나이 탓하며 잠을 잘못 자서 그런가 보다 할 때는 그리 아프더니 운동 통증이라고 생각하니 견딜만한 거예요. 오늘의 어리석음을 깨달으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떡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이불을 빱니다. 저희 모자가 오기 전에 남편이 배겟잎은 빨아두었다고 했어요. 이제 떠날 날이 다가오니 우리가 쓰던 이불은 빨아서 장에 넣어두어야지요. 남편이 혼자서 하려면 쓸쓸한 마음에 몸까지 힘들 거잖아요. 다행히 여름이불이라 금세 빨고 금세 마를 거예요. 우리 남편처럼. 우리가 떠나고 잠시 적적해도 금세 적응하고 잘 지낼 거예요. 감정에 오래 매몰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지내면서 필요했던 것을 사두기도 해요. 남편은 살면서 큰 불편을 못 느끼고 사는 사람이거든요. 눈치껏 알아서 해결해주면 그제야 '이렇게 하니까 좋구나'라면서 꽤 좋아요. 런 남편이라 잘 챙겨줘야 해요. 안쓰럽잖아요.

 

아이와 삼양 바다를 가요. 지금쯤이면 해도 져가니 놀만하거든요. 그러고 보니 이번에 제주에 와서는 이곳 해변에 와서 논 적이 없네요. 본래 곁에 있는 것에 소홀하게 되잖아요. 우리도 그랬네요. 백사장과 푸른 바다의 멋스러운 대조만 눈에 넣느라 가까운 삼양 바다를 잊었어요. 랑새는 꼭 멀리있는 건 아닌데 말이에요.


검은 모래가 매력인 곳인데 사진을 찍으면 아무래도 백사장보다는 예쁘지 않아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지는 않는 듯해요. 이 모래엔 자성이 있어서 관절염, 신경통 있으신 분들에게 좋대요. 그래서 이곳의 '모살찜'이 유명해요.  '모살'은 제주방언으로 '모래'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한 여름에 이 모래를 맨발로 밟았다가 너무 뜨거워서 팔짝 뛰었어요. 달궈진 자석을 밟는 느낌이랄까. 조금 덜 더운 계절에 다시 시도해봐야겠어요. 지금은 검은 모래가 많이 유실되어서 다른 모래랑 섞여있어요. 그러데이션이 근사하기는 한데 이러다가 검은 모래 해변이라는 말까지 없어질까 걱정이에요. 삼양 바다는 서퍼들도 참 많아요. 물결이 꽤 높아서 보드를 즐기는 사람들이 곳곳에 보여요.   



노을이 오며 저녁도 오는가 봐요. 밀물과 줄넘기도 해봐요. 참방참방. 곳은 저녁이 더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했었잖아요. 바다 밖에서 붉은 노을을 보는 것도 경이롭고요, 이렇게 바다 곁으로 와서 누런 볕이 물속으로 잠식되는 광경을 보는 일도 근사해요.

  



관덕정이 야간 개장을 한대서 버스를 타고 가보기로 했어요. 늘 자동차만 타던 아이는 버스를 탄다는 말에 신이 났고요. 하지만, 금세 더운 열기에 버스를 기다리다 보니 슬슬 지쳐가는 모습이네요. 이럴 땐 은행이 최고지요. 이제야 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15분을 더 기다려야 한대요. 그냥 택시를 타기로 해요. 돌아올 때 버스를 타면 되니까요.


기사님이 내려주신 관덕정, 목 관아는 어둠이 내려앉아 있는데요? 아. 주말에만 야간개장이군요. 좀 더 치밀하게 조사를 했어야 했는데. 아이가 사또를 못 본다고 아쉬워해요.


아쉬울 땐 먹어야죠. 근처 분식집으로 갔는데, 분위기가 익히 알던 분식집이 아니에요. 펍이나 레스토랑 같아요. 떡볶이랑 한치 튀김, 아보카도 비빔밥을 시켜요. 관덕정의 아쉬움이 사르르 녹네요.



떡볶이의 야채 건더기 하나, 한치 튀김 아래 감자 실튀김 한 가닥, 아보카도 비빔밥의 밥 한 톨도 남김없이 싹싹 다 먹었어요.


이제 좀 걸어볼까 해요. 근처에 동문교가 있거든요. 8시에 분수쇼를 한다는데 이제야 알았어요. 여행이 아니라는 것의 단점은 언제든 볼 수 있다는 자신감에 사전 준비가 부족해요. 늘 이렇게 뒷북인걸요.



시내와 멀지 않은 곳에 산다는 것도 괜찮네요. 이렇게 밤 산책도 나와볼 수 있고요. 떠날 때가 되어서야 새로운 재미를 알게 돼요.


늘 그렇죠. 아쉬운 마음이 들어야나 새로운 것을 찾게 되니까요. 그동안은 푸짐하게 많은 날들이 남아 타성에 젖어 그저 그렇게 지내다가, 막바지에 이르니 하나라도 더 해보고 싶은거죠. 저만 그런가요?



이제 슬슬 집에 돌아갈 시간이에요. 버스정류장이 작지만 알차요. 제주 버스가 시스템이 굉장히 잘 갖춰진 것은 알고 계시죠? 버스 여행자들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에요. 노선이며 이를 알려주는 시스템이며 만족도가 굉장히 높아요. 저는 아이랑 다니느라 시도해보지 못했지만, 꼭 제주 버스여행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우리 동네를 가는 버스번호를 몰라서 안내 계기판을 터치해요. 그럼 노선과 함께 몇 분이 남았는지, 어디쯤 버스가 오고 있는지 내가 내릴 정거장 이름이 무엇인지 알려줘요. 요즘 핸드폰 어플이 있기는 하지만, 굳이 그걸 꺼내 들지 않아도 버스정류장에서 해결이 되니 참으로 편리하지요.


드디어 우리 집으로 가는 버스가 도착했네요. 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타려는 사람이 많아요. 앞문으로 타려는데 여행객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들이 뒷문에서 하차하는 사람들을 기다렸다가 타네요. 어쩐지 손해 보는 기분이에요. 우리는 앞문으로 줄 서서 타려는데 이 때문에 앉을자리도 없는 건 아닐까요. 아이와 버스를 잘 타지 않게 되는 건 자리에 앉지 못하게 될 경우 때문이에요. 아무리 조심해서 운전하신다고 해도 흔들리는 차에서 손잡이를 잡고 아이까지 케어하려면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 그때 기사님이 소리를 치세요.

"앞으로 타세요! 사람들이 양심이 있어야지!"


젊은 여성들은 민망한 듯 다시 내려와서 앞문으로 옵니다. 말투가 까칠하기는 하셨지만, 정의감 넘치는 기사님의 발언에 속이 시원해집니다. 남편에게 '아저씨 정의감 넘치시네!'라고 이야기하며 씨익 웃어요. 그 덕에 우리 자리도 확보했거든요. 그런데 그 여성들 중 한 명이 우리의 대화를 들었는지, 아저씨의 호통이 민망했는지 일행들에게 중얼거립니다.

"나 여태껏 이런 걸로 얘기들은 적 처음이야."


아. 문제가 뭔지를 모르나 봅니다. 무임승차가 아닌 이상 어디로 타든 괜찮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저 꼰대 감성 갖고 있는 건가요?



내일은 육지로 돌아갈 짐을 챙겨야 해요. 낮에 챙기면 저녁이 여유롭고 저녁에 챙기면 낮시간을 활용할 수 있겠죠? 어떤 결정을 하든 제 마음은 분주할 것 같아요.


제법 시원해진 여름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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