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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영남 서촌 그 책방 Oct 10. 2022

있어 보이게 논다, 독서모임

"말 안 하고 듣기만 해도 되나요?"

독서모임을 해보라고 하면 이런저런 망설임 끝에  자주 던지는 질문이다. 그리고는 내 눈치를 슬쩍 살핀다. 속으로 큭 웃는다. 그렇지만 밖으로 내색은 않는다. 고민에 진심으로 공감한다는 표정으로 언제나 대답한다. 사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까 뭐 어려울 것도 없다. 그럼요 말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됩니다. 입 꼭 다물고 있어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합니다. 말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차고 넘치니까요.


왜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하는 걸까? 독서모임에 오면서 말을 안 하겠다니. 그러면 무슨 꿍꿍이로 독서모임 신청을 하는 것일까? 그냥 혼자서 책 읽으면 되지. 굳이 회비를 내고 독서모임 신청을 하면서 듣기만 하겠다니. 

팟캐스터를 듣는 게 경제적인 게 아닐까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행간을 읽어라는 말, 여기서 적절히 새겨들어야 한다. 정말 말을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가득 찬 말을 좀 꺼내게 해 달라는 간절한 신호이다. 즉, 구체적으로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서 그러니 제발 물꼬를 좀 터 주세요 의 다른 표현이다. 


놀라운 일은 독서모임 신청을 고민하는 대다수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이다. 독서모임 초창기에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이해하고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하기가 부끄러워서 그러나 했다. 그래서 첫 모임에 참석하면 일부러 배려한답시고, 이분은 오늘 관종 모드라고,  말 안 한다 하셨으니 이번에는 듣기만 할 거라고 덧붙이곤 했다. 너무 재미있는 일은 내가 그 말을 하고 나면 안심하는 것이 아니라 약간 머쓱해하더라는 것이다. 그새 마음이 바뀠나 의아해지려는 찰나, 바로 반기를 드는 경우도 있었다. 마치 자신을 바보 취급 말라는 듯이 겸연쩍은 낯빛을 보이기도 했으니까.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 간절한 눈빛을 보낸다. 너무나도 당당하게, 이제 더는 못 참겠다는 듯이. 


저 말하면 안 될까요? 그렇다. 말하지 않으려고 자발적으로 독서모임에 참석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사람들이 독서모임을 유난히 망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달에 한 권 읽는 책이 부담일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기도 했지만, 꼬치꼬치 물어보면 숨긴 본심은 따로 있었다.  말을 조리 있게 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란다. 그리고 뒤이어 학교 때 독후감 발표의 경험을 얘기한다. 


이건 우리의 학교생활과 깊은 연관이 있다.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라. 연령 때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공식적으로 재미난 말하기의 기억이 거의 없다. 특별 활동 시간이나 학급회의 때의 썰렁한 분위기 어찌 잊겠는가. 말하기는 친구들과의 사담뿐, 학교는 듣기 아니면 쓰기로 점철된 교육이었다. 그래서인지 말을 안 하겠다는 분은 대부분 중장년층이다. 여러 사람 앞에서 해 본 적이 별로 없어서가 첫 번째 이유이고, 그나마 정답 말하기의 기억이 두 번째 아픈 발목이다. 정해진 답을 맞히지 못했을 때 돌아온 틀렸다는 평가와 더불어 맛본 씁쓸한 패배감,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입을 다물겠다는 것이고, 좀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젊을수록 말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걸 보면 내 분석이 설득력이 없지 않으리라. 성급한 일반화는 무리지만, 2030대는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은 자주 한다. 그러나 토론시간에 입을 닫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요즘은 나도 능구렁이가 돼서 발언 기회를 바로 주지는 않는다. 분명 말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왜 말을 하겠다고 마음을 바꾸었는지 물어본다. 첫 시간이라 잔뜩 긴장하고 웅크리고 있던 자세를 쭉 펴면서 수줍은 듯 웃으며 말한다. 뭐 다들 특별한 말을 안 하네요. 그냥 내 얘기를 하는 걸 보니까 저도 하고픈 말이 있어서요. 우리 독서모임의 토론 방법, 내 얘기를 자연스럽게 풀어간다.  모임 시작하고 30분도 지나지 않고 간파한 것이다. 맞아요. 바로 그것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토론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고, 독서와 토론은 늘 공부와 관련짓는 버릇이 있기도 하다. 어릴 때 자리 잡은 선입견은 참 끈질기다는 생각이 든다. 재미있게 친구와 수다 떨듯이 한다고 그렇게 여러 번 말했건만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않았던 것이다. 여긴 유엔 회의장도 아니고 대학의 세미나실도 아니고, 학교도 기업도 아닙니다. 저는 아무 권한이 없어요. 분쟁을 해결할 수도 학점을 줄 수도, 취업 결정권도 없어요. 그냥 재미있게 노는 곳이랍니다. 다만 책은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약간 맛깔나게 말을 할 수 있고, 있어 보이게 놀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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