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오래된 나의 휴대폰을 발견했다. 괜한 궁금함에 충전을 하여 전원을 켜본다. 낡은 텔레비전이 켜지는 소리가 나야 할 것 같은 휴대폰 속의 갤러리를 살핀다. 젊다 못해 어린 내가 나를 보고 방긋 웃는다. 친구들과 카메라를 향해 마음껏 웃었던 내가 들어있다.
나이를 먹고 달라진 것이 있다면, 더 이상 휴대폰 갤러리에 나의 셀피가 없다는 점이다. 한참 사진 속의 나를 본다. 무척 촌스럽다. 화장부터 친구랑 서 있는 자세까지, 볼수록 우습다. 그런데 이상하게 웃음이 난다. 그 시절이 내게 봄이었나 보다.
그 시절, 나는 봄이었다.
2023년 6월 26일
우리는 드디어, 잘츠부르크의 마지막 여정에 올랐다. 시내에 더 있고 싶다는 내게, 여기를 네가 분명 더 좋아할 거라는 남편 말에 우리는 렌터카에 올라탔다. 어느새 체코 프라하에서 빌린 차가 익숙해질 무렵이다. 아이를 위해 아동용 카시트를 빌렸지만, 예상과 달리 너무 부실한 외관에 놀랐지만 어느새 아들은 차에 타자마자 잔다. 긴 자동차 여행에선 이런 쪽잠은 필수다.
운터스베르크, 오스트리아의 마지막 목적지이자 잘츠부르크 카드의 마지막 사용처다. 잘츠부르크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 이곳에서 아들과 남편, 나는 자동차에서 내렸다. 유월에는 이곳에 오는 사람이 없는가. 넓은 주차장은 텅텅 비어있고 남편과 나, 아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우리만 이 산에 올라가나?"
현재시각 오후 15시 47분.
마지막 상승은 16시 30분, 마지막 하강이 17시라는 안내문이 전광판에 보인다. 영어 대신 독일어가 능숙한 어르신들은 아이와 함께 와 텅텅 빈 케이블카 매표소 앞에 있는 우리가 신기하면서도 걱정되시나 보다. 30분마다 있다는 케이블카를 얼른 타라며 말이 아닌 눈빛으로 이야기하셨다.
매표소 화면 속의 눈이 가득한 정상의 모습, 너무 추우면 어떡하지라는 말을 하며 유월의 색다른 풍경을 기대했다. 여기는 스위스 인터라켄이 아니건만, 걱정 많은 어미는 가족의 옷을 바라보며 산 위의 추위를 미리부터 염려한다.
우리 가족을 포함한 다섯 명이 타자, 우리가 전세를 낸 듯한 케이블카는 정상을 향해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 추위에 대한 걱정이 정말 쓸데없다는 듯이 케이블카를 운전하시는 아저씨도 반바지에 반팔티셔츠다. 남편과 나는 아들의 시선에 따라 잘츠부르크를 함께 바라본다. 그동안 엄마와 아빠의 성화에 땡볕을 같이 걷느라, 빨갛게 변한 아들의 볼도 어느새 조금씩 자신의 빛을 찾아갔다.
케이블카가 하늘 높이 올라 태양에 가까워지건만 유월의 여름, 이 더위는 도리어 한풀 꺾여 내려갔다. 도시의 뜨거움은 태양이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보다. 높이 오를수록 케이블카에 열린 창문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케이블카에 내리니 운터스베르크의 온 세상은 아직 봄이었다. 높기만 했던 잘츠부르크성도 이곳에서 보니 참으로 작다. 빽빽하게만 느껴졌던 도시의 북적임은 잊히고, 그저 작은 인형들이 사는 마을 같다. 높은 산 위에서 바람을 이겨내며 사는 키 작은 풀과 꽃들을 바라본다. 겁이 많은 아들은 무릎을 낮추어 낭떠러지 쪽 꽃과 풀을 향해 자신의 눈과 코를 맞춘다. 생경한 녀석들이 즐비하다.
아들 녀석도 작건만 아들이 찾은 예쁜 꽃들은 아이가 제 무릎을 땅에 다 내어 놓아야 제대로 볼 수 있을 만큼 작고 여려 보였다. 차가운 산바람을 버티느라 모두 제 몸을 작게 낮추곤, 이 높은 곳에서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한참을 보고는 십자가 모양의 기념비가 있는 꼭대기에서 온 가족이 셀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어느새 큰 아들은 남편과 나 우리 둘의 모습을 찍어준다. 그는 우리 둘을 비스듬하게 누워있는 것처럼 찍어주었다. 사진 속 우리는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서 있다. 아들만의 방식이다.
렌터카에서 고단하게 잠을 자던 아들은 햇살과 바람에 기운을 차려, 운터스베르크의 돌길을 함께 걷는다. 참으로 쉽다. 이 길은 전혀 고단하지 않았다. 케이블카를 타는 곳엔 작은 식당이 있고, 쌀쌀한 바람을 피해 잠깐 카페에 앉아 물을 마시고 챙겨 온 과자를 먹는다.
남편에게 나는 묻는다.
"여기 강원도인가?"
"그러게. 그런데 참 좋네. 조용하고."
오스트리아 운터스베르크, 잘츠부르크의 가장 높은 봉우리. 산 위에 올라 아들이 예쁘다는 꽃을 다시 바라본다. 그리고 우습게도 이곳에서 강원도를 떠올린다. 그리곤 멋쩍게 서로를 바라본다. 그리곤 다시 산 바람을 맞으며작고 여린 꽃, 또 다른 봄을 만난다. 덥다며 연신 손부채를 흔들던 서두름 대신 포근하고 따뜻한 카디건을꺼내 입어본다. 아들과 남편에게 바람막이 점퍼를 건넨다. 가방의 생수를 주니 아들은 스스로 제 목을 축이며 내게 말했다.
"엄마, 여긴 아직 봄이야."
아들의 말처럼, 이 산의 봉우리는 아직 봄이었다. 아들이 자라고 있는 지금, 우리는 여전히 봄이다. 남편과 나는 멋쩍게 기울어진 아들의 카메라 속에 서로를 함께 담아본다.
마지막 오르막과 내리막은 4시 30분이며, 최종하강은 오후 5시입니다. 잘츠부르크 카드를 구매하셨다면 케이블카는 무료이며, 트레킹을 위한 길이 조성되어 있으나 한국과 다르게 등산길에 난간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와 함께라면 케이블카를 이용해서 오르내리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홈페이지에 '2024년 4월 2일부터 2024년 4월 30일까지 개정'이라는 안내가 있으므로, 방문 전에 반드시 운영 시간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