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레이마니예 자미(Süleymaniye Cami) 안에 '으앙' 하는 아들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곳을 찾은 튀르키예 사람들의 낯선 시선이 이어지고, 아들을 데리고 황급히 한쪽 조용한 곳으로 데리고 가서 진정시킨다. 잘 진정될 리가 없다. 그렇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러곤 아들은 한참 동안 남편한테 혼났다. '이 놈 자식'이 난무하는 현장! 아들은 그곳에서 울음소리를 줄이지 않았고, 계속 크게 울어대서 남편은 결국 폭발했다. 황급히 아이를 들고서 자리를 떠난다.
아름다운 전망과 낭만적인 분위기, 이스탄불 전역이 다 보이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이곳, 현대화된 이스탄불의 무수한 쇼핑몰과는 다른, 에잔 소리에 맞추어 고요한 기도가 이루어지는 이곳에서 그는 우렁차게 울어댔다.
'아, 난 가끔 눈물이 흐른다.'
위의 이 낭만적인 사진은 바로 아들의 비눗방울장난감의 비눗물이 돌바닥에 무참히 쏟아지기 직전, 바로 파티흐(Faith) 구역의 쉴레이마니예 자미에서 찍은 것이다.
쉴레이마니예 자미는 파티흐 구역에 있다. 이 구역은 동로마 제국이 들어서고 천년 동안이나 번영을 누린 비잔티움의 가장 중요한 공간이자, 이스탄불이란 이름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가장 생생하게 기록된곳으로 이스탄불 역사의 가장 핵심적인 공간이다.
튀르키예 사람에게 이스탄불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은 어떤 곳이냐고 물으면 반드시 대답하는 지역, 그곳이 바로 파티흐 구역이다. 아야 소피아,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블루 모스크), 예레바탄 사라이, 그랜드 바자르 등이 있는 구역, 한국 사람들은 '아야 소피아' 등 위의 유명 관광지는 모두 갔지만 이 지역의 이름은 모른다. 대체로 '파티흐'라는 이 구역의 이름보다 여행사 버스를 타고 내려 이 구역의 주요 관광지를 안내하는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맹렬히 이곳을 누빈다. 그래서 자유 여행이 아닌 사람은 잘 모르는 이곳, 바로 '쉴레이마니예 자미(Süleymaniye Cami)'를 소개하려고 한다. 이곳은 일 전의 다른 글을 쓸 때, 다른 글을 위한 사진으로 쓸 만큼 이 파티흐 구역은 과거의 비잔티움으로, 때론 이슬람제국으로 순식간에 돌아간 느낌을 주는 곳이다.
즉, 이 주변 어디를 보아도 이곳은 예전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이스탄불에서 가장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물론 그 근처 짝퉁을 팔며 관광객을 호객하는 식당과 상점들의 관심에 불편할 때가 있지만, 그래도 이 자미가 있는 공간은 파티흐 구역에서 가장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그래도 이곳은 관광객보다 현지인들이 많이 가는, 튀르키예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자미이기 때문이다.
이 자미는 술탄 쉴레이만의 명령으로 만들어졌는데, 술탄 즉 오스만의 왕인 쉴레이만이 오스만 제국을 통치하던 시기인 16세기, 우리나라의 세종대왕에 비견될 만큼, 이 왕의 재임 시기에 나라가 번성했다고 한다.
무슨 운명인 것인지 이때 1557년 그때, 미마르 시난이라는 천재 건축가가 있었는데 그는 100년 동안 무수한 자미를 튀르키예 곳곳에 건축한다. 그리고 그가 만든 무수한 자미 중, 그의 작품에서 가장 대표작이라고 불리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파티흐 구역의 '쉴레이마니예 자미'라는 것이다.
건축에 대해 문외한이라 정확히 설명할순 없지만,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 '아, 여기 명당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미에 들어서서 나오는 뒤뜰에서 이스탄불의 전역이 다 보이는데, 이곳에 묻힌 미마르 시난도 나 같은 생각을 해서 사후에 여기 묻혔나 싶을 만큼, 이스탄불의 좁은 옛 골목을 벗어나 건물을들어서서 보이는 뒤뜰의전망은 답답한 마음을 열어주기까지 한다.
후에 미마르 시난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고 싶을 만큼 이 건물은 차분하면서도 웅장하고 때론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다른 자미와는 달리 실내의 창문이 훨씬 많아 밝고 그로 인해 내부 공간도 답답한 느낌보다 시원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 후, 그에 대해 찾아보니 당시 초를 사용하여 내부를 밝히던 시기에 미마르 시난이 개발한 환기 시스템 덕분에 자미 내부에 그을음 흔적이 많이 없고 유리창을 늘린 벽 구조 변화가 가히 획기적이라는 것이다. 그 시절엔 조명을 위해 초를 사용하니 자연히 내부에 그을음이 생기고 이로 인해 실내가 까맣게 변하는데, 그의 건축물은 그런 문제점을 없앴고, 창문을 늘려 실내를 환하게 만드는 등, 이전의 다른 모스크 건축에서 볼 수 없던 다양한 변화를 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돔의 구조에 더 작은 돔을 더해 건물을 더욱 안정적으로 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아직 그의 작품을 많이 보지 못했고, 자미(cami ; 모스크)의 건축양식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이기에 그의 작품이 이렇게 이렇게 대단하다고 정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분명 '아야 소피아'보다 내부가 훨씬 밝고 시원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당연히 동네의 다른 오래된 자미들과는 그 느낌부터 다르다. 겉에서만 보아도 다른 자미들보다 훨씬 더 안정적인 느낌을 주는데건축의 문외한이더라도몇 군데의 자미를 본 후, 직접 가본다면 이 차이를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즉, 이스탄불의 역사 그리고 세계사의 흐름에선 분명 '아야 소피아'가 훨씬 중요한 위치에 있지만, 건축사적인 가치는 분명 '쉴레이마니예 자미'가 단연 앞선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어떤 자미보다 이곳의 아름다움을 자주 이야기하는지 모른다. 조용하고 고요하며 그리고 아름다운 공간, 그곳에서 나는 엉엉 운 아들 그리고 남편과 함께 이스탄불을 바라본다. 이곳에 살고 있지만 아직도 여전히 모르는 게 가득한 나는, 미마르 시난도 술탄 술레이만도 느끼며 이곳에 오래 머물며 느끼고 싶지만,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지만 아직 너무나 본능적인 아들을 이끌고 인근 커피숍에 앉아 함께 눈물 젖은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아, 아들아, 제발 구경 좀 하자."
비눗방울 통의 비눗물이 훌러덩 쏟아져 대성통곡을 하는 아들을 바라보며, 아직 그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어 눈에 불통이 튀는 남편과 함께 파티흐 구역의 여행은 이제 시작되었다. 과연 울퉁불퉁한 파티흐 구역의 아름다움을 아들과 함께 온전히 전할 수 있을까.우리는 마음속에 쉴레이마니예 자미의 아름다움을 가슴에 품고 아름답게 나서야 했지만, 아들의 눈물 자국 가득한 얼굴과 분노 가득한 남편을 진정시키며 다소 미로같은 파티흐 구역을 겨우겨우 빠져나왔다.다음 도전은 이 뒤뜰의 전망처럼 정말 아름답게 끝나기를 바라면서, 그래도 고개를 돌려 한 번 다시 돌아본다.
"아, 명당이다. 명당! 신랑, 다음에 다시 오자."
가장 고요한 이곳, 쉴레이마니예자미에서 그래도 다음을 말할 수 있는 우리, 그래 너한테 가장 중요한 건미마르 시난도 저 전망도 아니고,작고 투명한 이 비누방울이 가장 소중할 테니까, 우린 아들과 함께 다음을 기약한다. 다음에 다시 오면 된다며 나를 위로한다. 그리고 비눗방울을 못 만들어 서러운 아들도 위로하며 서둘러 어렵게 어렵게 꼬불꼬불 돌길을 지나 파티흐 구역을 돌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