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이 만들어낸 나만의 탄착군
2018년에 6년 차 예비군 훈련을 마쳤다. 7,8년 차는 훈련이 없으니 실질적으론 예비군 훈련이 끝난 셈이다.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되었건만, 나는 여전히 사격이 싫다. 귓속에 일회용 귀마개를 짓이겨 넣어도 울려대는 격발음, 조준할 때마다 뺨에 닿는 차가운 금속 느낌, 코에 진득하게 남는 화약 냄새 등 모두 다.
현역 때는 내게 맞게 손질된 총이 있었지만, 예비군은 빌린 총으로 훈련하다 보니 조준선이 늘 제각각이다. 그래서 예비군 훈련 때는 탄착군이 모여있기만 해도 좋은 사수가 된다. 동일한 자세로 쏘면 대부분 쉽게 패스할 수 있다 보니, 총기 근처에 다가간다는 두려움과 감정적 싫음이 더해져 더더욱 사격 훈련을 싫어했다.
2019년 봄에 결혼을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계속 부모님 집에 얹혀살았으니 결혼이자 독립이기도 하다. 결혼 준비와는 또 다른 결로, 30대에 독립을 준비하다 보면 예상외의 난관들을 맞이하게 된다. 매 저녁마다 이사해야 할 짐을 줄이는 작업이 여기에 해당된다. 무겁고 부피도 상당하면서 일일이 책장에 꽂아야 하는 책은, 특히나 이사의 말썽꾸러기이다. 게다가, 나는 한국인 평균(`17년 평균 연 9.5권)보다 몇 배는 책을 많이 사는 편이다. 다시 읽지 않을 책을 조금씩 중고서적으로 팔며 연말 용돈을 벌고 있다.
만화나 장르문학은 고가에 거래되기에, 소장용의 몇몇 작품들을 제외하고 전부 판매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이제 다시 읽기 어려운 책들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알랭 드 보통, 파울로 코엘료, 귀욤 뮈소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저자에 대한 생각이 변하게 되면서 판매한 책들도 몇 있다. 반기문, 안철수, 홍정욱 등의 자전적 책들이 그러했고, 고은을 비롯한 몇몇 남자 문인들의 소설이나 시집도 팔았다.
※ 창작자의 비윤리성과 작품의 매력에 대한 생각은, 예전에 살짝 다루었기에 링크를 남긴다.
오랜 책 여럿을 비운 김에 새로 책장의 분류를 정리한다. 정리를 하다 보면 책장 한 칸을 유사한 주제가 차지하는 경우가 생기게 되는데, 이를 통해 역으로 내가 어떤 분야에 보다 더 관심을 가졌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특히 올해 산 책들은 대부분 공간이 없어 바닥이나 책상에 가로로 쌓여 있다가, 이번에 책장에 분류했기에 그 변화가 더욱 크게 와 닿았다. 올해 구매한 책은 총 56권이었다.
올 해는 독서모임 서비스 <트레바리>를 꽤 열심히 이용했는데, 모임에서 주로 논의된 주제들에 관련된 책들이 많이 늘어났다. 초협력에 관한 책 9권(16%), 페미니즘 7권(13%), 소외계층 관련 3권(5%이 이에 해당한다. 여자 친구의 전공이기도 한 심리학/정신분석 관련된 책(4권, 7%)과 한나 아렌트의 책(2권, 4%)도 기존에 읽지 않던 분야여서 새로 도전했던 책들이다. 반대로, 경영/전략 관련 책(4권, 7%)이나 한국시(3권, 5%)는 작년에 비해 확연히 권수가 줄어들었다.
버린 책, 새로 구한 책, 쟁여두고 싶어 마음속에 담아둔 책들의 면면을 곰곰이 돌이켜 본다. 나는 분명, 2~3년 전과는 전혀 다른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 탄착군이 한쪽으로 쏠려 있는 건 분명한데, 평균 대비 얼마나 뒤틀린 위치에 있는 건 아닌지 자신을 점검한다. 한 번 빌려 쓰고 말 예비군 훈련용 총기도 아니고, 나의 인생인데. 다시금 조준점을 정중앙으로 돌리기 위한 조준선 점검을 해야 하는 걸까. 정중앙으로 효율적으로 치고 달리는 것이 훌륭한 삶인가.
예비군 훈련도 끝나고, 독립 준비도 슬슬 막바지를 향하는 2018년 연말. 지극히도 30대스러운 고민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