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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희선 Jun 10. 2024

해준 게 없다는 아빠에게 | 자랑으로 사랑으로

이슬아, 『새 마음으로』, 헤엄 출판사, 2021

  어제 신림 극장에서 같이 <러브 액츄얼리>를 봤잖아요. 어떤 장면이 제일 좋았어요? 저는 아빠가 아들의 고백을 도와주기 위해 짝사랑하는 여자애가 출국하는 공항까지 다급하게 데려가 주는 장면을 가장 좋아해요. 열 살짜리 아들의 첫사랑을 마냥 귀엽게만 여기지 않고 ‘사랑’으로서 인정하고 조언과 도움을 아끼지 않는 장면이요. 아들을 힘껏 응원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아내를 여읜 지 얼마 안 되었던 그는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때 하는 게 얼마나 귀중한지 너무 잘 알아서 그랬을 거예요.


  아빠도 저한테 비슷한 아버지였어요. 제가 여섯 살 정도 되었을 때일 거예요. 저는 원래 다섯 시 넘어서 하원하는 종일반인데 그날은 왜인지 아빠가 저를 일찍 데리러 오셨죠. 당연히 신이 나서 집에 가려는데, 아빠는 뜬금없이 저랑 강진이를 함께 불렀어요. 걔는 어린이집에서 저를 포함한 모든 여자애들이 짝사랑하던 남자애였잖아요. 저는 조기 하원과 김강진과의 데이트라는 더블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아빠 차를 타고 야구장에 갔어요. 좋아했던 그 애랑 쌀쌀한 야구장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치킨 먹었던 장면이 종종 영화처럼 떠올라요. 야구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잔뜩 들떠 강진이랑 얘기하는 제 모습을 백미러로 보며 씨익 웃었던 아빠 얼굴은 제 상상인지 기억인지 헷갈리고요. 그 애와의 추억보다 더 소중한 건 우리 아빠가 그런 아빠라는 걸 기억할만한 에피소드가 있다는 거예요.


  아빠가 나한테 해준 많은 것들이 얼마나 꾸준하고 피로한 노동의 연속이었는지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며, 아빠가 먼저 경험한 것들을 뒤따라가면서 조금씩 이해하는 것 같아요. ‘같아요’라는 모호한 서술어를 싫어하지만 그럼에도 쓰는 건 감히 ‘이해하게 됐어요’라고 단언할 수 없기 때문이고요.



나는 버섯을 사거나 먹을 줄만 알지 키울 줄은 몰랐다. 버섯 재배의 대략적인 방법조차 알지 못했다. 너무 훌륭한 버섯을 며칠씩 먹다 보니 그 사실이 부끄러웠다. 나의 스승은 말했다. 직접 농사를 지을 수 없다면, 나 대신 농사를 지어주는 농부님들을 존경하기라도 해야 한다고.

(…) 인숙 씨는 나를 직접적으로 먹여 살리는 농부님들 중 한 사람이다. 농부의 일에 관해 전보다 자세히 알아야 할 것 같았다. 구체적으로 존경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감사하기 위해.

- 이슬아, 『새 마음으로』, 59-60쪽



  인용한 책은 이슬아 작가의 인터뷰집인데요, 작가가 인숙 씨가 재배한 버섯을 먹으며 그를 인터뷰해야겠다고 다짐하는 부분이에요. 이 책에서 이슬아 작가는 여섯 명의 어른을 인터뷰해요. 그들을 ‘구체적으로 존경’하고 그들에게 ‘구체적으로 감사’ 하기 위해서요. 아빠와는 직업도 때로는 성별도 나이도 겹치지 않는 이 어른들의 대답에서 아빠와 겹치는 지점을 봐요. 부모로서 노동자로서 겹치는 지점도 있지만, 저는 좋은 어른이라서 겹치는 부분이 더 반갑더라고요. 저 또한 엄마 몸속 단세포적부터 스물다섯 살까지 부모님의 노동의 대가를 일방적으로 먹으며 자란 사람으로서, 아빠를 더 구체적으로 존경하고 구체적으로 감사하기 위해 이 글을 써요.


  이 책의 목차에는 인터뷰한 사람들의 목록이 나와요. 공통점이 보이나요?


응급실 청소 노동자 이순덕

농업인 윤인숙

아파트 청소 노동자 이존자, 장병찬

인쇄소 기장 김경연

인쇄소 경리 김혜옥

수선집 사장 이영애


어딘가에서 잘 추켜세우지 않는 사람들이죠. 흔히 병원에서는 의사가, 출판을 생각하면 작가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마련이잖아요. 그에 비해 청소나 인쇄라는 노동은 인정받지 못해요. 당연히 누군가 피와 거즈가 낭자한 수술실을 쓸고 닦기 때문에 청결한 상태로 다음 환자를 받을 수 있고, 당연히 누군가 종이에 글과 그림을 인쇄하고 엮어내야만 독자가 책을 펼칠 수 있을 텐데요. 아빠의 생계 노동도 제게 오랜 시간 공기 같았어요. 그걸 마시며 내가 살고 자랐는데도요.


  저 목차 마지막에 아빠를 넣는다면 뭐라고 수식해야 할까요. 사업을 시작한 이후로 혼자서 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하나로 이름 붙이기 어렵네요. 이 일을 계속해야 하다니, 라는 한탄이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으로 바뀔 때까지 아빠는 내내 노동을 쉬지 않았죠. 먹고 자고 살기 위해 버는 돈. 숭고하지는 않지만 없으면 못 사는 돈. 내가 벌지 않으면 나만 굶는 게 아니라 우리 가족이 굶어야 했잖아요. 하지만 근면과 성실만으로 아빠를 설명하고 싶지는 않아요. 이슬아 작가도 그랬을 거예요. 이 책이 직업인 인터뷰가 아니라 ‘이웃 어른 인터뷰’인 이유겠죠.


  아빠는 무던한 사람은 아니지만 늘 마음을 새로 먹는 사람이에요. 집에 들어오기 직전까지도 거래처 사람이랑 언성을 높이다가도 집에 들어오면 늘 밝은 얼굴로 인사했던걸 기억해요. 단 한 번도 가족에게 화풀이한 적이 없었고요. 아주 가끔 힘든 일이 있어 얼굴이 상해도 다음 날 아침이면 밝아졌어요. 아빠의 쉽지 않은 유년을 생각해 보면 괴팍하거나 까칠한 사람이 될 수도 있었는데, 어떻게 지금처럼 환해질 수 있었을까요. 예순이 다 되어가는데도 눈은 엄마가 첫눈에 반할 만큼 맑은 그대로고, 웃음은 닮고 싶을 정도로 무구하잖아요.



감정이 올라올 때도 있지만 빨리빨리 잊어버리려고 해. 스트레스를 안고 꿍해있으면 나 자신이 너무 상해버리잖아. 새 마음을 먹는 거지. 자꾸자꾸 새 마음으로 하는 거야.

- 같은 책, 97쪽
식물한테도 새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돈이라 생각하고 일하기보다는 사랑으로 키우는 거지. 키우는 과정도 솔직히 예뻐. 키우는 중에 내가 만약 ‘키워도 야가 돈이 안 되면 어카지’ 하면 갸가 잘 자라겠어? 크는 단계에서는 식물이나 동물이나 똑같아요. 모든 것을 사랑으로, 사랑으로 키워야 돼.

- 같은 책, 97-98쪽



  농업인 인숙 씨처럼 아빠는 나를 새 마음으로 키웠을 거예요. 대단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도 않으면서, 키우는 대로 크는 내가 그저 좋아서 날마다 사랑을 새로 꺼내주셨을 거예요. 내 똥 기저귀가 향기롭다고 그걸 차 앞 유리에 끼우고 다니는 아빠와 눈물을 꾹 참고 나랑 버진로드를 천천히 발맞춰 걸었던 아빠가 같은 아빠인 걸 알아요. 아빠의 사랑은 늘 새 거니까요. 몇 년이 지나도 낡지 않으니까요.


  저는 아빠의 그 사랑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향할 때 자랑스러워요. 생계에 여유가 없었던 아주 오래전부터 아이들을 후원하고 계셨잖아요. 아빠 입으로는 한 번도 말씀하신 적 없지만요. 아빠는 농담도 잘하고 잘 웃지만 생색은 못 내는 사람이죠. 이웃집에 노크해 케익이며 과일을 나눠드리고,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무거운 걸 들고 있으면 꼭 트럭으로 태워다 주시고요. 그게 많이 다른 엄마 아빠의 몇 안 되는 같은 점이에요. 어느 한쪽이 나 오늘 누구한테 뭐 챙겨줬다, 사줬다, 하면 얼굴이 환해지면서 “잘했어, 잘했어” 해주는 그런 마음이요.



순덕 님은 “사는 게 너무 고달팠어요”라고 말한 뒤 “그래서 더 힘든 사람을 생각했어요”라고 덧붙였다. 나는 이 두 문장이 나란히 이어지는 게 기적처럼 느껴진다.

- 같은 책, 48쪽



  아빠는 마치 자기가 번 돈에 처음부터 도와야 하는 남의 몫이 들어있는 것처럼 어려운 사람을 돕지 못하면 미안해하기도 했죠. 인심은 곳간에서 난다는 말이 있지만 아빠의 인심은 감사에서 왔어요. ‘내가 저 사람보다는 낫지’라는 후진 감사가 아니라 나는 감사하게도 이만큼이나마 살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까, 라는 부채감이 있잖아요.


  저는 어릴 때 어렴풋이 우리 집이 넉넉하지 않다는 건 알았지만 돈이 없어 서럽거나 불행하다 생각해 본 적은 없었어요. 엄마도 아빠도 제 앞에서는 기를 쓰고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하셨겠죠. 제가 구김 없이 어린 시절을 회상할 수 있는 건 부유했기 때문이 아니라 부요했기 때문이에요. 엄마가 그랬잖아요. 부유(富有)는 많이 가지는 거지만 부요(部要)는 ‘필요’가 없는, 그러니까 부족함이 없는 거라고. 아빠는 나한테 해준 게 없어서 미안하다고 하지만, 사실 더 해줄 게 없었다는 게 정확하죠. 내가 바라기 전에 필요한 모든 것을 아빠가 이미 줬으니까요.


  요즘 목요일마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는데요. 한 회차가 끝나고 나면 꼭 노래를 부르고 싶어져요. (기타를 꺼내다 “희선아 지금 열두 시야”하는 남편의 말로 제지당하고는 하지만요) 좋은 노래를 들으면 따라 부르고 싶듯이, 좋은 글을 읽으면 써보고 싶듯이. 좋은 인생을 사는 사람을 보며 살아가면 계속해서 살고 싶어지는 게 아닐까요. 아빠가 나한테 준 가장 귀한 건 계속해서 살고 싶은 이 세상이에요.



배운 게 별로 없었지만 실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존자 씨와 병찬 씨, 그들의 생애는 서로를 살리며 흘러왔다. 한 고생이 끝나면 다음 고생이 있는 생이었다. 어떻게 자라야겠다고 다짐할 새도 없이 자라버리는 시간이었다.

고단한 생로병사 속에서 태어나고 만난 당신들. 내 엄마를 낳은 당신들. 해가 지면 저녁상을 차리고 이야기를 지어내는 당신들. 계속해서 서로를 살리는 당신들. 말로 다할 수 없는 생명력이 그들에게서 엄마를 거쳐 나에게로 흘러왔다. 그들의 엄마, 그 엄마의 엄마, 그 엄마의 엄마의 엄마로부터 흘러내려온 생명력일 것이다. 어쨌거나 생을 낙관하며, 그리고 생을 감사해하며.

알 수 없는 이 흐름을 나는 그저 사랑의 무한 반복이라고 부르고 싶다.

- 같은 책, 155쪽



  저는 아빠가 이 ‘사랑의 무한 반복’ 속에 저를 초대해 주신 게 감사해요. 만약 용기 내는 날이 온다면, 저도 내가 누리는 이 세상을 선물하겠다는 마음으로 아이를 초대할 거예요. 야, 인생이라는 거 내가 살아보니까 좋더라. 너도 한번 살아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 사랑의 반복 속에 공짜로 한번 타봐, 하고요.


  저는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는 순덕 씨의 마음에서, 새 마음을 먹는 인숙 씨의 결심에서, 쉬는 날 아내와 잘 놀며 살다 한날한시에 죽고 싶다는 경연 씨의 꿈에서, 거래처와의 수많은 약속을 수호하는 혜옥 씨의 철저함에서, 허투루 일하지 않는 영애 씨의 단호함에서 아빠의 얼굴을 봐요. 그리고 세어보지 않았던 아빠의 다른 얼굴들을 떠올려봐요. 가볍게 웃을 수 있지만 본인이 잘한 일에는 한없이 입이 무거운 사람, 싱거운 농담을 가족들이 안 받아줘서 내심 서운한 사람, 내가 아는 어른 중에 부끄러움을 가장 빨리 인정하는 사람, 자존심보다 중요한 게 있으면 그걸 망설이지 않고 버릴 줄 아는 사람, 걱정을 말하는 것보다 혼자 다 이고 지는 게 훨씬 익숙한 사람.



순덕 님의 말을 듣고 나는 문득 삶이라는 게 몹시 길게 느껴졌다. 순덕 님과 같은 일흔 살이 되기에 나는 아직 먼 것 같아서다. 울면서도 완벽하게 청소할 수 있을 때까지, 내 노동으로 일군 자리에 다른 이를 초대할 수 있을 때까지, 지치지 않고 계속 어른이 되어가고 싶다.

- 같은 책, 49쪽



  이십 년 넘게 기대온 아빠와 같은 어른이 된다는 건 제게는 멀게 느껴져요. 하지만 시간이 걸릴 뿐, 아빠와 닮은 제 구석구석을 발견할 때면 그게 그리 어렵지는 않겠다고 생각해요. 나무 아래서 빗소리를 듣거나 강가를 바라보는 것처럼 가만가만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고, 투박한 밴드 음악과 사람들 앞에서 하는 연주와 노래를 즐기고, 엄마랑 연애할 적에 “연화가 하얗게 웃었다”고 일기를 쓰는 것처럼 소중한 순간을 최대한 비슷하게 남기려 하는 성향까지. 아빠한테 공짜로 받은 것들은 다아 좋은 거예요. 특히 전 아빠랑 닮은 이 웃음을 사랑해요.


  어릴 때부터 아빠랑 똑같이 생겼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당연히 우리 얼굴이 닮았겠거니 생각해 왔는데 어느 날 뜯어보니 우리 둘은 눈코입이 다 다르게 생겼더라고요. 그런데도 우리가 닮은 건 웃는 표정이 꼭 같기 때문이었어요. 주름은 자주 짓는 표정대로 나는 길이니까 나는 아빠 나이 때 아빠랑 같은 주름이 들겠죠. 그렇게 생각하면 늙는 얼굴이 싫지 않아요.


  나한테 얼마나 귀한 것들을 줬는지도 모르고 아빠는 자꾸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시죠. 근데 저는 아빠한테 받기만 했는데도 하나도 안 미안해요. 왜냐면 내가 아빠한테 얼마나 큰 선물이고 기쁨이었는지 아니까요. 그러니까 아빠도 이제 그런 말씀 마세요. 뻔뻔한 딸이 괘씸해서라도요.


  처음부터 읽어보니 길고 구체적인 아빠 자랑이 되었네요. 하는 수 없어요. 저는 사랑은 잘 못 표현하지만 자랑은 잘하잖아요. 이슬아 작가는 자신의 글은 대부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의 변주’라고 하는데요. 자랑도 사랑의 변주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빠한테 받은 모든 것이 내게 자랑이 되는 것처럼, 한 사람의 삶을 찬란하게 만들어왔던 아빠의 노고들이 스스로에게도 자랑이 되었으면 해요.



(202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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