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전을 쓰겠습니다
퇴근길에 마주친 부장님이 말씀하셨어요. 요즘 몸이 자꾸 아프다고요. 이상한 건, 어디가 아픈 건지 딱 집어 말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냥 살갗이 스치기만 해도 따갑고, 조금만 부딪혀도 온몸이 욱신거린다고요. 여기저기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검사 결과는 늘 '이상 없음'이라고. 특별한 원인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고.
나만 아는 병. 나만 느끼는 아픔.
이 불안과 아픔은 도대체 누가, 어떻게 알아봐줄 수 있는 걸까요?
우리는 아픔을 증명하는 데 익숙해져 있어요.
CT 사진 속 하얀 점, 혈액검사 수치의 빨간 표시, X-ray에 찍힌 금간 선. 그런 게 있어야 비로소 "아, 정말 아팠구나" 하고 인정받을 수 있으니까요. 심지어 우리 스스로도 그래요. 눈에 보이는 증거가 없으면 '내가 예민한 건가', '내가 너무 약한 건가' 하고 자책하게 돼요.
하지만 몸은 거짓말하지 않아요.
네, 거짓말하지 않아요.
우리처럼. 생각처럼. 말처럼.
거짓말 하지 않죠.
몸이 아프다고 느낀다면, 그건 정말로 아픈 거예요.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검사에 안 나온다고 해서 거짓이 되는 건 아니에요.
우리는 몸의 언어에 서툴죠. 알아듣지 못하고, 또 이해하기 어려워하죠.
몸이 속삭일 땐 못 들어요. 그러다 몸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면 그제야 놀라서 병원으로 달려가니까.
그럴때 병원은 우리에게 약을 주고 처방전을 내밀지만, 정작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약이 아닐 때가 많죠.
볕을 쬐는 일. 네, 우리 몸은 빛을 먹고 살아요. 당연히 그렇죠.
빛과 물 바람도, 틈도, 자유도, 거리도 필요하죠.
어떻게 아니겠어요.
한 생명인데. 한 생물인데.
출근길도 퇴근길도 어둑어둑한 요즘, 마지막으로 언제 햇빛을 제대로 쬐었나요?
제대로, 정성껏.
그리고 쉬는 것. 진짜로 쉬는 거요. 눈을 감고 숨 쉬는 소리를 듣는 시간. 편안히 긴장을 푸는 시간. 알아봐주는 시간. 들어주는 시간.
걷는 것. 가려고가 아니라, 달리려고가 아니라, 그냥 다리를 움직이고 바람을 맞으며 걷는 일이요. 우리 몸은 움직이도록 만들어졌어요.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있으면 몸이 굳어요. 마음도 같이 굳어지고요. 걸으면 생각이 풀려요. 엉킨 마음도 조금씩 정리돼죠.
제대로 먹는 일. '좋은' 영양과 칼로리를 채우거나, 허겁지겁 먹거나, 습관처럼 마시는게 아니라 앉아서 천천히 씹으며 먹는 거요. 음식의 맛을 느끼고, 따뜻함을 느끼고, 내 몸속으로 들어가는 걸 의식하면서요.
혼자 있는 일. 정말로 혼자, 고요하게 있는 시간이요. 누군가의 메시지에 답하고, 누군가의 기대에 응답하고,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해요. 그러다 보면 나 자신이 뭘 느끼는지, 뭘 원하는지 알 수가 없어요. 혼자 있을 수 없다면, 스스로를 지킬 수도 없죠.
이런 것들은 약이 아니에요. 처방전에 적히지도 않아요. 하지만 이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들이에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예요. 미룰 수 있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거예요.
우리는 자꾸 이런 것들을 뒤로 미루죠. "나중에 여유 있을 때", "좀 덜 바쁠 때"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그 '나중'은 오지 않아요. 오늘 해야하는 거에요.
몸이 지금 아프다고 말하고 있다면, 그건 이미 오래전부터 보내온 신호를 계속 무시했다는 뜻이에요. 몸은 참을성이 많아요. 웬만하면 참아요. 그러다 정말 견딜 수 없을 때, 그때서야 비명을 질러요. 그렇지만 알아야 하죠. 몸이 아프다고 말할 때, 그건 단순히 세포나 장기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건 삶 전체가 보내는 신호예요. "이렇게 살면 안 돼"라는, "나를 좀 돌봐달라"는 간절한 신호요.
약국에 가는 것처럼, 병원 예약을 잡는 것처럼, 자신을 위한 시간도 '처방'해야 해요. 달력에 적어놓으세요. "오늘 오후 3시, 햇빛 쬐기", "토요일 오전, 아무것도 안 하기", "일요일 아침, 혼자 걷기"라고요.
유난스럽게 보이기도 하고, 너무 단순해 보일 수도 있죠. 몸은 복잡한 치료법을 원하는 게 아닐 수도 있어요. 대신 기본적인 돌봄을 원하죠.
몸이 아픈 이유를 어떤 의사도 찾아내지 못했다면, 어쩌면 그건 의학적 진단이 필요한 질병이 아닐 수도 있어요. 다만 자신에게 해줘야 할 일들을 너무 오래 미뤄왔다는 신호일 수도 있죠.
몸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오늘
뭐라고 말하고 싶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