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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이 없는 가게 -
다카기 커피점 다카쓰지 본점

#Issue 4. 무형의 만족을 제안하는 사람들




   꼭 챙겨보는 TV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JTBC의 손석희 앵커가 방영하는 뉴스룸입니다특유의 촌철살인 멘트가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사회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이슈에 대한 그만의 깊은 통찰력을 닮고 싶은 마음에 생방송으로 보지 못했다면 페이스북을 통해서라도 놓치지 않습니다.



   2016년 10월 5일에 방영된 손석희의 앵커브리핑은 일본을 다시 보며라는 제목으로 시작했습니다그는 한국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사과 편지를 보낼 생각이 있느냐는 물음에 일본의 아베 총리가 내뱉었다는 털끝만큼도 없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합의 직후 아베 총리는 다음 세대에 사죄하는 숙명을 지게 할 수 없다고 답한 바 있습니다 는 발언을 언급했습니다그러면서 낙엽 한 장 눈에 띄지 않았던 일본의 길거리는 일종의 결벽증의 발로가 아닌가 하는 생각 끝에 약간의 섬뜩함마저 일었다고 자신의 감정을 풀어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대로 아베 총리의 말이나 일본의 정치적 태도를 비판하는 분위기로 이어질 것만 같았던 이야기는 도쿄공업대학의 명예교수인 오스미 요시노리 Yoshinori Osumi가 지난 번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이야기로 전환되었습니다.



  그는 오스미 교수가 인터뷰에서 밝혔던 남들과 경쟁하기는 싫었다그래서 자신은 인기 없는 분야에 외골수로 파고들 수 있었다는 고백으로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그러면서 헤소마가리 へそがり즉 외골수의 기질이 통하는 일본 사회의 풍토가 아베의 오만한 역사인식과 정치인식을 변형된 외골수로 보이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반문했습니다또 한편 우리는 과연 남들과 경쟁하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외골수의 기질을 가져본 적이 있는지를 되묻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시 화제를 전환하여 이야기의 말미에서 남들과 경쟁하기 싫어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는 한국의 어느 외국어 고등학교 여학생을 예로 들었습니다지금 우리가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지를 확인해보자는 메시지를 던지면서 그만의 촌철살인은 마무리됐습니다.



   사실 이러한 외골수의 기질이 보인 사례는 이번 오스미 요시노리 교수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2002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시마즈 제작소의 연구원 다나카 고이치 Koichi Tanaka도 수상식 소감에서 수상한 기술은 회사 내에서 실험 중 실수를 통해 발견한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수익과 관계없는 연구임에도 밀어준 회사에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실제로 시마즈 제작소는 연구개발의 폭과 깊이에 있어 회사 차원에서 제한을 두지 않고 연구 주제 또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회사 경영이나 R&D의 결과는 저비용 고효율 방침으로 승부하고 있지만 저비용을 만들어내기 위한 예산에는 한도가 없습니다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회사의 자세를 그대로 엿볼 수 있는 대목이자외골수의 정신이 곧 장인정신으로 이어져 그들의 경쟁력이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사실 오늘날에는 남들보다 더 새롭고 훌륭한 상품을 출시하는 동시에 다양한 신종 판촉 기법과 마케팅 활동도 뒤처지지 않아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그럼에도 남들과 경쟁하기 싫어 인기 없는 분야에 집중했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남들과 경쟁하기 싫어 외골수가 되었다는 노년의 박사는 도랑을 파서 논밭에 물을 대는 일이 아니라 보다 깊이 파서 우물을 만든 뒤 설령 비가 오지 않더라도 여분의 물을 확보하자는 논리로 꾸준히 자신의 업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상품이나 기술을 개발하는 데 매진하면서 한방을 노리지 않는 자세오랜 시간 성실하게 답을 찾고 또한 그 답을 실현하면서 자신의 업적을 남긴 것은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반면 우리의 매장은 어떻습니까우리는 그저 판매를 늘리기 위해 최저가 또는 최대치의 혜택을 제공하며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비즈니스는 결국 고객이 사줘야 이뤄지는 것인데 온통 판매만을 생각하고 있으니 재고는 많아지고 빚 또한 늘어만 갔던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남들과 경쟁하기 싫다고 하면서도 지금 당장의 이익을 위해서아니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서 남의 도랑까지 파서 우리의 논밭에 물을 대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경쟁이 없는 카페, 네 번째 이야기입니다.  



   

   지금으로부터 41년 전인 1976년에 개점한 다카기 커피점 高木 咖琲店은  교토 지역의 커피 프랜차이즈 전문점인 이노다 커피 본점에서 함께 근무를 하던 다카니시高西와 카와베기타무라北村씨 세 사람이 공동의 사업을 진행하면서 시작된 곳입니다각자 이름의 첫 음을 따서 상호를 지었다고 하니 과연 진짜 다카기 커피점이구나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올 법도 합니다우리로 치자면 김아무개와 박아무개그리고 이아무개씨가 공동으로 창업하여 김박이 커피점이라고 한 것과 같으니 말이죠.



   하지만 이곳특히 다카쓰지 거리에 있는 본점에서 커피와 음식을 맛본 사람이라면 처음의 멋쩍은 웃음은 기쁨과 환희의 웃음으로 변해 앉아 있는 시간 내내 즐거울 것이 틀림없습니다.



    가게의 외관과 내부는 오랜 시간만큼 빛을 바래 보잘 것 없지만주문과 동시에 만들어진 음식들을 정성스럽게 내어오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5성급 호텔에서 서비스를 받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가게 내부를 채우고 있는 노년의 신사와 숙녀들은 여유롭게 신문이나 TV를 보면서 유유자적하고 있고 이따금씩 보이는 젊은이들은 노트북을 켜고 헤드폰을 귀에 꽂은 채 일에 열중하고 있습니다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비워진 물잔에 빠짐없이 물을 채워주는 직원들작은 소리에도 고객이 놀랠까 싶어 아주 조심스럽게 씻어낸 컵과 식기들을 닦는 직원들계산을 마치고 나서는 고객들에게 일일이 인사하면서 오랫동안 대화를 하고 문 앞까지 배웅하는 직원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곳에 경쟁이 필요할까 하는 의구심마저 듭니다.



    어쩌면 이곳에서는 도시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통의 판매자나 구매자 지위를 떠나 함께 살아가는 생활자로서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사실상 새로움을 발견할 수 없고 판촉기법 또한 대단한 것이 없습니다메뉴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져 제공되고 있습니다시대의 흐름이 한국과 일본에서 아무리 다르게 변해왔다고 하더라도 과거와 매한가지의 방식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선 일종의 경외심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들이 거추장스럽게 변질되고 있는 지금 우리의 서비스 환경들과 묘하게 오버랩됩니다우리의 넥스트 스테이지는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변해갈지 걱정이 드는 한편 과연 우리는 어떤 본질을 지니고 있어야 할 것인지 각오도 동시에 다지게 됩니다.



   여기 수십 년 동안 한 자리에서 등대처럼 빛을 밝히고 있는 이곳에서 시간이 깊어지는 순간을 만끽하면 좋겠습니다경쟁을 하지 않는다는 말의 참된 의미를 우리 함께 일깨웠으면 합니다.


큐앤컴퍼니 대표 파트너, 김 도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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