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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짓는 순서-
이치카와야 커피점

# Issue 3. 감명의 공간




     신영복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저서 나무야 나무야에서 함께 징역살이를 한 노인 목수 한 분의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자신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을 그릴 때 지붕부터 그리는 데 반해 노인은 집을 짓는 순서대로 집을 그렸다면서 지붕부터 그려온 자신의 무심함이 부끄러웠다고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2009년 방송인 김제동씨의 사회로 진행된 신영복 교수 전국 순회 강연회에서도 이를 언급하면서 기존에 인식하고 있는 관념성을 버리고 자기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하기도 했습니다이는 곧 자신이 지니고 있는 기존의 의견을 바꿀 중요한 계기가 있어야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경쟁이 없는 카페,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창업과 관련한 강연이나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대부분은 메뉴와 가격품질과 인테리어 등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곤 합니다.

  


  특히 사회 관계망 서비스를 활발히 활용하고 있는 요즘 시대를 감안한다면 이러한 모습은 가시적인 성과로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내기 위한 당연한 선택으로 인식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위험한 함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가령 A라는 사람이 100만원으로 커피숍을 차렸다고 칩시다. A는 자신이 만든 메뉴와 가격인테리어 등으로 소비자의 구매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실제로 A의 커피숍은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이 상황을 목격한 B라는 사람은 A보다 100만원 많은 200만원으로 A와 똑같은 콘셉트의 커피숍을 근처에 열었습니다. A와 같은 메뉴이면서도 가격은 조금 더 저렴해졌고 메뉴는 다양해졌으며 인테리어 또한 화려한 모습을 갖췄습니다.



   기존에 A의 커피숍을 들리던 소비자들은 자연스레 발걸음을 B의 커피숍으로 옮겼고 이에 질세라 A는 다시 200만원을 들여 메뉴와 가격을 수정하는 한편인테리어에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소위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대로 바꾼다며 온 힘을 쏟아 부었습니다.



   소비자들은 다시 A의 커피숍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B는 다시 300만원을 들였습니다. A는 다시 500만원을 들였고 B는 다시 700만원을 들였습니다



   사실 A와 B의 커피숍은 단기적으론 효과를 보았습니다그러나 결국 소비자에게 선택을 받기 위해 준비했던 그들의 새로움은 가격과 비슷한 하나의 요소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수지가 안 맞는 장사가 지속되니 단기처방에만 의존하게 되고점차 높아지는 비용의 악순환을 견디지 못하게 됐습니다비용 상승의 악순환은 스트레스만 극대화시켰습니다.



   결국 그들은 지붕부터 그린 셈입니다집을 이루고 있는 주춧돌과 기둥서까래 등은 생각지 못한 채소비자에게 선택을 받기 위해 화려한 지붕만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닐까요그들은 메뉴와 가격인테리어 등으로 이목을 끌고 싶었지만 정작 스스로 차이를 만들 수 있는 방법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처음으로 다시 되돌아가 봅시다. B가 A의 커피숍 인근에 새로이 들어왔을 무렵 A가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로 삼아 차이를 인정하며 자신의 관점을 발전시켰다면 결코 이러한 상황까지 치닫진 않았을 것입니다오히려 B와 소통하면서 서로 협력하여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상황에 놓여 있다면 지금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다시 질문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왜 우리가 가게를 열어야 하는지왜 우리가 이 일을 해야 하는지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과 대의명분을 지붕 위에 던져놓지 말고 주춧돌 위에 올려 차근차근 하나씩 지어야 합니다자신의 관점에서 벗어나 변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모든 다양성의 범주를 고려하면서 소비자를 위해 선보일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꾸밈없이 만들어야 합니다그럴 수 있다면 우리의 메뉴와 가격인테리어나아가 소비자를 대하는 마음도 자연스레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토의 한적한 동네에 자리 잡고 있는 이치카와야 커피 ICHIKAWAYA COFFEE는 그곳 주민들과 교토를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후르츠 산도 Fruits Sandwich로 특히 유명한 곳입니다계절에 맞는 과일을 사용하는 까닭에 갈 때마다 다른 종류의 과일이 쫄깃한 식빵 안 생크림과 함께 즐거운 식감을 제공하곤 합니다또한 가게 뒤뜰에서 직접 볶은 커피도 일품이라 매번 들를 때마다 우리 동네에 이런 카페가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감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카페를 우리 동네에 들이고 싶은 까닭은 메뉴 때문만이 아니라주방 안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사장님과 직원들의 모습에서 느끼는 감명’ 때문이기도 합니다



   가령 주력 메뉴인 후르츠 산도를 집이라고 가정한다면 그들은 우선 집을 짓기 위해 과일부터 정성껏 준비합니다과일을 씻고 체를 받쳐 물기를 뺀 뒤칼로 자르고 씨를 조심스레 제거합니다마치 목수가 집의 주춧돌과 기둥도리서까래 등을 이어 붙이는 모습과 같습니다.



   가게의 다른 한쪽에서는 사장이 불의 열기를 예의주시하면서 물을 끓이고 커피를 추출하고 있습니다이런 모습에선 추위를 막기 위해 내장재를 갖추고 집의 구조를 하나씩 이어나가는 작업과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마지막으로추출된 커피를 컵에 담기 전 가열된 물로 미리 컵을 살짝 데우고 하얀 헝겊으로 물기를 닦아냅니다이렇게 커피를 담는 모습은 마침내 지붕을 덮어 온전한 집을 만들어내는 목수의 정밀한 시선을 느끼게 해줍니다.



   그들의 커피숍은 애당초 메뉴와 가격인테리어는 크게 신경 쓰고 있지 않는 분위기입니다어찌 보면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서 개의치 않는 느낌마저 감돕니다



   이런 요소들이란 효과적인 차별화에 필요한 것들이 아니어서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폭 장치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마침내 집은 완성되고 그 아늑한 품 안에 놓인 한 잔의 커피와 후르츠 산도가 제 앞에 놓입니다먹지 않아도 벌써 느낄 수 있는 감명은 커피의 향과 함께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릅니다.     


     

TIPS.


   개인적으로 교토는 맛있는 커피점이 많습니다그중에서도 으뜸은 역시 이노다커피입니다그 이유인즉슨 커피의 맛을 결정하는 삼박자가 제대로 갖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커피를 맛있게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커피를 맛있게 내려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좋은 품질의 커피도 빼놓을 순 없습니다공간과 사람재료의 삼박자가 묘하게 잘 들어맞으니 맛이 있다고 느낄 수밖에요.


   그런 연유로 두 번째로 맛있는 커피점은 어딜까 생각해봤습니다역시 이치카와야커피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생각해보니 재미있는 사실은 이치카와야 커피의 점주인 이치카와 요스케씨가 이노다커피 출신인 것입니다.


   1999년 25살의 나이에 이노다 커피 산조점에서 처음 커피를 시작한이래 약 18년을 근무했습니다그리고 지난 2016년 자신의 이름을 딴 커피점을 개업했습니다올해로 3년째를 맞이하는 이 곳이 이노다커피처럼 오랫동안 남아 있으면 좋겠습니다.



큐앤컴퍼니 대표 파트너, 김 도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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