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딩은 기본의 기본을 지키는 일
주 소 : 49-25 Shimogamo Shibamotochō, Sakyo Ward, Kyoto, 606-0814
전화번호 : 075- 706-8809
영업시간 : 08:30 -18:00
정기휴일 : 월요일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아니다. 직접 내려 마시는 그 과정 자체가 좋다.
물을 끓인다. 주전자의 뚜껑이 달그락거리고 김이 피어오른다. 보글보글 거품이 이는 소리를 가만히 듣는다. 물이 충분히 뜨거워지기를 기다리며, 나는 드리퍼를 서버 위에 조심스레 올려둔다. 그 다음, 원두를 그라인더에 손잡이를 천천히 돌린다.
‘드르륵, 드르륵’ 기계가 낮고 묵직한 숨을 내쉰다. 단단했던 원두는 부드러운 가루로 변해 흘러내리고 공기 속으로 은은한 향이 퍼진다. 마치 가라앉던 기억이 떠오르듯, 느릿하게 공간을 채운다.
나는 곱게 갈린 원두를 드리퍼에 옮긴다. 손끝으로 가볍게 다독여 표면을 정리한다. 작은 입자들이 한 겹씩 쌓이며 부드럽고 단단한 바닥이 완성된다. 뜨거운 물이 출발할 준비를 마치면 나는 잠시 머뭇거리며 주문을 외운다. “오늘도 맛있게 커피를 만들어주세요.”
첫 물줄기가 닿는 순간, 원두가 천천히 숨을 쉬듯 부풀어 오른다. 나는 그 순간을 가만히 지켜본다. 이내 뜸을 들이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물을 흘려보낸다. 커피는 서두를 수 없다. 물줄기를 너무 급히 부으면 균형이 흐트러진다. 천천히, 마치 숨을 고르듯, 조용한 리듬을 유지해야 한다. 한 방울, 또 한 방울. 커피가 추출되는 동안 나는 기다린다. 그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그 순간을 바라본다. 물이 스며들어 원두가 열리고, 작은 방울들이 아래로 모여든다. 느리게 흐르던 시간 속에서 한 잔의 커피가 조용히 탄생한다.
나는 그 따뜻한 온기를 손에 감쌀 때마다 깨닫는다. 우리가 단순한 반복처럼 여기는 행동들 속에서도 지켜야 할 기본이 존재한다고.
하지만 기본을 지킨다는 것은 그저 익숙한 방식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본이란, 끊임없이 고민하며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에 가깝다. 매일 똑같이 보이는 움직임 속에서도, 아주 작은 차이가 결과를 바꾼다. 기본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것을 향해 나아가는 끝없는 여정이다. 그리고 교토에서 카페 베르디를 찾을 때마다, 나는 같은 확신을 얻는다.
사실 베르디를 처음 알게 된 건, 블루보틀 창업자 제임스 프리먼의 이야기 덕분이었다. 그는 자신의 SNS에서 베르디의 토스트 사진을 올리며, ‘가장 완벽한 토스트를 찾았다’고 말했다. 커피도 아니고, 토스트라니. 솔직히 그때 나는 속으로 의아했다. ‘토스트가 맛있어 봤자 얼마나 특별할까’ 하는 마음으로 방문했던 것이다. 하지만 한 입 베어 문 순간, 내가 알고 있던 '토스트'의 정의가 달라졌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토스트 한 조각에서 느껴지는 이 섬세한 균형감은 곧바로 커피에 대한 기대감을 자아냈다. 이미 주문해놓았던 커피가 마침 그 순간 내 앞에 놓였다. 토스트도 이 정도라면, 과연 커피는 어떨까? 그렇게 설렘을 안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나의 작은 기대는 곧 감탄으로 바뀌었다.
나는 완벽한 커피 맛이 존재한다면, 아마도 바로 이런 커피일거라 직감했다. 입안에 스미는 촉감은 부드러웠고 혀를 감싸는 단정한 질감과 적당한 밀도는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묵직하게 깔리지도, 가볍게 흩어지지도 않는 균형감은 하루 열 잔을 마셔도 지지치 않을 것만 같은 커피의 정석을 맛 본 기분이었다.
단순히 원두가 좋다고 해서 이런 맛이 나는 건 아닐 것이다. 베르디의 커피가 특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아마도 그들이 핸드픽과 자가 로스팅을 고집하기 때문일 것이다. 베르디에서는 원두를 기계로 선별하지 않는다. 매일 손으로 한 알 한 알 골라내며, 좋은 원두만을 남긴다. 흔히 말하는 최고의 원두가 아니라 가장 정성 들여 선별한 원두가 중요하다는 철학이 베르디에 있었다.
그렇게 선별된 원두는 로스팅 후에도 다시 한 번 점검된다. 로스팅은 단순히 볶는 과정이 아니라 불과 원두가 만나 만들어내는 조율의 예술이다. 같은 원두로 해도, 불의 세기와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개성을 띤다. 베르디는 각 원두의 본연의 특징을 최대한 살리는 방식을 선택한다. 그래서 베르디의 커피는 과하게 쓴맛을 남기지 않는다. 불필요한 요소는 덜어내고, 원두가 가진 순수한 맛만을 온전히 전한다.
그 결과가 바로 내 앞에 놓인 한 잔의 커피였다. 어쩌면 이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하나의 완성된 세계였다.
베르디는 커피를 만드는 곳이지만, 그보다 커피를 마시는 방식을 알려주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커피의 온도, 컵의 선택, 함께하는 음식까지 철저한 기본을 지키며 본질을 완성한다.
커피는 80℃ 대의 적정한 온도를 유지한다. 급하게 마셔도 델 염려가 없고, 향과 맛이 가장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순간을 포착한다. 컵의 선택도 마찬가지다. 향이 강조된 커피는 가벼운 컵에, 깊은 바디감의 커피는 묵직한 컵에 담긴다. 손끝에서 입안까지, 커피를 경험하는 감각을 섬세하게 조율하는 이 작은 차이를 베르디는 매일 신중히 고려한다.
이곳에서 토스트는 단순한 곁다리가 아니다. 빵을 굽는 방식조차 커피와 어울리도록 설계된다. 신신도(進々堂) 출신의 마스터 쓰즈키 요시야(続木義也)는 친가에서 직접 빵을 공급받는다. 일정한 습도를 유지하며 구운 뒤 버터를 발라 마무리하는 방식,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식감. 커피와 함께할 때 비로소 완전한 형태가 된다.
디저트도 예외가 아니다. 푸딩 하나를 만들더라도, 단순히 좋은 재료가 아니라 ‘커피와 가장 조화로운’ 재료를 찾는다. 베르디가 선택한 것은 치타반도 하나이 양계장의 계란이다. 커피와 함께했을 때 가장 깊이 있는 풍미를 내는 것이 무엇인지, 기본부터 고민한 결과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그깟 계란 하나가 맛을 좌우하냐고. 어떤 컵이든 뭐가 상관있냐고."
어쩌면 맞을지도 모른다. 계란 하나 바꾼다고 푸딩이 완전히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컵 하나 바꾼다고 커피의 본질이 바뀌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베르디는 그런 것들을 끝없이 고민하며, 가장 단순한 것에서부터 완벽을 찾아간다.
어떤 가게는 좋은 재료를 찾고, 어떤 가게는 손님의 취향을 따라간다. 하지만 베르디는 단순히 좋은 것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깟 계란 하나가 뭐가 다른지, 어떤 컵이어야 하는지, 왜 이 온도여야 하는지.’ 그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고급 원두를 쓰고 좋은 재료를 사용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베르디가 하는 일은 그 너머에 있다.
‘그깟 계란 하나가 뭐가 다를까’ 베르디는 묻지 않았다. ‘어떤 계란이어야 하는가’, 베르디는 그것을 고민했다. 그 차이가 결국 베르디를 만들었다. 그 선택에 대한 쓰즈키 요시야의 생각은 단순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개점 초기에는 맛있는 커피 문화를 전파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손님들이 '좋아요'라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 이상을 요구하면 그것은 더 이상 제 일이 아니라고 느껴집니다."
이 말은 겸손함 이상의 깊이를 담고 있었다. 그는 이미 베르디를 찾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가치를 충분히 알아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굳이 트렌드의 흐름에 맞춰 불필요한 변화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기본에 대한 확신’과 ‘본질에 대한 충실함’이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한 것이다.
우리는 흔히 브랜드가 시대의 흐름을 따라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변화하지 않는 고집이 더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 베르디는 단순한 커피숍이 아니다.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고 커피의 본질에 깊이 집중하며 집요하게 기본을 고민한다. 좋은 재료를 고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재료를 어떻게 가장 잘 사용할지 고민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브랜드를 만드는 건 이런 작고 집요한 고민들이다. 한 잔의 커피 속에서 우리는 단순히 맛을 느끼는 게 아니라, 삶과 브랜드가 지향해야 할 길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당신이 마시는 커피는 어떤가.
한 마디로 제품은 상향평준화되었고 브랜드 활동은 하향평준화된 세상이다. 맥도날드가 카페를 론칭하고 스타벅스가 아침 메뉴를 판매하는 현실을 생각해 보라. 전혀 다른 느낌의 브랜드가 경쟁하고 있는 모습이 참 우스꽝스럽지 않은가. 이런 시대가 도래했으니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바로 고객이다. 다른 어떤 것보다 고객에게 신경 써야 함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그다음 당신의 브랜드가 지향하는 생각, 철학, 가치관, 의미를 담아 제품 및 서비스에 담아내야 한다.
- 김도환, 디스이즈 브랜딩 : 한 끗을 찾아 헤매는 마케터를 위한 중 -
책 소개.
카페 베르디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교토의 아침이 고요히 저를 맞아줍니다. 이곳에서 흐르는 시간은 조금 더 느긋하고, 조금 더 부드럽게 다가옵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 한 잔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이곳이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하나의 철학을 담고 있는 장소임을 깨닫습니다.
베르디는 단순한 네오 깃사텐(Neo Kissaten)이 아닙니다. 이곳에서 저는 ‘최고의 원두’보다 ‘가장 정성 들여 선별한 원두’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누구나 좋은 원두를 선택할 수 있지만, 원두 하나하나를 손으로 직접 고르고, 로스팅 이후에도 꼼꼼히 확인하며 세심하게 맛을 조율하는 태도는 결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모습에서 저는 일본 전통 다도의 창시자인 센노리큐(Sen no Rikyū)가 이야기한 "와비차(侘び茶)"의 정신을 떠올립니다. 커피 한 잔을 내리는 일이 그저 평범한 절차가 아니라, 시간과 정성을 아낌없이 쏟아 완성하는 정교한 과정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쓰즈키 요시야(続木義也) 씨는 그런 철학을 체현한 사람입니다. 미스터 도넛과 야마자키 빵에서 쌓은 경험, 교토의 빵집 신신도(進々堂)의 이사로 활약한 이력 속에서 그는 특별한 열정을 키워왔습니다. 도쿄의 유명한 커피점 바흐에서 로스팅을 배우고, 2003년에 마침내 베르디를 열어 교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죠. 그는 커피 맛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손길을 정성껏 전달하는 사람이입니다. 손님들은 그의 커피를 마시며, 그가 정성스럽게 건네는 이야기를 음미합니다.
이야기를 음미하는 것, 바로 브랜드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책을 쓰면서도 그런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디스 이즈 브랜딩』에서 저는 제품을 넘어선 가치—기억과 감정, 그리고 시간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말했지요. 그때의 생각을 카페 베르디에서 더욱 선명하게 한 기억이 있습니다.
교토의 커피 유토피아, 베르디에 앉아 책장을 넘기다 보면 브랜드의 진정한 의미를 따뜻하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곳에서 『디스 이즈 브랜딩』을 읽으며 브랜드가 사람의 삶 속에서 어떻게 깊이 숨 쉬는지, 생생히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제가 쓴 책을 제가 직접 추천하는 민망함은 진한 커피 한 모금으로 겨우 삼켜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