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딩은 누군가의 목적지를 만드는 일
주 소 : Kyoto, Nakagyo Ward, Daikokucho, 40-1 六曜社
전화번호 : 075- 241- 3026
영업시간 : 08:30 - 22:00
정기휴일 : 수요일
언제부터인지 카페는 ‘이곳이 어디인지’보다 ‘어떻게 보이는지’가 더 중요해진 것 같다.
소셜 미디어 속 수많은 계정이 앞다투어 ‘핫플’을 소개하고, 카페들은 정교하게 연출된 장면 속에서 하나의 완벽한 오브제가 된다. 균형 잡힌 구도로 담긴 커피 한 잔, 미적으로 완성된 플레이팅, 빛과 그림자가 자연스럽게 스며들며 한층 더 완벽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클릭 한 번으로 그 모든 것을 미리 경험한 뒤, 마치 정해진 답을 확인하듯 카페를 찾아간다.
그렇게 찾은 카페는 언제나 예상한 대로다. 벽은 깨끗하고 조명은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며 테이블과 의자는 균형을 잃지 않는다. 에스프레소 머신은 반짝이고 메뉴판에는 원두의 산지와 프로파일이 적혀 있다. 너무 새로웠고, 너무 반듯했으며 너무 완벽하게 연출되었지만, 그런 공간에서 ‘나’는 오래 머물지 못했다. 시간도 기억도 스며들지 않았다. 무엇이 빠져 있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문을 나서는 순간,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도 들지 않았다. 아마도 카페가 ‘어떻게 보일 것인가’에 집착할수록, ‘어떻게 경험될 것인가’는 점점 희미해지는 법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요즘 카페는 머물기 위한 곳이 아니라, 그저 커피를 소비하기 위한 곳처럼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문득 그리워지는 카페가 있다. 어느 날은 무심코 검색 창에 그 이름을 적어 넣기도 했고 어느 날은 아무 말 없이 비행기 표를 끊기도 했다. 굳이 멀리까지 가야 할 이유는 없었지만, 그곳을 떠올리는 순간, 나는 이미 교토에서 가장 번화가 중 하나인 산조 가와라마치의 밝은 간판과 사람들 사이로 흘러가는 빠른 발걸음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거리는 언제나 붐빈다. 네온사인은 해가 지기도 전에 불을 밝히고,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은 손에 쇼핑백을 들고 빠르게 지나간다. 백화점에 끊임없이 새로운 브랜드가 들어서고 나가듯, 거리의 작은 상점들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 간판을 달고, 짧은 유행을 따라 생겼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몇 년에 한 번씩 다시 찾을 때마다, 익숙했던 가게가 사라지고 새로운 이름이 적힌 간판이 걸려 있었다. 그러나 변하는 것들 사이에서도 늘 같은 자리에서 같은 빛을 머금고 있는 공간이 있다. 1950년부터 단 한 번의 이전 없이 산조 가와라마치를 지켜온, ‘로쿠요샤’다.
나는 산조 가와라마치의 번화함 속에서도 기요미즈야키(清水焼)의 초록색 타일이 건물 외벽을 감싼 그곳을 쉽게 찾아 멈춰 선다. 기요미즈야키는 에도 시대부터 명맥을 이어온 교토의 전통 도자기다. 히가시야마(東山)지역, 특히 기요미즈데라(淸水寺) 주변에서 발전한 이 도자기는 유약을 한 겹 한 겹 덧입히며 완성된다. 뜨거운 불길을 견디고 나서야 비로소 단단한 형태를 갖추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깊은 색을 머금는다. 그래서일까. 나는 로쿠요샤 앞에 서면 늘 이 타일에 손끝을 가져간다. 차가운 표면을 따라 손끝을 천천히 움직인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온도, 그 위로 겹겹이 쌓인 로쿠요샤의 흔적을 조용히 더듬는다.
로쿠요샤의 출입문은 두 개다. 오른쪽 문을 열면 1층 지상점, 왼쪽으로 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지하점으로 향한다. 어느 쪽으로 가든, 결국 같은 공간이지만 나는 늘 1층으로 들어간다. 발걸음을 안으로 옮기면 그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공기가 기분 좋은 커피 향을 뚫고 천천히 퍼진다.
실내는 작은 공간이지만, 불편함 없이 알맞게 설계되어 있다. 오히려 혼자서 온 사람도 함께 온 사람도 서로 너무 멀어지지 않도록 배려한 걸까. 테이블과 의자는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게 놓여 있다. 때로는 나란히 앉아 같은 방향을 바라보거나, 맞은편에 앉아 조용히 커피를 마신다. 낯선 사람과 짧은 인사를 주고받거나, 아무 말 없이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바 안쪽에서는 로쿠요샤 창업주의 손자인 마스터, 오사무 군페이씨가 한 잔 한 잔 커피를 내리고 있다. 장인의 기질을 드러내는 과장된 동작은 없다. 대신 마치 고급 호텔의 서비스처럼 그의 손길이 지나간 자리마다 공기는 미세하게 흔들리고 어떤 질서가 자리 잡는다. 그 움직임은 조용히 퍼져나가 직원들의 몸짓에도 스며든다. 손님의 빈 물잔이 채워질 때, 재떨이 담뱃재가 조용히 사라질 때, 손님이 떠나 자리의 흔적이 닦여질 때도 그들의 조용한 품격은 흐트러지지 않는다. 그렇게 로쿠요샤의 하루가 70년 넘게 이어져 온 것이 분명했다.
가끔 이곳을 찾을 때마다, 나는 늘 같은 장면을 마주한다.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이 말없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직원은 신문 한 부를 챙겨 익숙한 자리로 가져다 놓는다. 창가에 앉은 노신사는 신문을 펼치고, 낡은 종이 위로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는다. 바와 맞닿은 소파에 앉은 중년의 여성은 커피 잔을 감싼 채, 손끝으로 천천히 잔을 돌리며 깊은 생각에 잠긴다. 그들과 마주 앉은 적도, 대화를 나눈 적도 없지만, 나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습을 발견한다.
문득, 이들이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다시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치 시간을 되감아 어제의 장면을 반복하듯, 그들은 늘 그곳에 앉아 신문을 넘기고, 커피를 음미하며, 변하지 않는 풍경 속에 스며든다.
변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이들이 아니라 이곳일지도 모른다. 언제 찾아와도 어제와 다름없는 풍경이 펼쳐지고, 오랜 세월 동안 쌓인 리듬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공간.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나 역시 문을 열고 이곳으로 들어선다. 이런 생각이 들 무렵, 로쿠요샤가 3대를 이어 사랑받아온 비결을 탐구한 <커피일가>에서, 일본의 F&B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가바야마 사토루는 이렇게 설명한다.
“3대를 이어오며 변하지 않는 것은 커피의 맛만이 아니다.
단골들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도록, 그들이 기억하는 로쿠요샤의 풍경과
서비스가 그대로 유지된다.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 쌓인 신뢰와
관계성이 이곳을 지켜온 가장 큰 자산이다.”
어떤 공간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진다. 빠르게 유행을 타고, 빠르게 사라진다. 눈길을 사로잡는 인테리어, 한정된 수량의 싱글 오리진 원두, 고급 장비로 완벽하게 추출된 스페셜티 커피는 SNS를 타고 단숨에 화제를 모으지만, 짧은 유행이 지나면 사람들의 관심도 함께 사라진다. 그 안에서 시간을 쌓을 수 없는 공간은, 결국 기억 속에서 지워지는 브랜드가 된다.
로쿠요샤는 다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러 오는 것이 아니다. 이곳에서 시간을 쌓고 기억을 남기며 다시 돌아오기 위해 문을 연다. 오랜만에 돌아온 사람도 마치 어제 다녀간 듯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는다. 로쿠요샤도 언제든 돌아올 수 있도록 그들이 기억하는 풍경과 온기를 고스란히 간직하며 그 자리에서 기다린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손끝으로, 시선으로 축적해가며 조용한 만족을 채워 넣는다. 그렇게 같은 것들이 반복될 때 비로소 변하지 않는 브랜드로 남아 누군가의 목적지가 된다. 지나가는 길목에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굳이 돌아서라도 찾아가게 만드는 브랜드. 내가 로쿠요샤를 그리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찻집에 들어가는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다. 물론 커피도 그 이유 중 하나지만,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일기를 쓰거나, 기분 전환을 하는 등 저마다 카페를
찾는 목적이 천차만별인 점이야말로 매력이 아닐까. '사려 깊은 찻집과 편안한
카페의 중간.' 그런 가게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 가바야마 사토루, 커피 일가 중. 오사무 군페이의 인터뷰 -
책 소개.
한 도시의 풍경이 변하고, 유행이 스쳐 지나가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공간이 아니라, 그 안에서 쌓이는 ‘시간’과 ‘관계’입니다. 1950년 개업한 이래 70년 넘게 같은 자리를 지켜온 교토의 명물, 로쿠요샤. 우리는 이곳에서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독특한 감각을 경험합니다. 그곳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음미할 때, 마치 오랜 단골들이 남긴 시간의 결을 따라가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로쿠요샤가 수십 년간 사랑받아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본의 F&B 저널리스트 가바야마 사토루는 그의 저서 『커피일가』에서 그 해답을 찾습니다. 이 책은 단순한 카페 탐방기가 아닙니다. 교토를 대표하는 깃사텐 로쿠요샤를 깊이 있게 분석하며, ‘3대를 이어오는 브랜드의 힘’을 탐구합니다.
이 책은 단순한 성공 사례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의 본질’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 속에서 한 자리를 지키는 것, 그리고 그 공간을 찾는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것.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커피일가』는 교토의 커피 문화를 넘어, ‘머무르고 싶은 공간’의 본질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기억하는 공간이란, 단순히 화려한 인테리어가 아니라, 그곳에서 쌓인 시간과 관계가 만들어내는 공기라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복잡한 이론 없이도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어, 커피 문화와 공간 운영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안성맞춤인 책입니다.
로쿠요샤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분들이라도 이 책을 읽으면 꼭 로쿠요샤에 가고 싶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