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는 자신의 리듬을 끝까지 놓지 않는 태도를 지켜내는 일
주 소 : 25 Shogoin Sannocho, Sakyo-ku, Kyoto 606-8392 Kyoto Prefecture
전화번호 : 075- 761-7685
영업시간 : 12:00-10:00
정기휴일 : 수요일 / 목요일
홈페이지 : https://jazz-yamatoya.com/
어떤 음악은 빠르게 시작된다. 어떤 음악은 오래 생각한 끝에 한 음을 낸다. 나는 후자의 쪽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래서 재즈를 좋아한다. 말보다 숨이 많은 음악, 마치 망설이다가 겨우 말문을 여는 사람처럼 쉬이 다가가지 않고 조용히 곁에 머무르는 느낌을 나는 참 좋아한다.
우리는 늘 뭔가를 빨리 결정하고 정해진 대로 움직여야 한다고 배워왔다. 그러나 재즈는 그렇지 않다. 악보는 있어도 정답은 없고, 연주는 매번 달라진다. 그 음악 안에는 그 음악 안에는 망설임과 기다림, 실패와 수정이 허용된다. 듣는 이조차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지만, 그 속에는 재즈 연주가들의 축적된 감각과 오래된 훈련이 녹아 있다. 그러니까 재즈는 완벽해서 좋은 게 아니라, 흔들리는 걸 멈추지 않아서 좋다.
재즈의 즉홍성을 몸으로 증명한 뮤지션, 찰리 파커는 말했다. “악기를 익히고, 음악을 익히고, 그다음엔 그걸 모두 잊어라. 그리고 그냥 연주하라.” 처음엔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모든 것을 배운 다음, 그걸 잊으라는 건 무슨 뜻일까.
하지만 살아보니 알겠다. 하루하루를 견디고 익히고 또 익힌 끝에야 조금씩 내 걸음처럼 느껴지는 리듬이 생긴다. 그 리듬은 날마다 조금씩 다르다. 어떤 날은 느리고, 어떤 날은 자꾸만 헛디딘다. 그래도 그건 분명, 내가 걸어온 방식이고 내가 천천히 만들어온 마음의 박자다. 완벽하지 않아도 익힌 것을 내려놓고 나답게 흔들리며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끝내, 내 삶도 하나의 연주가 될 테니까. 우리는 모두 각자의 즉흥을 연주하며 살아간다. 같은 멜로디는 없고, 같은 속도도 없다. 다만 저마다의 리듬 속에서 불완전함을 안고도 자신다움을 찾아가고 있다.
자전거를 빌려 이마구마노의 숙소에서 금각사 쪽으로 향하던 어느 늦은 오후였다. 츠타야 서점에 들른 뒤, 다시 길을 따라 올라가던 중이었다. 그때였다. 오래된 골목 어귀에 걸린 작은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JAZZ SPOT YAMATOYA"
한눈에 봐도 오래된 간판이었다. 파란색 페인트는 세월에 조금씩 바래 있었고, 그 아래로는 작은 불빛 하나가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간판을 올려다본 나는 잠시 페달을 멈췄다. 그곳이 어떤 장소인지 알지 못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용해졌다. 마치 이 길 끝에 내가 한 번은 만나야 할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즉흥적으로 방향을 틀어 그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야마토야는 교토의 마루타마치 거리, 히가시오지 거리를 지나 작은 골목길로 들어선 곳에 있다. 무심코 지나치면, 평생 찾지 못할 수도 있는 곳이다. 하지만 한 번 들어가면 그곳은 더 이상 ‘장소’가 아니라 마음 한 구석에 오래 머무는 ‘기억’이 되어 삶의 어느 날에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나는 처음 그곳에 들어섰을 때 ‘시간이 연주되는 소리’를 들은 듯했다. 오래된 LP가 돌아가고 있었고, 윌리엄 모리스의 벽지 아래선 오래된 가구들이 숨을 쉬고 있었다. 구석에 층층이 쌓인 오랜 재즈 음반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전시처럼 놓여 있었고, 그 곁엔 영국제 스피커 비타복스 클립쉬혼(VITAVOX KLIPSCHORN)이 묵직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원래를 클래식 음반의 미세한 음향까지도 살려내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이 스피커는 이곳에선 오히려 오래된 재즈의 숨결을 더 종요하고 깊이 울려주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음반들은 단지 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다시 공간을 호흡시키기 위한 숨결처럼 보였다.
한쪽 벽에는 비교적 작은 공간에서 사용하기 좋은 업라이트 피아노가 놓여 있다. 이 피아노에는 재즈 스폿 야마토야의 시간이 고요히 스며 있다. 프리 재즈의 선구자 세실 테일러, 고요 속의 기도를 연주하던 키스 자렛, 도시의 감성을 담담하게 눌러 담았던 케니 드류 그리고 장르의 경계를 허물며 재즈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은 칙 코리아 등이 이 작은 피아노 건반 앞에 앉아 자신의 리듬을 조용히 내려놓고 갔다.
처음엔 믿기 어려웠다. 이토록 작은 공간에,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재즈 뮤지션들이 다녀갔다니. 그도 그럴 것이다. 이곳은 겉으로 보기엔 교토 골목 어귀에 숨이 있는 오래된 재즈 킷사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마토야는 겉모습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쌓아온 곳이었다. 그 시간의 중심엔 오랜 세월, 이 공간을 지켜온 한 사람이 있었다. 올해로 83세가 된 재즈 스폿 야마토야의 마스터, 쿠마시로 타다후미 씨다.
그의 청춘은 어느 카페의 테이블 구석에 앉아 있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도시샤 대학 근처 BIG BEAT라는 재즈 카페를 드나들었다. 그는 매일 같이 그곳에 들러 레코드가 한 곡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마스터가 말했다.
“그렇게 좋아한다면 직접 해보는 건 어때?”
말은 가볍게 던졌지만 그 말은 쿠마시로 씨 안에서 천천히 침전되었다. 그는 그 말의 울림을 몇 년에 걸쳐 마음속에서 되새기고, 돌리고, 듣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전당포를 운영하고 있었다. ‘야마토야’라는 이름의 가게였다. 돈과 물건이 오가고, 짐작되지 않는 사연들이 물건에 실려 들어오고 나가던 공간은 언뜻 보면 재즈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소였다.
하지만 그는 어느 날, 그 전당포 안에서 작은 즉흥 연주곡을 펼치기로 결심했다. 있는 것을 전부 바꾸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던 공간 안에 조용히 ‘다른 리듬’을 들여오기로 한 것이었다. 1970년 야마토야는 전당포에서 재즈 키사로 변했다. 작은 골목의 작은 가게에서 시간은 다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가 틀어놓은 한 장의 음반 위로, 사람들의 하루가 앉고, 커피가 식고, 생각이 쉬었다. 그는 그렇게, 음악을 팔지 않고 음악을 지키는 삶을 택했다. 한 사람의 즉흥이 공간이 되고 시간을 변주하며 태도로 굳혀졌다.
처음 야마토야에 갔을 때, 나는 카운터에 앉아 조용히 커피를 한 잔 주문했다. 그날따라 이상하게 위스키보다 커피가 더 당겼다. 이윽고 주문한 커피가 나왔다. 쓴맛과 산미가 서로를 누르지 않고 적당히 다투면서도 끝내 하나의 조화를 이루는 맛이었다. 나는 감격스러움을 목구멍을 밀어내고 ‘커피 블렌드’에 대해 물었다. 마스터는 잔을 닦던 손을 잠시 멈추더니 수줍은 미소를 머금은 채 짧은 영어로 답했다.
“하프 앤 하프라고 합니다. 교토의 오래된 커피 도매상인 타마야 커피에서 주문한 산미 강한 커피와 홋카이도에서 공수한 고급 인도네시아산 원두인 토라자(Toraja Coffee, トラジャコーヒー) 커피를 섞었어요.”
그날 나는 그저 좋은 커피를 마셨다는 기억만을 안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야마토야를 갈 때마다 어김없이 치즈 토스트와 하프 앤 하프 커피를 주문하는 버릇이 생겼다. 시간이 흘렀고, 야마토야를 찾지 못한 날들이 길어지면서 그곳은 내 기억 속에서 서서히 희미해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한 매거진에서 마스터의 인터뷰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깨달았다. 그 잔에 담긴 마음까지는, 그때는 미처 다 알지 못했다.
“맛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음식을 위해 나는 어떤 노력도 아끼지 않습니다.”
그 짧은 문장을 읽는 순간, 그날 마셨던 커피의 깊이가 마음속에서 다시 피어올랐다. 그 잔에 담긴 태도와 그 조율된 침묵의 시간, 그리고 말없이 이어져온 손끝의 정직함까지. 무심코 주문했던 진토닉도 떠올랐다. 알싸한 진과 조용히 터지는 토닉의 리듬이 가득 담긴 그 한 잔도 어쩌면 오래도록 다듬어온 그의 조율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그제야 뒤늦게 깨달았다.
야마토야의 모든 것이 그 한 문장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맛있다고 말할 수 있게 하려는 마음”, 그는 바로 그 마음으로 야마토야를 지켜냈고, 문을 닫아야 했던 시간 끝에서도 2013년, 다시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나는 마침 그즈음 그가 다시 연주를 시작한 공간에 다다랐다. 나의 즉흥이 그의 즉흥에 포개어졌던 순간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서로의 리듬이 만나 잠시 같은 박자를 나눈 일이었다.
재즈는 즉흥이라 말하지만, 사실 아무 준비 없이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즉흥을 준비하려면 그보다 오랜 시간 익히고 쌓고 결국에는 그것들을 잊어야 한다. 야마토야의 마스터는 그 ‘잊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하루를 쌓고 계절을 넘기고 익숙한 풍경을 조금씩 다른 리듬으로 걸으며 무려 반세기 동안 자신의 즉흥을 이어왔다. 그가 말하지 않고 지켜온 것들, 그가 음악처럼 조율해 온 메뉴 그리고 함께 공간을 지켜온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브랜드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그의 곁을 지켜준 이는, 바로 그의 아내였다. 조용한 미소와 부드러운 손길로 공간을 함께 다듬어온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레 그 자리를 딸에게 물려주었다. 지금은 따님이 마스터 곁에 나란히 서서 잔을 닦고 손님을 맞는다. 그리고 작고 정성스러운 오리가미 하나를 건네며 일본식 환대의 마음을 조용히 전한다.
그 작은 종이 위엔 말보다 깊은 일본식 환대의 마음이 담겨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 인사 하나만으로 이 공간이 오래도록 지켜온 ‘태도’가 전해지고 아버지에서 딸에게로 이어지는 마음이 느껴졌다. 커피만이 아니라 사람의 손끝에서 건네지는 ‘마음’까지도 이곳은 오랜 시간 조율해오고 있었다. 그 모든 장면을 바라보며 처음 내가 품었던 질문, ‘브랜드란 무엇인가’는 어느새 이렇게 바뀌어 있었다.
“나는 어떤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나는 어떤 태도로 살아가고 싶은가”
브랜드는 특별한 정답을 찾아가는 일이 아니다. 하루하루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리듬을 놓지 않는 사람의 태도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태도는 언젠가 누군가의 기억이 되고, 하나의 공간을 누군가의 삶의 일부로 바꾸어 놓는다. 재즈스폿 야마토야는 나에게 그걸 가르쳐주었다.
누군가는 카페를 쉽게 시작한다. 누군가는 오래도록 묵묵히 지켜낸다. 누군가는 커피를 사진으로 남기고, 누군가는 커피에 묻은 마음을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그날 재즈 스폿 야마토야에서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나의 즉흥과 그의 즉흥이 같은 박자로 포개어졌던 순간을 오늘도 천천히 되새긴다. 이곳에서 프로포즈를 하며 평생 한 사람을 사랑하겠노라는 맹세도 매일.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세상의 흐름을 알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며 사소한 일을 큰 일처럼 대하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 이것이 감각의 원천입니다.
- 조수용, 일의 감각 중 -
책 소개.
브랜드를 디자인하는 사람, 조수용. 그는 브랜드를 외형이 아닌 태도로 바라봅니다. 무언가를 화려하게 보여주기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지켜내는 방식에 대해 말하죠. 그의 저서『일의 감각』은 자신만의 속도와 리듬으로 일하고, 그 리듬을 끝까지 놓지 않는 사람에 대한 기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야마토야에서 내가 본 것도 바로 그런 태도였습니다. 익숙함을 견디고, 반복을 존중하며, 말하지 않아도 드러나는 리듬 하나. 조수용 대표는 그것을 ‘감각’이라 불렀고, 나는 그것을 ‘기억’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무언가를 오래 지켜내는 일에는 묘한 조율과 응시가 필요합니다. 보여주는 게 아니라 보이게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브랜드의 결이라는 것을 이 책은 조용히, 그러나 정확히 알려줍니다.
당신도 언젠가 이곳 재즈스팟 야마토야에서 사소해 보이는 모든 순간과 동작에 마음을 담는 일이 얼마나 큰 울림이 될 수 있는지를 조용히 확인해볼 수 있길 바랍니다. 이 책과 함께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