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딩은 인공지능의 시대에서도 인감지능을 기르는 일
주 소 : 中京区寺町通三条上ル天性寺前町537
전화번호 : 075-231-6547
영업시간 : 0800 - 18:30
정기휴일 : 없음
사람은 정교함보다, 정중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커피 한 잔이 남는 건, 그 맛 때문만이 아니다. 그 잔을 건네던 손길이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지는 순간, 말없이 따뜻하던 시선이 말보다 깊이 전해질 때, 우리는 그 마음을 오래 기억하게 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에스프레소 머신은 정해진 온도와 압력으로 커피를 추출한다. 그 정밀함은 놀랍고 때론 위안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커피 한 잔에도 사람의 손길이 조심스럽게 얹혀 있으면, 그 잔은 따뜻함을 넘어서 위로가 된다. 조금 느리고, 다소 불완전하지만 그 느슨한 틈새에 감정이 스며든다. 한 잔의 커피를 받는 일은, 그저 마시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어떤 태도를 고요히 마주하는 일이다. 기계는 반복하지만, 사람은 반응한다. 그 다름이 커피를 기억하게 만든다.
하지만 요즘은 그 다름조차 점점 줄어들고 있다. 기술은 이제 인간의 역할을 서서히 흡수해간다. 기계는 더 정교해지고, AI는 언어를 쓰고, 사진을 그리며, 시를 짓고, 커피마저 추출한다. 정확함은 인간을 능숙하게 흉내 내고 닮아가지만 느림과 망설임, 그 안에 깃든 감정까지 닮을 수 있을 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여전히, 기계가 아닌 사람을 찾는다. 그리고 말한다. “다시 가고 싶은 카페가 있다.”
그곳은 아마도 ‘인공지능(人工知能)’으로는 구현되지 않는 사람의 감정이 머무른 채 공간을 따뜻하게 만드는 ‘인감지능(人感知能)’의 장소일 것이다.
교토 테라마치 상가의 북단 끝자락에는 스마트 커피 Smart coffee 라는 상호명을 가진 오래된 가게가 있다. 1932년 개업 이래 지금까지, 이곳은 한 자리에서 묵묵히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사실 이곳의 시작은 커피가 아니었다. 처음 문을 열었을 당시의 이름은 스마트 런치였다. 커피가 아닌 식사를 내던 가게였다. 그러다 1950년대 상호를 스마트커피로 바꾸고 한동안 점심 메뉴는 중단했다. 그러다 1990년대부터는 2층에서 아홉 가지의 런치 메뉴를 제공하고 있으며, 현재는 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 정갈한 식사를 선보이고 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지나 이곳은 다시 점심과 커피를 함께 내는 공간이 되었다. 몇 년 전부터는 한국과 중국의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이 퍼져, 정오 무렵이면 가게 앞에는 줄이 늘어서 있다. 하지만 이곳은 그저 ‘유명해졌기 때문’에 찾아갈 만한 가게가 아니다. 만약 방문했을 때 긴 줄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면 그대로 발걸음을 돌리지 않기를 권한다. 잠시 멈추어 그 줄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좋겠다. 왜 이곳이 80년 넘는 세월을 한자리에서 지켜낼 수 있었는지, 스마트 smart 라는 이름이 단지 ‘현명하다’는 뜻이 아니라 ‘멋진 서비스’를 의미한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특별한 장비도 없고, 화려한 인테리어도 없다. SNS에 어울릴 만한 소품도 찾기 어렵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줄을 선다. 기꺼이 기다린다. 기다려서라도, 그곳의 커피를 마시고 싶어 한다. 왜일까. 그곳에는 '속도'가 아니라 시간을 품은 손의 리듬이 있다. 기술이 아닌, 살아 있는 태도가 있다. 주문은 작고 조용하게 이뤄지고, 커피를 내리는 손길은 분주하지 않다. 그 손은 성급하지 않고, 동작은 숙련되었으며, 잔을 내려놓는 타이밍에는 묘한 정중함이 흐른다.
커피가 도착할 즈음이면, 구운 프렌치 토스트가 접시에 담겨 나온다. 그 모든 움직임엔 설명은 없고, 해석은 없다. 다만, 배려가 있다. 그 배려는 하루의 고단함을 단 한 잔의 커피로 가만히 풀어내는 기술이다. 사람의 마음을 조용히 읽고, 그에 어울리는 온도로 커피를 건네는 일. 그것이야말로, 살아 있는 손끝에서 태어나는 진짜 기술이다. 나는 그 기술을, 인감지능이라고 믿는다.
한때 우리는 '맛있는 커피'를 원했다. 정확한 추출 시간과 물의 온도, 원두의 산지와 품종, 로스팅 포인트까지 따져가며 커피를 평가하던 시대가 있었다. 커피는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니라, 과학과 기술의 총합으로 여겨졌다. 이른바 '커피 제3의 물결'이라 불리는 흐름이었다.
이 개념은 2002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로스터이자 커피 교육자였던 트리시 로스게브(Trish Rothgeb)에 의해 처음 언급되었다. 그녀는 당시 커피 산업이 프랜차이즈 중심으로 급속히 팽창하고 있는 상황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 특히 스타벅스를 비롯한 대형 체인들이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면서, 커피의 정체성과 다양성이 오히려 획일화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제3의 물결은 이러한 흐름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커피를 다시 '식품'으로 바라보고, 그 안에 담긴 생산자의 손길과 재배 환경, 로스팅과 추출에 이르는 전 과정을 존중하려는 움직임이었다. 커피가 어디서 왔는지, 누가 재배했고, 어떻게 가공되었는지에 주목했다. 커피 한 잔은 농부의 손끝에서 시작되어, 로스터의 감각을 지나, 바리스타의 손길로 완성되는 하나의 이야기이자 여정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변화는 커피를 '산지 중심', '공정 무역', '스페셜티 커피'라는 이름 아래 품질과 윤리, 투명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끌었다. 카페는 단지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니라, 커피의 이야기를 전하는 공간이 되었고, 바리스타는 기술자이자 해설자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물결조차도 하나의 형식이 되어갔다. 똑같은 정보를 붙이고, 똑같은 기계를 들여놓고, 똑같은 설명을 반복하는 공간들이 늘어났다. 산지를 말하지만, 정작 커피를 건네는 태도는 사라지고 있었다. 기술은 남았지만, 감정은 지워졌다.
바로 그 지점에서, 나는 다시 교토의 스마트 커피를 떠올린다. 이곳은 제3의 물결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 물결이 전하고자 했던 본질을 묵묵히 지켜내고 있다. 산지를 말하지 않아도, 윤리를 내세우지 않아도, 한 잔의 커피에 담긴 마음은 그 자체로 전해진다. 스마트 커피의 시간은 효율이 아니라 사람을 기준으로 흐른다. 매출보다 먼저 마주한 얼굴을 바라보고, 사람의 표정과 그날의 공기, 커피의 향을 천천히 살핀다. 그 모든 감각을 따라 ‘단 한 사람과 단 한 잔의 시간’을 조용히 이어 붙인다.
그곳에서는 한 잔을 내리는 행위가 한 사람을 맞이하는 시간이 된다. 말없이 시작되고, 말없이 기억되는 시간이었다. 그 순간 나는 인감지능이라는 단어가 몸으로 체득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단지 커피를 파는 행위가 아니라, 한 사람에게 조용하게 다가가는 방식이었다.
커피는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커피를 기억하게 만드는 건, 언제나 사람이다.
사람들은 스타일이란 잘 고른 디자인에서 시작된다고 자주 착각한다. 그러나 진짜 스타일은 자기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그 위에 쌓아올린 고유함이다. 커피 제3의 물결도 처음엔 그랬다. 이름보다 태도가 먼저였고, 차별보다 본질에 가까웠다. 시간이 흐르며 그 물결은 하나의 기준이 되었고, 기준은 어느새 상품의 패턴이 되었다. 스마트 커피엔 그런 패턴이 없다. 그저,오랜 시간을 쌓아온 몸의 기억이 있다. 설명되지 않아도, 그 기억은 마시는 사람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그런 커피는 맛있는 커피가 아니다. 그 커피는 기억되는 커피다.
나는 믿는다. AI 시대에도 끝내 살아남는 기술은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는 연산 능력이 아니다.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고, 말하지 않은 감정을 눈치채며, 그날의 공기와 대화의 간극 속에서 조용한 배려를 감지하는 능력이다. 그 능력을 나는 ‘인감지능(人感知能)’이라 부른다.
인감지능은 사람의 말보다 표정을 먼저 읽고, 정보보다 공기의 결을 먼저 감지하는 태도다. 그것은 정해진 메뉴얼이 아닌, 몸으로 익힌 일상의 배려에서 비롯된다. 기술은 속도를 앞세우지만, 인감지능은 타이밍을 귀하게 여긴다. 기술은 반복을 추구하지만, 인감지능은 반응을 존중한다.
그리고 그 기술은 책으로 배울 수도, 강의로 전해질 수도 없다. 그것은 하루하루를 정직하게 견디고, 타인의 온도를 세심히 느끼며, 관계의 틈을 조용히 메우는 사람에게만 서서히 스며드는 것이다. 그런 기술을 지닌 사람은 사람을 다시 오게 하고, 다시 마시게 하며, 다시 기억하게 만든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떠올릴 때마다 이 한 문장을 꺼내게 된다.
“차별화를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남들과 달리 스스로 차이를 만드는 사람.”
그 말은 어느 책의 결론에도 적혀 있지 않지만, 어느 브랜드의 매뉴얼에도 남겨지지 않았지만, 그 어떤 마음보다도 강하고 설득력 있게, 묵직하게, 오래 남는다. 스마트 커피는 그런 사람을 닮았다. 일흔 해가 넘도록 같은 이름을 지켜낸 가게, 세련되지 않아도 아름답고, 화려하지 않아도 따뜻한 공간, 그리고 그곳에서 마신 커피는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니었고, 일상의 피로를 달래는 한 모금이 아니었으며, 단지 ‘커피’라는 단어로 설명되지 않는 어떤 시간의 감각이었고, 그 시간이 내 안에서 천천히 퍼져가며 ‘인감지능’이라는 단어가 몸으로 체득되어갔던 순간이었으며, 결국에는 나라는 존재를 조용히 기억해주는 장소, 혹은 나 자신을 조용히 되돌아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기억은 커피보다 오래간다. 그리고 어떤 기억은, 아무리 멀리 있어도 다시 그곳을 찾아가게 만든다.
그곳이 교토라면,
그 커피가 스마트 커피라면—
기술이 모든 것을 대신하는 시대에도 우리는 사람이 만든 커피를, 사람이 건넨 태도를, 사람이 남긴 기억을
기꺼이 기다릴 것이다.
"가게에서 커피를 파는 행위는 한 사람을 상대로 하는 작업이잖아요.
한 사람 또 한 사람. 증가라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죠. 스타벅스의 증가를 가능케하는 능력은,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모으는데 있어서 유리하다고 생각해요. 스타벅스를 통해 새롭게 커피에 흥미를 갖게 된 사람도 수없이 많을 것이므로
멋진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들은 한 사람 또 한사람에게 최선을
다한 커피 한잔으로 시나브로 침투해간다면 그로써 전부인 셈이죠.
그 마음으로 지끔까지 해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커피 집, 다이보 가쓰지의 인터뷰
책 소개.
이 책은 단순히 커피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보다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커피를 통해 사람의 태도와 삶의 결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커피집』은 두 명의 장인이 마주 앉아 긴 호흡으로 나눈 대화를 엮은 기록입니다. 다이보 가쓰지 씨와 고(故) 모리미츠 무네오 씨. 한 분은 고요한 공간에서 느릿하게 커피를 내리셨고, 다른 한 분은 유쾌한 손끝으로 커피를 완성해내셨습니다. 방식은 달랐지만, 커피를 대하시는 태도에는 깊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이 두 분은 속도보다 리듬을, 효율보다 관계를, 재료보다 기억을 더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독자 여러분은 어느새 한 잔의 커피가 단지 혀끝의 여운이 아니라, 손끝의 방식이고, 시선의 배려였음을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플란넬 드립의 여백, 쉐이커에 담긴 정성, 커피를 마시며 흐르는 오후의 빛과 그림자까지—이 모든 장면은 단순한 '카페'의 차원을 넘어섭니다. 두 분은 커피를 내리기 위해 인생을 사신 것이 아니라, 인생을 정직하게 살아낸 결과로 커피를 내리셨습니다. 커피는 이분들께 기술이 아니라 태도였고, 업(業)이 아니라 존재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커피집』이 전하고자 하는 가장 깊은 이야기입니다.
『커피집』은 커피보다 사람을, 맛보다 기억을, 상품보다 태도를 오래도록 떠올리게 만드는 책입니다.
그 향이 마음속에 오래 남는 이유는, 결국 그 중심에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 다녀온 다이보씨의 커피집과 이제는 만나뵙지 못하는 모리미츠 무네오씨가 서 계신 커피 비미에 가고 싶은 날입니다.
커피집을 한다는 것은
인생을 걸 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러는 ‘기다려도 기다려도 손님이 오지 않는
시기’를 지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정말로
괴로운 일이죠. 스스로 생각하는 커피를 내지
못하는 것, 손님이 오지 않는 것. 그런 터널같은
시기를 잘 통과하고 나서야 비로소 진실한 기쁨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커피집, 모리미츠 무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