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편한 밥상을 책임져주세요!
푸르른 유월, 매실철이 되었다.
연두빛 청매실을 살짝 깨물면 아삭거리며 시큼한 산뜻함이 입안에 확 퍼지고 만다.
여름 김장, 매실 장아찌를 담글 시즌이다.
5월부터 매실 키우는 시골 농장에 연락해서 출하시기를 확인하며 가장 먼저 나오는 알 굵은 매실을 기다려왔었다.
사실 우리 집에서는 어렸을 적부터 매실을 즐겨 먹었던 것은 아니었다. 매실 장아찌 반찬이 상에 오른 일도 거의 없었던 것 같다. 2013년 3월 일하다 무대에서 떨어져 다리가 크게 다치고 큰 후유증으로 몇 년간 계속 고생하는 큰 딸래미가 속병으로 고생하게 되면서 우리 집 단골 반찬이 되었다. 매실이 속을 편하게 한다고 해서 설탕에 절여서 장아찌로 만들고, 엑기스로도 만들어 물에 타 음료수처럼 마시게 해주셨다.
엄마가 하는 반찬은 하나하나 이유가 있다. 식구들 중 누군가의 기호를 따르기도 하고, 먹고 난 다음 약효처럼 몸에서 잘 받고 잘 소화시킬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만드시기도 한다. 하나도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
작년에도 주문했던 전라도 순천 농장에서 가장 알 굵은 매실 20키로를 주문했다. 아주 일찌감치.
받아본 매실은 실하고 살이 통통한 게 먹음직스러웠다.
이쑤씨개나 대 바늘로 꼭지(우리 집에서는 '똥꼬'라고 말하는데...)를 따고 여러 번 깨끗이 씻는다. 식초와 베이킹파우더에 넣은 물에 담궈 놓아서 지저분한 흙 먼지나 불순물을 제거하고 흐르는 맑은 물로 여러 차례 행궈서 물 빠지는 체에 밭쳐놓는다.
물이 빠지고 나면 정말 어려운 작업이 시작된다. 매실이 아무리 알이 굵어도 자두만큼도 하지 않는데, 작은 매실을 과도로 살을 조각내야 하는 것이다. 생각보다 매실 살이 단단해서 칼이 살 밥에 들어가고 적당한 만큼 잘라내는 데 꽤 힘이 든다. 가운데 있는 매실 씨가 너무 단단하고 커서 자르다보면 씨에 부딪쳐서 검지 손가락에 힘이 더 들어가게 된다. 그래도 하다보면 손에 익어 손가락 아픈 줄 모르고 한참을 하게 되는데, 소복이 쌓인 매실 조각을 보며 흐뭇해지는 순간이 온다. 엄마, 나, 여동생까지 셋이서 하는데 동생은 손가락이 시원치 않았어서 손 대지 말라고 하려니 엄마랑 나 둘이서 하기가 이십키로는 쉽지 않았다.
매실 조각 내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그 이후는 매실에 설탕을 부어놓으면 된다. 분량의 설탕(매실의 0.7-0.8 정도)을 매실과 잘 섞이도록 켜켜이 쌓아서 열탕 소독한 항아리에 넣으면 끝이 난다.
절대 복잡한 레시피는 아니지만, 손이 많이 가고 정성이 들어가는 것이 우리 집에서는 충분히 여름 김장이라고 부를 만 하다.
완성해놓고 나니 양이 꽤 많은데 손 큰 엄마는 성에 안차시는지 10키로만 더 해야겠다, 해야겠다를 혼잣말인듯 혼잣말 아닌듯 자꾸 말씀하셨다. 손가락도 아프고 힘드실까 더 이상 하지 마시라고, 이것으로도 충분하다고 했지만 계속 아쉬워하셔서 다른 농장에서 10키로를 더 주문했다.
매실 장아찌 30키로를 담궈놓고 설탕과 잘 섞이고 맛있게 익어갈 날만 기다리고 있다.
2주 후면 먹을 수 있고, 100일이 지나면 더 맛있게 익는다. 사실 내년에 먹어도 아삭거리는 새콤달콤함이 몇 번이고 집어먹게 될 것이다. 안봐도 뻔하다. 불 보듯 뻔하다.
아, 입맛이 싹 도는 개운함,
새콤달콤한 매실 장아찌 맛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