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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잇문학도 Dec 15. 2021

일과 전문성의 행방불명

회사 오래 다니면 전문가되나요

 나는 처음 영업사원으로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팀을 배정받고 처음 가진 회식에서 선배들은 영업사원의 자세에 대해 짧고 굵은 조언을 했다.

 "영업은 이것저것 다 잘해야 해! 그래도 자기 만의 한 방이 있어야 한다. 제일 잘하는 하나가 있어야 살아남는다는 거야." 나는 무슨 말인지 잘 몰랐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리액션했다. 이것도 영업사원의 자세 중 하나였다.


 1년 후 다른 회사에 들어갔다. 인사와 교육 기능에 대한 긴 강의가 끝나고, 선배가 마무리 멘트를 했다.

 "HR에는 다양한 기능이 있지만, 자신과 가장 잘 맞고 잘하는 분야를 찾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그 팀에서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어요." 이번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아.. 회사에서 전문가가 되는 게 중요하구나. 열심히 일하면 이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수 있겠어!"


 비슷한 이야기는 5년 후 인사팀 회식에서도 계속되었다. 팀장들이 빠지고 실무자들만 모인 2차 술자리였다. 다들 얼큰하게 취했고 우리는 끈끈한 동료의식을 느꼈다. 조직문화 업무를 하고 있는 동료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는 OOO(내 이름)가 부럽네요. 매일매일 수습이나 하고, 나이는 먹는데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조직문화에서 전문가시잖아요. 꽤 오래 하셨고요." 나는 깜짝 놀라 말했다.

 "오래 하면 뭐해요. 솔직히 남들이 몰라서 그렇지 인사업무는 누구라도 할 수 있잖아요."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던 채용과 인력운영 동료들도 말을 보탰다.

 "맞아요. 우리는 회사 나가면 할 게 없어요. 아는 것도 다 여기에서만 쓸 수 있는 것들이에요."


 그들은 입을 모아 자신들은 전문가가 아니라고 말했다. 할 수록 전문성이 쌓이는 것 같지도 않다고.

 내 머릿속에는 아주 큰 물음표가 떠올랐다.


일하면 전문성이 쌓이는 것 아닌가?


 

'전문가'는 어려운 일을 줄 때 주로 쓰이는 단어다


 한동안 '스페셜리스트(Specialist) vs 제너럴리스트(Generalist)' 논쟁이 있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와 더불어 다양한 경영 컨설팅 업체들은 분석글을 쏟아냈다. 당연히 한국 회사들도 어떤 방향으로 인사를 기획해야 하는지 고민에 빠졌다. 전문가가 많은 집단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영을 잘하기 위해서는 다방면을 이해하고 기획할 수 있는 매니저도 필요했다.

 그동안 한국의 많은 회사들은 (ㅗ)자형으로 인재를 채용하고 육성했다. 일단 뽑아서 전문가로 키우는 방법이다. 삼성이 최초로 공채 제도를 도입하면서 이 형태는 굳어졌다. 우수한 인재들을 남들보다 빨리, 대량으로 뽑는 것이 중요했다.


 직무는 신입사원 연수 후에 교육과 면담을 통해 정해졌다. 적성에 맞지 않은 직무는 바꿀 수 있었다. 제너럴리스트로 뽑힌 인재는 일을 하면서 스페셜리스트로 키워졌다. 전문성은 회사 안에서 길러지기 때문에 조직에 대한 충성도와 주인의식(?)이 매우 중요했다. 회사는 연수원을 지었고 각종 정신교육과 직무교육에 힘을 쏟았다.


 이러한 (ㅗ)자형 육성은 (ㅜ)자형으로 변해갔다. 회사들은 직무별 채용을 시작했다. 이제 취준생들은 직무 맞춤형 스펙을 쌓아야 했다.

 입사 후 직무가 바뀔 일도 거의 없었다. 사내 잡포스팅으로 직무가 전환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팀장과 원수가 될 각오는 해야 했다. 영업은 영업전문가, 마케팅은 마케팅 전문가, 재무는 재무 전문가로 살았다. 팀장이나 프로젝트 매니저가 되면 드디어 제너럴리스트로 살아야 했다.


 지금은 어떨까? 요즘 핵심 키워드는 '다양성'과 '전문성'이다. 채용이나 육성 구조를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을 스페셜리스트(전문가)로 키우는 쪽이 강화된 듯 보인다. (ㅣ)자형 구조다.


 실제로 요즘은 일부 기능을 특출나게 잘하는 사람들이 핵심인재로 선발되고 있다. 고용 유연화로 대체 불가능성이 무척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대체할 수 있는 능력이라면 경력사원을 채용하거나 외주를 주만 그만이다.


 생산품의 퀄리티가 높아질수록 각 기능들이 고도로 발전해야 한다. 옛날에 몇 명의 김치 전문가가 필요했다면, 지금은 배추 전문가, 고춧가루 전문가, 젓갈 전문가, 발효 전문가 등이 모여서 김치를 만들어낸다. 완성도와 효율이 높고, 비용은 낮은 방법이다. 이에 따라 대기업들은 계열사를 사업별로 분리하고 있으며, 조직도 점점 작게 나누고 있다.


요즘 회사는 스페셜리스트 기업처럼 보이고 싶어한다.


 물론 조직에는 제너럴리스트들(팀장, 프로젝트 매니저 등) 필요하다. 큰 관점에서 기획하고,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은 필수다. 그러나 이들은 많이 필요하지 않다. 애초에 우수한 전문가를 선발/관리하면서 제너럴리스트 능력을 심어주는 편이 효과적이다. 최근 인사에서는 소수 인재를 폴리매스(스페셜리스트+제너럴리스트)로 키우려는 노력이 강화되었다. 나머지는 다 스페셜리스트다.


두 가지를 다 잘하는 사람은 진짜 거의 없었다..


 스페셜리스트를 늘리는 육성 방법이 지속될수록 회사 밖에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은 퇴화된다. 지나치게 작아진 분야의 전문성은 단독 활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김치 전문가는 스스로 김치를 만들 수 있겠지만, 고춧가루 전문가가 김치를 만들기 위해서 다른 이들의 도움이 절실하다. 김치가 아니라 닭볶음탕도 마찬가지다. 좁고 깊은 전문성은 다른 기능이 있어야만 쓰일 수 있다. 즉, 조직이 있어야 한다.


 고춧가루 전문가면 다행이다. 실제로는 고춧가루 분쇄나 고춧가루 건조 같은 일부 기능만 몇 년씩 했을 확률이 높다. 더욱 최종 완성품과 멀어진다.


 조직이 있어야만 쓰이는 능력은 회사에서의 독립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혼자서 프로젝트를 기획, 운영, 관리할 수 없다면 그 능력은 실용적이지 않다. 나와서 해야 하는 일은 제너럴리스트가 하는 일에 가깝기 때문이다. 퇴사자 중 많은 이들은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없어 다시 조직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자신의 업무능력과 조직의 성과 평가만 믿고 있으면 안 된다. 자신의 업무가 조직을 떠나 프리랜서로 독립할 수 있을 정도로 특수하거나 그것에 정통하지 않다면 딴짓을 해야 한다. 업무 능력과 관계는 없더라도 훗날 도움이 되는 능력을 기르는 행동이다. 어학이 될 수도 있고, 코딩일 수도 있으며, 웹디자인 경험이나, 세금 관련 지식일 수도 있다. 자격증일 수도 있고, 학위일 수도 있으며, 수익 없이 작게 돌려보는 사업일 수도 있다. 그 무엇이든 일은 일이고 준비는 준비다.





[참고자료 : 폴리매스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읽어보실만한 책입니다]

http://www.reader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0899


[참고자료]

https://object-matrix.com/specialist-suppliers-vs-faceless-generali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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