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네이버 부동산을 보던 선배가 있었다. 회사 노트북이 켜지는 순간부터 네이버 부동산 크롬창이 윈도우에 떠있었다. 그의 몸은 사무실에 있었지만, 회사는 그의 마음까지 잡아두지 못했다. 그는 부천에서 노원으로, 노원에서 위례로 쉴 새 없이 마우스를 움직였다.
나에게 가끔씩 '지금은 아파트를 사야 할 때인가?'라는 심오한 질문을 던졌다. 정답을 알 수가 없었다. "아마도 고점이 아닐까요..?"라고 답하면 그는 만족스럽지 않은 표정을 짓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 그만하고.. 제발 자료 좀 주세요..."
모두 그분의 근무태도를 비난했지만, 그는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건물주였기 때문이었다. 그분은 오래전, 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금으로 상가를 매입했다. 온 가족의 저축이 들어간 건 당연했다.
상가는 고점을 갱신 또 갱신했다. 매매가가 50억이라는 소문도 있었고, 월급쯤은 용돈 수준이라는 말도 돌았다. 그분은 가끔 나에게 비싼 돈가스를 사주고 아파트를 사라며 잔소리를 했다. 지금은 퇴직하고 작은 회사를 다니시는데, 그 회사도 대충 다닐 것이 틀림없다.
상가 이야기가 나오면, 임원 한 분은 은마 아파트와 함께 한과거를 자랑스럽게 늘어놓고는 했다. 잘 나가던 그는 어느 날 좌천되었다. 1인 팀에 발령받은 것이다. 일도 없고, 팀원도 없는 팀장은 스스로 퇴직하라는 상부의 메시지였다. 그는 '존버' 정신을 발휘했다. 회의실에 들어가 6개월 동안 시중의 모든 부동산 책을 읽었다고 한다.
야근까지 하면서 분석해낸 결과는, 풍수지리가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은마 아파트를 선택한 이유였다. 은마 아파트를 6억쯤에 사서 10억 넘은 후에 팔았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돈으로 다시 강남 아파트를 매매하여 자산을 계속 불렸다. 게다가 회사도 잘 풀려 임원까지 되었으니 풍수지리의 중요성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백악관도 풍수지리가 좋을 것 같다..
선배들은 하나 같이 '퇴사 후 인생'을 위해 이러한 활동을 했다고 말했다. 월급을 대체할 투자를 생각하다가 건물을 노리게 되었고, 노후 자금이라도 마련하려고 아파트를 샀다. 가끔 주식으로 큰돈을 번 선배들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월급소득이 끊기는 것을 우려해 자본소득에 올인했다.
하지만 모두가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투자에 실패하거나 여전히 자금이 제자리인 선배들이 더 많았다. 그들은 한 마음으로 이렇게 이야기했다.
부동산, 주식이 올라야 할 텐데.. 가즈아..
영원히 부동산과 주식이 오르면 참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것은인플레이션일 뿐이다. 물가가 오를 것이고,결국 돈의 가치가 떨어진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회사에 있다 보면 퇴사 후의 삶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없다. 그 탓에 몇 가지 착각을 하게 된다. 착각은 월급소득, 사업소득, 자본소득에대한 오해와 불균형에서 비롯된다.
1) 투자에 성공할 것이라는 착각 (자본소득)
월급의 대체로서 많은 회사원들은 자본소득을 꼽는다. 대표적으로는 주식과 부동산이다. 2019년 이후로는 무엇을 사도 꽤 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투자에 성공할 수는 없다. 고점에 사서 큰 이득을 못 본 아파트나 떨어진 주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실패담은 소문나지 않는다.
2) 자산이 충분할 것이라는 착각 (월급소득, 자본소득)
투자에 성공했더라도 충분한 자산이란 없다. 퇴사를 하고 소득이 없어지면 모아둔 자산을 쓰기 시작하는데 선배들은 모두 불안해했다. 생각보다 너무 부족하게 느껴진다고.
"10억 넘는 아파트 팔고, 그 돈으로 제주도 같은 데서 즐기며 사세요."라고 말하면 아이들 이야기가 가장 먼저 나온다. 성인이 된 아이들에게 남겨줄 돈, 오르는 물가와 계속 소비되는 생활비를 생각하면 넉넉하지 않다고 답한다. 게다가 전국 집 값이 올라서 외곽이나 작은 집으로 이사 가도 유동자금(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 도시 생활을 포기하기엔 너무 도시에 익숙해져 버렸다. 그렇다. 상황은 좋지 않고 돈이란 언제나 부족하다.
3) 재취업이 쉬울 것이라는 착각 (월급소득)
어느 정도 직급 이상은 재취업이 어렵다. 연봉이 높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승진을 시켜주기 어려워서 그렇다. 15년 경력 이하, 차장 이하가 가장 취업이 잘 된다. 이전 회사에서 2년 정도 경력사원 관련된 일을 했었는데 경력채용은 실무자인 대리/과장급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다른 회사도 비슷할 것이다. 대기업이 아니면 자리도 옮겨갈 기회도 많지 않다. 물론 어디 가나 이직왕은 있지만, 본인이 이직왕일 확률보다 이들을 경쟁자로 만날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4) 먹고살 길이 많을 것이라는 착각 (사업소득)
나오면 먹고살 길은 많다. 그런데 이미 경력자들이 그 자리에 있다. 나도 나와보니 각자의 자리에서 밥벌이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음을 느꼈다. 그들에게 퇴사한 회사원은 신입사원일 뿐이다. 한 번은 선배가 자조적으로 "나오면 치킨집이라도 해야지.."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나오면 10년 경력 치킨집이랑 경쟁해야 할 텐데 괜찮으시겠어요?"라고 답했다.무엇을 해도 그렇다. 내가 회사를 다니는 동안 이미 현장에서 밥벌이를 한 경력자들이 세상에 너무 즐비하다. 재취업이 쉬워 보일 정도다.
한국의 증시, 부동산 경제가 좋아지면서 '경제적 자유'가 본격적으로 유행을 했다. 미국에서 건너온 '경제적 자유'는 월급 이외의 소득(파이프 라인)을 만들어서 월급소득에만 의존했던 생활을 바꾸자는 말이었다. 사업소득과 자본소득을 추가해야 한다는 의미가 한국에서는 '투자에 성공하자'는 뜻으로 바뀌게 되었다. 물론 투자는 굉장히 중요하다. 그 사이에 '사업소득'은 온 데 간데 없어졌다.
평생 쓸 돈을 벌어서 은퇴하는 것은 무척 좋은 일이다. 하지만회사 없이도 스스로 밥벌이를 하는 '경제적 독립'이 우선되어야 한다. '경제적 자유'는 그다음이다. 독립하지 못한 어른에게 자유란 없다.
회사원만이 유일하게 월급소득, 사업소득, 자본소득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 경제적 독립을 준비하기에 유리하다. 월급소득이 가장 크겠지만, 아직 사업소득과 자본소득의 비중을 높일 기회가 있다. 특히 사업소득은 훗날 월급소득을 대체할 소중한 소득이다. 큰 사업이 된다면 Exit(사업 매각)을 통해 정말로 '경제적 자유' 얻을 수도 있다. 그러니 회사원일 때, 사업소득을 구상해야 한다. 회사를 다니면서 사업을 시도하고 초보 딱지를 떼야한다. 그래야 나와서도 떨지 않고 사업을 운전을 할 수 있다.
나 역시 퇴사를 하기 전에 부모님 명의로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다. 초보 중 초보였다. 당연히 돈은 거의 벌지 못했다. 그곳은 회사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그냥 인터넷에 물건을 올려서 팔면 되겠지 수준으로 생각했지만, 그곳에도 기획, 영업, 마케팅, 물류, 재무, 스텝이 있었다. 그 모든 사람이 나였다.
물류가 꼬여서 손해를 보고, 말도 안 되는 소송을 당해 법원에 보낼 답변서를 쓰고, 도매상의 일방적인 품절과 블랙 컨슈머를 대응해가면서 퇴근 후 시간과 주말을 썼다. 훗날 퇴직서를 제출하고 나왔을 때, 나는 이미 괜찮은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초보가 아니었다. 세금에 대해, 특허에 대해, 물류 구조와 택배에 대해, 제품 사입과 수입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아직 모르는 게 많았지만 유통의 세계에서 밥은 굶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다른 일을 도전하는데도 도움이 되었다. 모르는 분야가 있으면 공부하고, 현업에 있는 사람들의 노하우와 조언을 듣고 직접 해본다. 직접 해보면 노하우와 조언이 무슨 뜻인지 뒤늦게 알 게 된다. 그럼 과장되었거나 거짓말된 말이 무엇인지 구분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이 분야가 나에게 맞는지 감이 온다.
회사를 다녀보지 않으셨던 아버지께서는 입버릇처럼 '어떻게든 열심히만 하면 밥은 먹고살 수 있다."라고 하셨다. 그 말씀이 몸에 와닿는 순간이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더 많은 분야에 도전해봤을 것이다. 회사를 다니시는 분이라면 많은 분야에 도전해보셨으면 한다. 새로운 일에는 준비가 필요하고, 초보는 반드시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월급소득을 얻으면서 겪는 사업 실패는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수많은 시도 끝에 얻게 되는 경험은 회사 밖에서 우리를 보호해주는 우산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