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마정열

퇴직 이후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내가 집을 비우면 온종일 혼자 집 안을 헤매는 자신을 발견하고 우울해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 날이면 이렇게 인생이 끝나나 하는 생각에 잠도 쉽게 들 수 없었다. 그때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냉장고의 깊고 은밀한 곳

푸른 멍이 든 가래떡

어수선한 설날을 치르고 잊고 있었다

주섬주섬 쓰레기통에 갖다 버린다

잊힌다는 것은 버려지는 것

퇴직 후, 홀로 하는 점심

꼭꼭 씹어 음식을 삼키어도

온몸에 번지는

푸르디푸른 멍


괜히 슬퍼졌다.

'왜 나는 여유의 시간을 즐기지 못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활에 쫓기다 보니 노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것 같다.

문득 불경의 한 구절이 생각이 났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인간의 모든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기 위해 뿔이 하나뿐인 코뿔소처럼 우직하고 묵묵히 정진(精進)하라는 뜻일 것이다.

세속인인 나는 그럴 수는 없다. 그러나 혼자의 시간을 우울하게 생각하지 말고 성찰의 시간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노트를 펴고 기록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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